전출처 : 노부후사 > <퍼온글> 홍세화 : 마이클 버그 대담


[한겨레] 이라크에서 아들 참수당한
마이클 버그와의 대담

아들 니컬러스 버그(닉 버그)를 이라크 무장단체의 손에 잃은 마이클 버그(59)는 슬픔과 분노를 반전운동의 동력에 보탰다. 베트남전과 걸프전에도 반대했다는 그는 고교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과 학교 안에서 반전 시위를 벌여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26살 난 아들이 참수된 뒤 그는 “내 아들은 조지 부시와 도널드 럼스펠드의 죄 때문에 죽었다”고 선언했다. 이어 미국 전역의 반전 집회에서 뛸 뿐 아니라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에서 평화를 위해 연설했다. 그가 기억하는 아들 닉은 인류애를 품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닉은 아프리카에서 세 차례 자원봉사 활동을 벌인 뒤 재건사업을 위해 이라크로 떠났다 돌아오지 못했다. 반전평화단체 ‘다함께’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그와 홍세화 기획위원이 지난 9일 그의 숙소인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나 미국의 양심과 대규모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한 한국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대담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 재학중인 정지연씨가 맡아줬다.
그의 검은 색 티셔츠 곳곳엔 반전 브로치가 꽂혀 있었다. 2시간여 강연을 마치고 온 터라 무척 피곤해 보였다. 그는 느리지만 또박또박한 말투를 이어갔다. 아들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눈을 깜박이며 잠깐 침묵한 뒤 입을 땠다.
홍=아드님의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 세계 시민의 한사람으로 조의를 표합니다. 그동안 미국이 필요할 때마다 거수기 역할을 해 왔던 유엔의 코피 아난 사무총장도 이라크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도 없었고 알카에다와 연계도 없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요. 결국 후세인은 전쟁을 피하려고 나름대로 애썼지만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당신이 지적했듯이 대량살상무기는 백악관의 통제 아래에 있습니다. 그런 전쟁 과정에서 아드님과 김선일씨가 희생됐죠. 문제는 미국 시민들의 의식이 아닌가 합니다.

버그=제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이라크 전쟁은 거짓을 바탕으로 한 것이죠. 저는 부시 대통령이 예비선거에 나왔을 때부터 이라크 사태가 더 악화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시민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 시민에게 전쟁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 거짓인 걸 알고 있지만 시민들은 그다지 상관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시 정권 자체도 거짓인 걸 인정하는 상황인데도 말입니다.

홍세화 “미국 시민의 양심이
힘을 잃고 있다”

홍=미국 사람들 가운데에는 당신이 아드님을 살해한 이라크 무장세력보다 부시와 럼스펠드를 고발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공격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버그=미국 시민들은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이 반애국적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부시 대통령을 비난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도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이라크에서 시민 2만명이 죽는 것을 보고도 그가 밤에 잠을 잘 수 있다는 걸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영국군 그리고 기업가들과 김선일씨 등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피해를 보고 있는 데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를 공격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이미 느낀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누구도 저에게 줄 수 없으니까요.

홍=당신이 젊었을 때 베트남전이 있었고 당신 자신 반전운동에 참여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미국에서 일어났던 거센 반전운동에 비해 오늘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은 무척 약한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베트남전보다 더 부도덕한 전쟁인데도 불구하고요.

버그=오늘날 반전운동에 참가하는 수가 훨씬 적지요. 그러나 그들은 더욱 강합니다. 수가 적고 할 일은 많으니 더 강해질 수 밖에 없어요. 베트남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언론도 같은 편이 돼 사진과 진실을 공개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시민들이 더 이상 그런 장면을 보기 싫어져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라디오에서도 반전음악을 많이 틀어줬죠. 1960, 70년대 문화 자체가 평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국적인 운동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거죠. 그때는 개개인이 그렇게 강할 필요가 없었어요. 수로 모든 걸 압도할 수 있었으니까요. 오늘날은 개개인이 혼자서 많은 걸 희생하며 반전운동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임무는 훨씬 힘들죠. 하지만 미국 정부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이런 값진 움직임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홍=오늘날 미국 시민과 언론의 양심이 과거에 비해 외형적으로 힘을 잃고 있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버그=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많은 미국 사람들은 현재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있죠. 자신이 누리고 있는 풍요로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부를 가져다주는 부시 정권을 지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부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전쟁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행동하고 점점 양심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저도 9개월 전만 해도 전쟁이 직접적으로 제 삶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홍=베트남전 때는 미국이 징병제를 둬 중산층까지도 전쟁에 동원됐다면 오늘은 모병제로 주로 가난한 서민들이 전선에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점도 베트남전 때보다 이라크전에서 미국의 반전 양심이 약해진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 해요.

홍/베트남 반전운동에 비해 이라크 전쟁반대는 약한것 같아
버그/자신이 누리는 풍요로움 때문에 현재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있죠

버그=네, 한편으론 동의합니다. 베트남전 때는 징병제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는 가난하거나 부자나 다 전쟁터로 가야 했지만 오늘날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가게 되니까요. 그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다른 기술을 얻기 위해서 군대에 가고 있습니다. 최근에 참여한 한 반전 시위에서 저는 낙담했어요. 전쟁에서 아들이 죽은 어머니가 오히려 징병제를 주장하고 있었어요. 자신의 아들만 죽은 것이 너무나 불공평하고 부자들도 가야한다는 것이었죠. 이해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징병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홍=지구의 미래를 바라볼 때 부시나 럼스펠드 같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야만적인 전쟁을 통제할 수 있는 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미국의 양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라고 생각해요.

버그=이해합니다. 저도 그런 논리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해요. 사실 부시 대통령의 잘못도 크지만 우리의 잘못도 큰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요. 미국인 다수가 전쟁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홍=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군사·정치·경제적인 패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지구상 어느 나라로부터도 통제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미국은 또한 지구를 수백 번 파멸시킬 수 있는 파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국제정치의 테두리 속에서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균형력이 현실 사회주의권이 무너지고 나서는 사라졌어요. 미국 시민들의 의식만이 그런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버그=저희들은 거짓말을 많이 들어야만 했습니다. 민주당조차도 감히 부시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지 못했었죠. 전쟁 발발 전에 반전시위를 했던 사람들조차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부시와 이라크 주둔군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미국인들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원한다면 3주 안에 오는 대선에서도 막을 수 있죠. 하지만 많은 미국인이 직시해야할 문제를 피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나 삶의 방식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겁니다.

홍=오늘날 세계는 군사비로 매일 20억 달러 이상 쓰고 있습니다. 그 절반을 미국 혼자 사용하고 있고요. 반면에 9억 인구가 굶주리고 있고 그 가운데 3600만 명이 매년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군사비로 사용되는 돈의 단 10일치만 있어도 제3세계 어린이들의 기아·질병·교육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사랑하는 닉이 활동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당신 아들의 죽음은 세계적인 문제를 향한 한 양심의 표현이 전쟁으로 희생당한 셈이라고 봅니다. 사랑, 연대, 인권, 평화의 정신이 증오, 탐욕, 폭력, 전쟁에 의해 쓰러진 것이지요. 당신은 닉을 자신의 스승이고 영웅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죠. 어렵겠지만 그렇게 말한 배경에 대해서 설명해주시지요.

버그=저는 제 아들이 저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모범적인 행동으로 저를 잘 인도해줬죠. 그는 말을 통해 절 가르치기보다는 삶의 방식과 행동으로 제가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도와줬어요. 그의 내부에는 독특함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이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행동으로 많이 보여줬어요.


홍=다음달 4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부시와 케리가 접전을 벌이고 있죠. 최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다는 것이 보고서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밝혀지기도 하고 이라크에서 포로에 대한 반인권적인 행위들이 밝혀졌는데도 현재 케리와 부시가 비슷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또 부시가 낙선하도록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지 듣고 싶습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마다 그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차분함을 유지하던 그에게서 작은 변화가 느껴졌다. 그는 주먹을 꼭 쥐었고 앞으로 바싹 당겨 앉았다. 이어가는 말에는 분노가 섞였다.
버그=저는 부시 대통령이 수많은 거짓말을 했고 생명을 앗아간 것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해요. 미국인의 절반이 그를 믿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케리가 전쟁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거예요. 부시는 전쟁을 최대한 오래 끌려고 하겠죠. 그는 이 전쟁이 끝나면 세계 다른 지역, 예를 들어 아이티나 쿠바에서도 전쟁을 시작하려 할 겁니다. 저는 케리의 당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 겁니다. 케리는 공화당과 민주당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극좌파인 저와 큰 연관을 지으려 하지 않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공식적으로는 그를 위해 일을 하지 않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그의 캠페인 사무실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죠. 결국 케리가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을 거라 믿고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단 한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그건 의미 있는 일이죠.

홍=세상에는 강한 것이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선한 것이 강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강한 것이 선한 것이라는 명제의 포로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버그 “진짜 테러는 부시가‥
미국인 절반 지지 안믿겨”

버그=케리의 캠페인 구호가 더 강한 미국이 되자는 겁니다. 이는 미국의 가치관을 강하게 하고 미덕을 받들고 다른 도덕적 나라들과 동맹 관계를 강화하자는 것이죠.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는 부시가 가장 강력한 권력을 쥔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는 단지 문서에 서명만 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케리가 강한 사람입니다. 사고하고 분석할 줄 아니까요. 최근 텔레비전 토론에서 케리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있다는 걸 보여줬지만 부시는 카메라에 인상을 쓰는 모습만 보여줬죠.

홍=스스로 좌파라고 하셨는데 랄프 네이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버그=저는 사실 그분이 케리보다 더 대통령이 됐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2000년에는 제3의 당이 있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죠.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이라크 전쟁을 끝내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좌파이지만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는 거죠. 저는 지금 다른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홍=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라크 전쟁을 계속하려 할 뿐만 아니라 쿠바 등 다른 지역에서도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인들도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부시가 9·11 테러를 빙자해 북한을 악의 축이면서 테러지원국으로 규정하고 핵선제공격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하고 있고요. 지난번 미국 대선 텔레비전 토론에서 케리는 북한이 4~6개 정도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저는 그게 정확한 정보가 아니지 않을까 해요.

버그=저는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부시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부시는 약한 사람들만 공격합니다. 미국은 지난 12년 동안 여러 제재를 통해 이라크를 약화시켜 왔어요. 반면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을 비난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잖습니까? 홍=북한이 이라크보다 강하기 때문에 공격당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북한이 이라크의 후세인처럼 부시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계속 핵개발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버그 “표현할길 없는 슬픔·고통
반전운동 통해 해소”

버그=저는 그 어느 누구도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미국조차도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미국이 모범을 보여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소유하려고 하는 의욕을 없애야 줘야 하죠. 북한도 미국의 예를 보고 핵무기를 개발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많은 무기가 아니라 적은 무기가 답입니다.

홍=증오는 증오를 부를 뿐이고 무기는 무기를 부를 뿐이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북한으로서는 전쟁 억지력이 무엇이든지 필요하다는 거죠. 핵무기 개발 능력이 실제로 있든지 없든지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버그=저는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있는 척하는 게 사실이길 바랍니다. 그런 태도 때문에 부시가 견제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위험한 것이기도 하죠.

홍=이른바 세계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유엔의 5개 이사국이 핵무기를 비롯해 가장 많은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또 수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 堅뮌?있죠. 뿐만 아니라 핵무기확산금지조약도 핵무기가 없는 나라들은 통제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는 나라들에 대해선 아무 통제를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핵무기를 점차 줄여나가면서 궁극적으로 없애겠다고 했지만 그 어떤 나라도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습니다. 세계 여론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고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북한 같은 나라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죠.

버그=저도 미국 시민들이 미국은 핵무기를 보유해도 되지만 이라크는 안 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 전쟁을 지지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이런 전제의 오류를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폭력으로 폭력에 대해 싸울 수는 없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폭력의 수위만 커질 뿐입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상황이 전례 없이 악화되고 있어요.

홍세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도
이라크전쟁을 침략으로 규정”

홍=한국은 이라크 전쟁 당사자인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대를 이라크에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또 아들을 이라크 전쟁에서 잃은 분으로서 한국정부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버그=한국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즉시 한국군을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합니다. 병력 3천명이 이라크에 가 있으면 가장 위험한 지역인 지금 여기의 안보 상태가 악화되는 겁니다. 병력을 이라크에 보내는 건 한국 정부가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것이죠.

홍=김선일씨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버그=저는 아들을 잃은 제 자신의 고통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으로서 오히려 말하지 않음으로써 저의 메시지가 전달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도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큰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오히려 힘을 얻습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주고 제 아들을 모르는 사람들도 슬퍼해준 게 제게는 도움이 됐습니다. 저는 반전 운동을 통해 저의 슬픔과 고통을 건설적인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슬픔을 표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홍=다가오는 17일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국제공동반전행동의 날입니다. <한겨레> 독자들과 한국 국민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버그=한국 국민들이 단결해서 정부가 한국군을 이라크에서 철수하도록 반드시 설득해야 합니다. 한국 국민들에겐 그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미국 국민과 마찬가지죠. 한국군을 철수하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하는데 그런 거짓말을 믿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철수하지 않으면 위험에 처합니다. 철수해야만 많은 국민들과 외국인, 이라크인이 숨진 김선일씨와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 있어요.

홍/한국이 미국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불이익 당할 거라는 불안심리 강해
버그/알카에다 활동방식 잘못됐어요 하지만 그들의 명분은 이해합니다

홍=하지만 한국이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미국으로부터, 특히 부시 행정부로부터, 경제적·군사적 불이익을 당할 거라는 불안 심리가 한국 국민들 사이에 굉장히 강합니다. 그래서 이라크에 파병한 것보다 파병을 철수하는 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죠.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버그=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경제적 혜택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비도덕적 전쟁에 미국과 함께해선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세요. 진짜 테러는 부시가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는 단지 문서에 서명하는 행동만으로 폭탄을 떨어뜨리도록 하고 있죠. 이라크 주민들이 폭탄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이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내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한국에 대한 테러라고 생각해요. 물론 알카에다의 활동 방식도 잘못됐어요. 그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나 간디의 평화적인 모범이 아닌 다른 방식을 따르고 있죠. 하지만 주권을 얻으려는 그들의 명분은 이해합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투사죠. 지역 해방을 위해서 노력하는 겁니다. 미국 사람들은 테러범들을 비난하지만 사실 미국 뉴햄프셔의 차 범퍼에만 해도 자유롭게 살든지 아니면 죽겠다는 문장이 붙어 있죠. 또 미국의 애국자인 패트릭 헨리도 자유를 주든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어요. 알카에다가 추구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저는 알카에다만이 테러범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리 김소민 기자 prettyso@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마이클 버그 서울강연 요약
“변화를 바란다면 당신이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

마이클 버그는 지난 9일 서울 중구구민회관에서 ‘무엇이 내 아들 닉 버그를 죽였는가’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800명이 모인 이 자리에서 그는 아들의 죽음 뒤 자신이 겪은 변화를 털어놓으며 반전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의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나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나이부터 평화주의자로 살아왔다. 1991년 고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행동하기로 결심하고 매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반전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때도 내 일상이 반전 활동에 깊숙하게 들어가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5월10일 나는 아들 닉이 이라크에서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삶을 조정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나의 불만이 절정에 달했고 그만큼 내 활동의 수위도 올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닉은 자신의 과학 기술적인 지식으로 사람들을 돕는 재주가 있었다. 닉은 이라크에 가기 전에 세번 아프리카를 방문했다. 대학교 다닐 때 우간다에서 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었다. 모두 자비를 들여서 한 것이었다. 음식과 옷도 나눴다. 케냐에서는 라디오 송신탑을 세웠다. 세번째 방문 땐 마사이족들과 함께 우물을 파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닉이 아프리카에서 배운 것을 이라크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파괴가 아닌 재건을 위해 떠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지난 3월24일 이라크 경찰이 수상하다며 닉을 체포해 미군에 넘겼다. 미군은 연방수사국(FBI)에 그를 인계했다. 그 과정에서 닉은 13일 동안 불법적으로 갇혔다. 결국 팔루자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3월31일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지키지 못했다. 4월9일 나는 그와 마지막 전화통화를 했고 그때 닉은 부모 곁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들었을 때 그가 고통 없이 빨리 저세상으로 갈 수 있었다는 데 안도했다. 그리고 곧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 밀려왔다. 분노가 터져 나왔다. 첫번째 표적은 가족에 대한 배려 없이 아들의 죽음을 너무나 자세히 폭로한 미디어였다. 어떤 만화는 알카에다가 아들의 머리를 가지고 포커게임을 하는 모습을 묘사했다. 두번째 표적은 알카에다였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렇게 끔직한 짓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큰 분노는 부시 대통령와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향했다. 무장세력은 내 아들을 죽일 때 미군이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한 보복이라고 이야기했다. 분노를 가다듬은 뒤 미디어의 폭로는 전쟁의 끔찍함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알카에다의 행동은 처벌받아야 하지만 그들이 주권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내 아는 한 여성이 바그다드 병원에서 일하다 폭격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인 반전평화운동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뒤로 어디든지 나를 부르는 곳이 있으면 가서 반전 메시지를 전했다. 반전단체들과 연대하며 나는 변해 갔다.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알게 됐다. 내가 집 앞에 ‘전쟁은 답이 아니다’라는 팻말을 세우자 주변 5개 집이 똑같은 팻말을 세웠다. 간디가 말했듯 변화를 바란다면 당신이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 닉과 김선일씨가 당한 것 같은 억울한 죽음이 다시 없도록 지금 행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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