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나는 분위기 파악을 못한다. 네티즌을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즉석 투표’에서, 내가 던지는 표는 소수에 속한다. 특히 대미관계나 북한에 대한 생각, 현 정부 정책에 대한 네티즌들 의견은 나를 놀라게 한다. 일하는 동네가 동네이니만큼, 주변의 생각을 좇아 조로한 탓이라 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나이든 변호사들과 네티즌들이 한편이다.
그러나 파견근로 업종을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과 관련한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나도 다수 편이 되었다. ‘다음’의 인터넷 즉석 투표에서는 68.6%가, ‘네이버’에서는 59.61%가 파견법 개정에 반대하였다. 파병에 찬성하고 파업을 매도했던 그들이, 파견 확대에는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왜? “같은 일 하면서 반 토막 연봉 받고 언제 잘릴지 몰라 눈치 보는 게” 눈물나도록 힘들고 “정규직 시켜준다는 말에 하루 12시간씩 일해도 2년 만기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게 파견직의 현실”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만나본 일도 없는 파견회사가 월급 일부를 가져가고, 같은 직장에서 몇 년을 같이 일해 왔지만 원청에 속한 ‘그들’과는 달리,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노동환경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누구나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회사의 인력구조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울긋불긋’이어서 정확히 아는 데만 여러 시간 걸린다. 정부 예산지원을 받아가며 선심 쓰듯 인턴으로 채용하거나 기약 없는 수습기간이라 하다가, ‘위촉직’이라는 정체불명 계약서에 사인하라더니, 듣도보도 못한 파견 업체를 중간에 끼고 파견으로 사용하면서 법이 정한 2년 기한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을 피하기 위해서 몇 달 쉬다가 다시 오라고 한다.
나는 무엇보다 이러한 ‘파견의 일상화’가 무섭다. (성공하는 예는 거의 없지만), 큰 공장의 사내 하청이나 방송사 비정규직처럼, 노조가 만들어지거나 이슈가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엄연히 파견금지 업종에서 상시적으로 행해지지만 누가 알려 주지도 않고, 혹 문제를 알더라도 이를 제기하다가 실업자가 되느니 그나마 ‘파견직’ 일자리라도 지키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어차피 법원에서 이길 수도 없으니, 파견기간 연장 방법이나 상담하고 있는 엉터리 변호사-내가 싫다.
무엇보다 이렇게 당연한 현상이니, 아예 법으로 정하자는 사람들이 겁난다.
일자리보다 구직자가 많은 현실에서 누가 정규직을 쓰겠냐며, 파견을 널리 허용하는 것이 고용을 창출하는 길이라고 한다. 노동부 사무관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기업이 근로자를 어떤 식으로 뽑는지는 자기 맘이고 간접고용을 금지하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아, 노동법 공부를 새로 시작해야 할까 보다. 나는, 한 사람의 노동의 대가를 다른 사람이 중간에서 받는 일을 막고, 직접 사용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중간착취 금지’는 노동인권의 역사가 처음 쓰여질 때 생긴 원리라고, 우리 헌법·근로기준법·직업안정법이 오랜 기간 선언해 온 것이라고 배웠다. 더욱이 차별을 통해 임금을 깎고 해고를 손쉽게 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악용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땅을 팔고 회사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노동을 팔고사는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강한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법이라고 알고 있다. 그게 노동법이라고, 다른 법 아래 있는 법이 아니라 우리 법 체계의 두 기둥 중 하나라고 했고, 그래서 다른 법보다 노동법에 특히 경외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공부했다.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하는 나는, 공부 역시 헛한 모양이다.
억울하다. 내가 사랑해온 노동법이 고작 이거였다니. 억울하다. 당연히 파견법을 폐지하자고 해야 하는데, 이렇게 “개정에 반대”하면서 지금 파견법이라도 지키자는 글을 써야 하다니.
김진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