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이미도는 누구인가
이미도
영화 번역에 관한 한 국내 1인자.
공군장교 출신에 주민등록번호 1자로 시작하는 엄연한 남자인데 이름 가운데 아름다울 ‘美’자가 있다는 이유로 여자로 오인되곤 한다.
좌우명은 영화인답게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의 명언.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라)”.
영화와 골프, 등산으로 현재를 즐기느라 아직 미혼
외화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영화가 막 끝난 극장에 앉아 마지막 여운을 감상하고 있을 즈음, ‘번역 이미도’라는 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엔딩 타이틀이 흐르는 가운데 부각된 이 마지막 자막은 대개 화면에 떠오른지 1초도 안 되어 사라지지만 번역가 이미도란 이름은 우리에게 퍽 친숙하다. 그건 이름만 대면 알만한 블록버스터를 포함해서 통상 1년에 40여편 이상을 번역하는 그의 왕성한 작업량 때문일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 매년 한두 편씩 수입된 애니메이션은 전부 그가 번역했다. 가장 최근의 「글래디에이터」를 비롯하여 「아마겟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 「러브 오브 시베리아」, 「와호장룡」, 「아메리칸 뷰티」등등 흥행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들은 거의 그의 손을 거쳤다. 한석규가 한국영화의 보증수표라면 이미도는 외화흥행의 보증수표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미국 미, 건널 도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영화 매니아였다. 「벤허」를 개봉하던 날은 마치 시네마천국의 토토라도 된 듯 극장에서 살았다. 토요일에는 주말의 명화를, 일요일 밤에는 명화극장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번역가로서의 끼가 있었는지 아주 어렸을, 때에도 영화를 보면서 누가 번역했는지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당시 국내에 소개된 외화는 번역 1세대인 김승호 선생이 전담하다시피 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미군에서 통역일을 하셨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한 아버지는 유난히 미국을 좋아하셨다. 오죽하면 아들 이름을 미국 美, 건널 道를 합쳐 ‘美道’라고 지으셨을까. 무엇이든 풍요로운 미국에서 살라고 그렇게 지어주셨다. 당시만 해도 그 세대에게 미국은 ‘꿈의 땅’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일찍 영어를 생활화했다. 그러고 보면 90년대에 들어 일기 시작한 ‘영어만이 살길’이란 표어의 선구자는 그의 아버지였다. 그러니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 시간이 시시하기만 했다. 철이 들면서 막연히 영화 관련 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술을 천하게 여기셨던 아버지에게 영화를 공부하겠다는 말은 입도 뻥긋 하지 못했다. 결국 대학에서는 스웨덴어를 전공했고 공군 교육장교를 제대하고 광고를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떠났다.
본격적으로 영화일을 시작한 건 서른이 조금 넘어서였다. 94년 유학을 마치고 서울에 돌아온 후 그는 영화 수입 중개업을 하는 선배의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2년간의 미국생활은 그가 영화일을 하기에도 좋은 경험이 됐다. 해외 영화제를 다니면서 우수한 작품을 사들이거나, 제작중인 영화 가운데 될성부른 작품들을 골라 배급권을 따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사들여온 영화를 직접 번역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마침 네이티브 수준의 영어발음과 재기 넘친 언어감각을 알아본 주변에서도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때가 정확히 9년 전. 줄리엣 비노쉬가 주인공인 「블루」를 시작으로 그는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첫작품 「블루」는 아트영화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많은 관객을 얻었다. 곧이어 블루의 연작시리즈 「레드」, 「화이트」를 번역해 연달아 히트시키자 헐리우드 직배사들은 앞다퉈 그를 찾기 시작했다.
헐리우드산 활어를 요리하는 남자
그는 자신을 ‘헐리우드산 활어를 요리하는 남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올 여름 펴낼 책 제목으로 물망에 올려놓았다. 이 책에서는 외화번역가라는 직업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번역과정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담을 생각이다. 영화 한 편 번역하는 데 그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1주일 정도가 고작. 우리나라는 개봉일이 임박돼 수입되는 경우가 많아 번역가에게 허락되는 시간은 최소한이다. 그 짧은 시간에 법조계나 스포츠, 동성애 등 전문분야를 다룬 내용을 제대로 번역하기란 역부족이다. 이럴 때를 위해 영화계 ‘인맥’보다는 전문분야 종사자들과의 관계에도 신경쓰는 편이다. 그 시대의 정보에 어두우면 좋은 번역은 불가능하다. 골프영화 틴컵(Tin Cup)은 가까운 선배중에 골프 전문가가 없었다면 마감에 맞추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의 깔끔한 번역은 이미 할리우드 직배사들로부터 정평이 나 있다. 주제를 벗어나지 않게, 언어의 미묘한 맛을 살린 번역을 그것도 ‘단시간내’에 가장 훌륭하게 번역하기 때문이다. 영화사에서 허락없이 그의 번역에 함부로 손을 댔다간 그와 거래를 끊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만큼 완벽을 기한다. 그는 한 달 평균 세 편을 번역한다. 여름이나 명절 ‘성수기’에는 한 달에 네다섯 편씩 처리할 때도 있다. 그 동안 그가 번역한 영화들은, 매년 외화 흥행순위 10위까지를 석권한다.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원작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번역한다는 그의 말이 실감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보다 더 영화를 사랑하기에 번역 과정에서 원작이 훼손되는 건 스스로 견딜 수 없다.
그가 말하는 가장 좋은 번역은 영화를 보면서도 뭔가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푹 빠지게 하는 것. 그렇게 되려면 대사가 길어선 안 된다. 자막은 2줄 이상을 넘지 않을 것, 길어도 원고지 1줄 분량을 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전후사정으로 이해될만한 대사는 과감히 건너뛴다. 배우가 하는 말을 고스란히 다 옮기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그는 또 한국식 정서에 맞는 대사를 창출하는 것을 최상의 번역이라 생각한다. 감독이 웃기려는 의도가 열 번 있을 때 번역된 작품을 보고 우리 관객들도 열 번 웃게 해주는 게 가장 힘들다. 나라마다 유머의 코드가 다르고 문화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완벽한 자막을 얻기까지 그는 시사회를 포함해서 일곱 번 정도 영화를 본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번역 때문에 흥행했다는 칭찬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이 외화번역가의 ‘업’이다. 영화에 감동받고 나온 사람들 중에 만 명에 한 명도 “정말, 훌륭한 번역이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영화판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어 추가 개런티로 환산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외화를 번역하는 건 공중에 뜬 무수한 말 중에 하나를 잡는 일이다. 관객이 화면 속 배우의 움직임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자막을 보는 세 가지 행위가 동시에 무리 없이 수행될 수 있도록 문장을 압축하고 다듬는 일. 그러나 우리 나라는 선진국들에 비해 아직 ‘번역가’에 대한 인식이나 대접이 터무니없이 낮은데다가, 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제 살 깍아먹기식 경쟁을 하고 있다. 그나마 그의 등장 이후 번역가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엔딩 장면에 번역가의 이름을 넣자고 주장해 관철시킨 것도 그이고 비디오에 번역가 이름을 넣게 된 것도 그가 발벗고 나선 일이다.
그는 개봉 첫날 첫회 상영분을 관객과 함께 본다. 자신이 숨겨둔 웃음과 진실의 여정을 찾아가는 관객들 속에서 그는 행복을 느낀다. 주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한 재치있는 번역에 관객들이 박장대소할 때 그는 또 해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스텝들의 장구한 행렬 뒤로 낙관처럼 떠오르는 ‘번역 이미도’를 확인하며 극장을 나선다.
(http://www.applebook.co.kr/old_applebook/month/april01/03-4.htm)
일단 다 퍼왔구요..
저도 영상물 번역을 해봤었는데, 거기 설정에 맞게 다 조사를 해야한답니다. 가끔 맞지 않는 번역이라도 올라갈때가 있는데, 이유는 한 스크린에 40자 이상이 한꺼번에 떠서는 안돼기 때문이죠. (다 일고 지나갈수가 없는 양이기때문에) 그리고 각 언어의 비어나 은어등은 그냥 상황에 맞게 저희가 바꾸기도 하지요. 물론 나중에 검수하시는 분이 바꾸는경우도 허다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