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시사투나잇
요즈음 자정만 되면 나는 거실로 향한다. 그리고는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비를 켠다. 왜? '시사투나잇' 보려고. 그게 뭔데? KBS 2TV에서 자정부터 약 40분간 하는 뉴스프로그램. 그걸 왜 보는데? 그 이유를 이제부터 말하려고.
아마 9시 뉴스에 완전히 질려서 뉴스란 걸 아예 안 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굳이 9시 뉴스를 볼 필요도 없다. 7시 뉴스랑 똑같으니까. 나도 가끔 밥 먹을 때 우연찮게 보게 되는 경우를 빼면 왠만해선 뉴스를 보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는 뉴스가 사실 전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방송국 전화통이 항의전화로 불이 난다고 한다. 심지어는 있는 사실만을 말해도 뉴스거리 선정 자체가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매우 좋은 비판이긴 하나, 비판자가 꼴통이라는 사실이 문제이다.
매일 똑같은 뉴스에 신물이 났다면, 내가 도대체 저 소식을(예를 들어 이름모를 누군가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등의 소식들) 왜 봐야 하는지 뉴스 제작자 멱살을 붙잡고 묻고 싶을 정도라면, 속는셈 치고 '시사투나잇'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간략한 소개를 위해 방금 전에 끝난 오늘자 방송내용을 순서대로 적어 본다.
1. 국정감사 - 서울시 국정감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다른 뉴스들은 국정감사 하는 과정을 방송하기에 무리 없도록 아주 짤막하게 편집해서 그냥 '국정감사 한단다', '누가 무슨 주장을 했다더라' 라고 방송할 뿐이지만 시사투나잇은 직접 찍은(9시 뉴스랑은 완전히 다르다) 화면을 재미있게 편집해서 길게 보여준다. 오늘은 주로 명바기가 곤혹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실로 통쾌했다. 서울시 행정과장이 증인으로 호명되자 혼란스러운 틈을 타 슬그머니 도망가는 모습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러면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오직 행정수도 공방 문제만을 두고 9시간 동안 떠들었다는 비판을 잊지 않는다.
2. 헤딩라인뉴스 - 이거 보신 분들 많으실 거다. 일종의 풍자페러디 뉴스인데 시사투나잇에서 중간에 해준다.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박진 선수가 외국 용병을 영입하지 않으면 16분만에 골을 먹는다고 호들갑을 떨었단다.
3. 월경축제, 성교육 - 대학가에서 월경축제하는 현장에 가서 축제의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둘러보고 사람들의 인터뷰를 곁들였다. 이런거 해주는 뉴스는 아마 없을 것이다. 덕분에 여자가 월경 전에 몸에 다양한 변화들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고, 관련 책을 읽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추천 환영). 그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행해지는 성교육이 나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괜찮았다. 임신했을 때의 고통을 체험해 보기도 하고 수정의 과정을 인형극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우리때는 왜 그런 게 없었나 싶었다.
4. 외국인 한글 백일장 - 한글날을 앞두고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글 백일장을 열었다고 한다. 외국인들의 한국어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알 수 있었다. 대상을 수상한 탄자니아 여학생의 시는 심금을 울렸다.
5. 미국 동성애자 결혼 허가 - 미국의 몇몇 주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허가했단다. 그래서 직접 미국에 가서 찍어 왔다(외주이긴 하지만 역시 이런 건 다른 뉴스는 일체 안한다). 예상보다 엄청나게 많은 동성애자들이 있었고 동성애자 결혼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그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동성애자 하면 떠오르는 이유없는 거부감이 조금은 사라진 듯 싶다.
보면 알겠지만 별 쓰잘데기 없는 뉴스는 아예 다루지를 않는다. 대신 다른 뉴스들이 그냥 지나치는, 하지만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소식들을 전한다. 그리고 현장에 가서 직접 찍어온다. 한동안은 이라크 소식을 현지에 있는 활동가와 통화를 해서 전했다(기자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포지션은 왼쪽으로 상당히 치우쳐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좋은 놀림감인 것은 당연하다. 가끔은 이렇게 막나가도 되나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뭐 나야 재밌고 좋지만. 혹 내가 여아나운서의 미모 때문에 이렇게 칭찬을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절대,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