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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황현산] 한글과 한자  

 

2004.07.27 / 국민일보


  여야 의원 67명이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개정법률안을 공동발의했다고 전해진다. 개항 이후 한글은 우리 민족과 영욕을 같이 했고,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문명이 모두 한글의 은덕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한글은 그만한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오직 자기 손으로 만들어 갈고 다듬은 문자로 개인들의 일상사는 물론 국가의 중대사를 다루고 학문과 예술 같은 고도의 정신적 작업을 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세상에는 많지 않다. 한글은 우리말을 표기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글자여서 우리는 지금 언문이 완전히 일치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그것이 때로는 지나치다고 여겨질 정도다.

 

  한글에 관해 말하다 보면 한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다. 나는 한자가 한글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글자라고 생각한다. 태고의 어느 시기에 우리 조상들이 한자를 만들었다는 어떤 학자들의 주장을 믿기 때문이 아니라,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한자를 써왔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 한말까지 우리의 제반 기록이 한문에 의지해 왔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지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글과 함께 한자가 병용되었다. 한자는 우리에게 역사적 무의식이 되었고,비록 문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이 점은 예외가 아니다. 이 무의식을 우리는 남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제 한글 전용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지만,그렇다고 그와 관련된 주장들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한글의 경제성에 대한 주장이 있다. 한자는 익히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는 투자의 측면에서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아니다. 투자가 크더라도 이익이 월등하다면 반드시 비경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점에 관해 충분한 연구가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의견으로,한자가 기계화의 걸림돌이 된다는 주장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기계가 언어생활을 따라와야 옳을 터인데 언어생활을 기계에 맞추어야 한다는 이 생각은 사실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한글이 민중적이라는 주장을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한글은 배우기 쉬울 뿐더러 우리말과도 잘 어울리니 민중의 문자생활을 자유롭고 용이하게 한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의도가 여기에 있기도 했다. 그러나 민중은 항상 ‘어린 백성’이 아니다. 현재의 교육 제도에서 한자를 배우지 못할 민중은 없다. 게다가 모든 글을 한글로 쓰기는 하되,글 쓰는 사람의 발상이 한자나 외국어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그게 오히려 민중을 속이는 것이다.

 

  한자가 우리말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토착어와 한자어를 무리하게 양분하는 데서 오는 오류다. 한자어가 들어와 우리말의 어휘와 내용과 논리를 풍요롭게 했다면 그게 바로 우리말의 발전이다. 우리말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이 말이 곧 우리말이다. 말에는 한자가 없는데 왜 글에는 한자를 써야 하느냐는 막무가내식의 주장도 있다. 말의 논리와 글의 논리는 다르다. 말이 특수한 사안에 구체적으로 대응한다면 글은 보편적 사안에 추상적으로 대응한다. 문어가 차지해야 할 자리를 구어가 차지함으로써 일어나는 혼란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다.

 

  한자에 대한 내 생각은 간단하다. ‘가’를 可,加,歌,家로 쓰는 것인데, 이는 ‘가’를 빨강,주황,노랑,초록색으로 쓰는 것과 같다. 빨간 가는 ‘옳다’,주황색 가는 ‘더한다’,노란 가는 ‘노래’,초록색 가는 ‘집’이 된다. 컬러가 흑백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는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격상한다면,이 기회에 우리의 문자생활에 대해서도 가능한 한 쓸데없는 이데올로기를 개입시키지 말고,가능한 한 과학적인 태도로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다.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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