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 실린 푸코 심포지엄 참관기를 올려놓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참관기'라기보다는 '소개'라고 해야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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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4732

 

 

젊은 연구자들은 ‘오래된 푸코’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학술대회 참관기_ ‘푸코 이후의 정치와 철학’ 심포지엄


 

2012년 02월 27일 (월) 17:55:51 진태원 고려대 HK연구교수·철학 editor@kyosu.net

 

푸코는 1990년대 한국 사회의 지적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한국사회성격논쟁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 한국 인문사회과학의 중심 과제 중 하나가 마르크스주의의 복원이었다면, 1980년대 말 사회주의의 몰락은 이러한 희망을 순식간에 무너뜨려버렸다. 그 이후 곧바로 한국 사회는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같은 각종 포스트 담론의 열기에 휩싸이게 됐으며, 그 중심에는 날카로운 눈매의 민머리 철학자 미셸 푸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성의 역사』, 『감시와 처벌』 같은 책들은 대학 신입생 필독 도서목록에 올랐고, 담론, 광기, 에피스테메, 규율권력, 파놉티콘 같은 그의 용어들은 순식간에 지적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푸코는 한 걸음 뒤로 밀려났다.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이 연이어 권력을 잡으면서 자라난 민주화에 대한 자신감과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로 표출된 대중들의 애국주의적 자부심을 충족시키기에는 규율권력이나 파놉티콘 같은 개념들은 너무 딱딱했다. 그 대신 들뢰즈가 새로운 사상의 총아로 등장했고 노마디즘, 리좀, 탈주가 지적 유행어가 됐다.


2000년대 후반 다시 상황은 급변했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고 전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민주주의가 시대의 화두가 됐다. 들뢰즈를 대신해 랑시에르, 바디우, 아감벤, 지젝 같은 정치철학자들이 새로 호명됐고, 신자유주의를 규탄하는 와중에 ‘88만원 세대’와 ‘복지국가’가 새로운 논쟁의 키워드로 부각됐다.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출간에 쏠린 관심

 

이런 상황에서 왜 새삼 푸코 심포지엄이 필요할까. 오늘날 푸코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서울 종로의 정독도서관을 가득 메운 연인원 400여명의 청중들 가운데에는 이런 질문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푸코가 한국에 소개된 지 20여년이 지났다. 과연 이 ‘오래된 푸코’에게서 어떤 ‘새로운 푸코’를 읽어낼 수 있을까.  

 

사진제공: 그린비

 

 

이번 심포지엄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푸코가 국내에 본격 소개된 지 약 20여 년 동안 광범위한 청중을 상대로 한 푸코 학술 행사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푸코가 한국 학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외국 사상가 중 한 명이고, 그의 주요 저서들이 오랫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상황은 여러 모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목적은, 푸코 사상을 전체적으로 재조명해보고, 그것이 우리 시대를 분석하고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목적은 최근 푸코 르네상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과 관련돼 있다. 푸코는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에 취임한 뒤, 안식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청중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생전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강의는, 1997년부터 강의록들이 유고집으로 출간되면서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특히 얼마 전 국내에 번역된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근간)은 자유주의 및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다루고 있어서 신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학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틀 동안 열린 학술대회 첫날에는 네 명의 연구자가 푸코 사상의 다양한 면모들을 조명했다. 역사학자 고원은 푸코와 아날학파 지적 연관성을 추적하면서 역사학자로서 푸코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특히 그는 페르낭 브로델이 푸코의 지적ㆍ인간적 후원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간명하게 보여주었다.


반면 도시계획을 전공하는 임동근은 푸코의 장치(dispositif) 개념이 프랑스 사회과학계에서 어떤 효과를 산출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푸코가 권력의 문제를 다루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장치 개념은 그에 따르면 우발성과 이질성의 역사를 설명하려는 푸코 계보학의 물질적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그는 이것이 다양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상당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점을 구체적인 예들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청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치학자 홍태영은 푸코의 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지닌 정치철학적 함의를 따졌다. 자유주의 강의 이후 198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푸코는 주체화 양식에 대한 강의로 방향을 전환했다. 따라서 푸코식의 정치가 어떤 것일지 살펴보는 일은 후세 연구자들의 몫이 됐다. 홍태영은 푸코의 강의록에서 인구와 구별되는 인민 개념이 한 차례 등장하는 것에 주목하면서, ‘피통치자의 정치’, ‘국가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사회학자 서동진은 ‘푸코와 사회적인 것’이라는 발표에서 푸코에서 정치경제학의 지위라는 문제를 다루었다. 특히 그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의 대비를 통해 푸코의 내재적 유물론의 한계를 밝혔다. 곧 푸코는 정치경제학을 일종의 아 프리오리로 간주함으로써 反경제주의로 나아간 반면, 마르크스는 ‘노동력 상품’이라는 독특한 상품에 근거해 정치경제학 비판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양자 중에서 더 효과적인 것은 그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자유주의 비판이다.


둘째 날에는 프랑스철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이 푸코 철학의 여러 측면을 살폈다. 허경은 푸코 철학이 우리의 근대를 설명하는 데 어떤 의의가 있는지 해명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푸코의 지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독해하면서 푸코의 철학적 관심은 서양 근대성의 한계를 살피는 데 있음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결국 우리에게 근대성이란 무엇이었는가, 근대성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라는 비판적 질문을 낳는다.


심재원은 푸코 사상의 전체적인 면모를 집약적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푸코의 철학을 관계론적 유명론으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관점이 네트워크로 구성된 세력관계로 권력을 규정하는 그의 권력론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후기 강의록에서 나타나는 견유주의에 대한 분석은 푸코가 파레지아(parrhesia, 진실을 말하기)와 실존 양식의 결합을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푸코, ‘파레지아’와 실존양식 결합 추구

 

진태원은 ‘푸코와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푸코가 민주주의를 다르게 사고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는 특히 동시대의 ‘바깥의 정치’의 사상가들(바디우, 랑시에르, 지젝, 아감벤 등)과 푸코의 차이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푸코 강의록의 번역자이기도 한 심세광은 푸코가 1983~84년 강의록에서 다루는 파레지아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그는 흔히 파격적인 기행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는 견유주의자들의 삶의 양식은 스캔들을 통해 세계를 변혁하려는 파레시아의 실천의 표현이라는 점을 역설했다. 신자유주의적 예속화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차례의 심포지엄으로 새로운 푸코의 도래를 단언하는 것은 성급할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청중의 열기와 진지한 분석과 실천적 관심이 결합된 발표들을 접하고 나니 이 날의 푸코는 이미 더 이상 예전의 푸코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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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diony 2012-03-0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처음으로 인사드리네요. 늦었지만 심포지엄 기획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양일 오후 발표만 들을 수 있어서 좀 아쉬었습니다. 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면 꼭 사보고 열심히 곱씹어 봐야 겠습니다. 언제쯤이면 단행본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 그리고 혹시 지금 선생님께서 몸 담고 계신 학교 이메일을 사용하고 계신가요?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몇가지 꼭 여쭙고 싶은게 있어서 그 쪽 메일을 통해 보냈는데 확인을 못하시는것 같더라구요.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다음에 좋은 곳에서 또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블로그에 종종 흔적 남기겠습니다. 건강하세요.

balmas 2012-03-01 23:56   좋아요 0 | URL
예, 책은 올해 10월쯤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메일 확인했습니다. 곧 답장 드릴게요.

도그마 2012-04-10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가 "리얼리티(Reality)애 대한 상상(想像)"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사는 누구도 그 "리얼리티"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그런데 선거만 되면 프랑스든 한국이든 그 사회를 지배하는 지배집단들에게 다양한 명칭으로 "주체로서" 호명(呼名)됩니다.주체로 호명된 그들은 선거날 스스로를 "주체"라고 생각하며 투표합니다.
그럼 "주체들"이 투표한 선거가 끝난 다음에 세상이 바뀌나요?
조금 바뀔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은 없으며 오히려 지배집단이 만들어낸 지배질서가 공고화해지는 효과를 낳게 됩니다. 선거라는 것은 결국에는 지배집단이 생산해내는 이데올로기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主體-效果)왜냐하면 이 세상의 "리얼리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리얼리티"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선거로 어떻게 그것을 바꾸겠습니까?
그럼 어떤 방법이 있는가? 저도 모릅니다.

이런 식으로 알튀세르를 이해해도 문제가 없을까요? 푸코의 문제의식을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비판하는 것도 가능하죠. 푸코와 들뢰즈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주체"가 가능하다고 봤지만 알튀세르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이데올로기 안에 있다고 주장하며 사실상 그들을 비판한 거나 다를 바 없습니다. 도그마를 경계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balmas 2012-04-11 04:05   좋아요 0 | URL
전체적으로 무엇을 질문하려는 의도인지는 이해하겠습니다. 그런데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의가 생각보다 좀더 미묘합니다. 도그마님이 정리하신 것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전적인 맑스주의 이데올로기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죠. ㅎㅎ

사실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알튀세르의 생각도 시간이 지나면서 좀 변화했다고 볼 수 있고, 그 이론 내부에 얼마간 애매성도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1) 알튀세르는 리얼리티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전 맑스주의와 마찬가지로 알튀세르는 그 리얼리티를 넒은 의미의 '경제', 곧 생산양식이라고 생각했고, 맑스주의는 그것을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고 봤죠. 도그마님이 "이 세상의 '리얼리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도그마님이 이미 포스트맑스주의적 관점을 은연중에 전제하기 때문일 겁니다. 적어도 알튀세르 자신은 맑스주의자로서 리얼리티는 계급투쟁, 특히 생산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계급투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리얼리티를 직접 인식하지 않고 상상계를 통해서 인식하게 됩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정의하죠.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실존 조건들과 맺고 있는 상상적 관계를 표상/재현/상연한다." 또는 이렇게도 정의합니다. "“인간들”이 이데올로기 안에서 “서로 표상/재현/상연”하는 것은 인간들의 현실적인 실존조건들, 그들의 현실 세계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에서 그들에게 표상/재현/상연되는(représenté) 것은 그들이 이 실존조건들과 맺고 있는 관계다."

여기서 핵심 논점은 이데올로기는 인간들의 "현실적인 실존 조건들"을 표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이 실존조건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표상/재현/상연한다는 점입니다. 이때 현실적인 실존 조건이란 계급적 조건을 말합니다. 곧 자본주의를 비롯한 계급사회에서 모든 인간, 개인은 계급의 한 성원으로 존재하지 추상적인 개인이나 인간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데올로기 속에서 어떤 계급에 속한 사람은 어떤 계급의 성원으로 나타나지 않고(재벌, 노동자, 농민, 지식인 ...)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나타납니다. 곧 이데올로기 속에서 계급 성원으로서 x는 추상적인 개인 x로서, 계급적인 조건과 무관하게, 그러한 조건에 앞서 그 자체로 성립하는 개인으로서 상상적으로 표상/재현/상연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상상적 표상/재현/상연은 가상적이기는 하지만 전혀 환상적이거나 공상적인 것은 아닌데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는 법적 체계를 통해 모든 사람을 법적 주체,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주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도적 차원에서 그렇게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실 사회에서 각 개인은 계급이라는 현실적인 존재조건에 따라 규정됨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계급적 조건에 선행하는 추상적인 개인 x로 나타나며, 또한 이데올로기적 제도 속에서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 거죠.

알튀세르가 {재생산에 대하여}에서 든 사례를 보면, 노동자와 자본가는 계급적으로 상이하고 또 불평등하지만, 법적인 관계에서 보면 동등한 개인, 동등한 법적 주체입니다. 그래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동등한 법적 주체로서 고용 계약을 맺는 거죠.

3) 이렇게 본다면, 알튀세르는 고전 맑스주의에 충실하게 '경제'를 '리얼리티'로 간주하면서도,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리얼리티에 대한 '표상'이나 '상상'으로 환원하지 않고, 리얼리티 자체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는 고전 맑스주의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고전 맑스주의와 상당히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