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참세상]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1>-지금은 다 개방중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1)

이정석 기자 
다 개방한다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의제가 7개 분야 13개 주요 의제인 걸로 알고 있는데, 에너지, 물, 의료, 교육, 환경, 과학기술 등 모든 분야가 포괄됩니다. DDA 협상 시한이 2005년 12월 홍콩각료회의까지 연기되긴 했으나, 한국 정부는 이미 2003년에 150여 개 분야의 양허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개방 입장은 정해진 것이고 수위와 시기 문제만 남은 것 아닌가요?”

정상철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개방이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임을 직시하며 되물어왔다. 에너지, 물, 의료, 교육, 환경, 과학기술 영역이 개방된다는 것은 사실상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개방하는 것이다. 공공서비스 영역이 개방되면 가뜩이나 어려운 고용과 노동조건의 악화가 불보듯 훤하다며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우리 나라 서비스 분야 종사자가 고용의 70%를 차지하고, 공공부문에만 대략 400만 정도다. 그 중 약 150만 명이 비정규직인데, 이대로 가면 더 확대될 거고, 노동강도는 더 강화될 것이다. LG칼텍스가 몇 조 원의 수익을 낸 3년인가 5년인가 기간 동안 고용은 단 1명만 늘렸다.”

돈 없으면 교육 못 받고, 병 못 고치고

교육 개방도 물이 올랐다. 외국 교육자본이 학교 설계에 들어갔다. ‘WTO교육개방 저지와 교육공공성 실현을 위한 범국민교육연대’ 조희주 집행위원장은 “고등학교의 55%, 대학의 84%가 사립재단에 의해 운영되는 우리 나라에 외국 교육기관이 영리법인 학교을 세우게 되면, 돈벌이 학문만 발달하고, 고교 평준화는 해체되며, 공교육의 골간이 붕괴될 것”이라며 교육 개방이 미칠 영향을 걱정하였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입법 예고되고 있는 외국교육기관특별법(안)에 대해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은 국내에 외국자본이 맘놓고 들어와 공교육을 갖고 돈벌이하도록 배려해주는 악법이자 한국 공교육을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 위험천만한 악법”이라며 국민의 교육기본권을 앞장서 위협하는 정부의 교육시장화・개방화정책 방향을 비판하였다.

손지희 전교조 정책연구국장도 "지금 가장 큰 현실 쟁점은 앞서 말한 '외국교육기관특별법'이고 그 내의 3대 독소조항이다. 내국인입학 허용, 학력인정, 영리추구 허용의 파격적 '혜택'이 외국교육기관에 부여되면 국내 대학의 80%, 공교육의 절반인 사립이 어떤 요구를 할지 눈에 선하다. 특히 영리 추구 허용은 현행 사립학교법으로도 제어가 안 된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는가"라며 정부가 개방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교육을 시장판으로 만들려 한다고 비판했다.

조남규 전교조 정책위원은 “대학서열 체제로 인한 학벌사회의 모순과 입시지옥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정부는 공교육을 정상화 하기보다는 대학구조조정, 국립대 민영화, 경제논리에 따른 평준화 해체, 사학청산법, 외국교육기관특별법 추진 등을 시도하고 있다”며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을 개탄했다. 의료 영역도 급하긴 매한가지다.

“국민들이 공공의료를 제공받은 정치적 경험도 없고 국가로부터 그것을 요구할 생각도 못하고 있어요. 의료에 대한 불만은 높지만, 국가가 그걸 한 번도 책임진 적이 없으니, 민간시장만 늘어나고 극성을 부리는 거죠.”

박주영 민중의료연합 활동가의 말이다. 여기서 민간시장만 늘어난다는 말 역시 세계화와 연관되어 있다. 국내외 병원자본이 건강을 상품으로 가공해서 사고 파는 일이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의료 개방은 말 그대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국내외 병원자본에게 팔아 넘기는 일이다. 국내 대형병원들은 진작부터 시장개방에 대비한다고 병원을 대형화, 전문화시키고 있다. 병원자본이 더 많은 투자를 감수하는 것은 그만큼 '개방'이 가져올 수익 규모를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보건의료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매우 높아 기대수준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외국계 병원들이 막강한 자본과 축적된 노하우를 앞세워 국내시장에 몰려들면 시장은 순식간에 외국자본에게 넘어갈 겁니다.”

의료 개방의 경우, 1995년 1월부터 의료기관 시설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허용되었고, 2002년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면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외국인 의료기관의 설립이 가능해졌다. 더군다나 내국인 진료 허용뿐 아니라 현재 '비영리법인'으로 되어있는 의료기관을 '영리법인'으로 허용하는 문제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두가 재경부와 청와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복지부는 눈치만 보는 모양세다.

따라서 외국 교육자본과 마찬가지로 외국 병원자본은 의료를 매개로 돈을 벌 수 있는 한국시장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이 더 높은 고급의료 서비스를 원하고 있고, 그만큼 수요가 늘어날 것이며, 노령인구 증가로 의료비 지출이 더욱 팽창할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수지타산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 병원자본의 '전문화된, 고급의, 선진화된' 의료서비스는 구매력있는 상품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등장할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리병원은 민간보험을 패키지로 끼고 돌 것이다.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병원은 자율적으로 민간보험과 계약을 맺고, 건강보험에 적용되던 질환 범위도 대폭 축소한다는 말이다. 가령 삼성병원 가려면 삼성생명에 가입해야 하고, 현대아산병원에 가려면 현대해상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허용, 의료기관의 영리법인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개정 여부가 최대의 쟁점인데, 박주영 활동가는 이렇게 의료개방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딱 잘라 말한다.

“돈 없으면 병원에도 못 가보고 죽는 거죠.”

철도, 가스 사유화 속도 높이고

개방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사유화 문제도 심각하다. 가스의 경우 공사는 그 동안 분할 매각 방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해왔는데, 공사도 ‘도입 수송 계약의 승계, 도입판매회사 신설에 따른 이윤 반영 및 간접비 증가, 거래시스템 구축 등 추가 비용 부담, 수급조절 기능의 악화’ 등의 이유로 불가능한 조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공사는 이의 대안으로 신규진입 방식을 내놓고 있는데, 이에 대해 송유나 사회진보연대 자문위원은 “직도입 역시 가정용 요금인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사적 과점화를 부추기고, 직도입 물량의 확대와 기존 계약자의 이탈 가능성으로 인해 LNG 수급조절 능력을 현격히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하고, “결국 가스공사가 시장의 위험을 떠안아야 하며, 위험을 관리하지 못할 시 심각한 국부 유출 및 '부채의 사회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며 이 내용이 반영되는 가스사업법은 정당하지 않다고 짚었다.

또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 예고되고 있는 철도사업법안은 공공성에 기초한 철도 운영체계를 수익 중심의 경쟁체제로 바꾸는 것으로, 넓게 보면 역시 개방 문제와 맞물려 있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철도사업법(안)은 김대중정권 때부터 추진해온 분할 만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내용도 그렇거니와 공청회 한 차례 없이 제정법률로 다룬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라고 말하고, “철도 운영을 지역, 고속, 남북철도로 분할하여 민간자본과 해외 자본에게 철도사업 참여를 열어놓는 사실상의 철도사유화 법”이라고 설명했다.

철도사업법이 통과되면 민간사업자에 의한 외주 하청과 민간 위탁의 증가로 철도노동자들에게는 구조조정 공세가 더 강화되고, 민중에게는 요금인상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정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미 체결, 비준된 한-일 양자투자협정을 보면 철도가 예외조항으로 되어 있다. 그만큼 철도 민영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한-일 자유무역협정 의제로 남북철도 연결과 함께 한-일 해저터널 문제가 다뤄지고 있는데, 철도사업법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정부의 태도가 이런 사안들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정상철 공공연맹 사무처장은 “철도는 지방본부로 쪼개어 언제든 민영화가 가능하게 하는 철도사업법, 가스는 가스사업법 등으로 투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공공연맹에서는 공공서비스 시장개방 저지 및 사회공공성 강화 특위를 구성하여 대처할 예정이나 얼마나 대응해낼 지는 미지수”라며 현실적인 대응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쌀 개방도 예외 없으며

농업 개방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으로 농산물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데다 전체 농가의 80%가 경작하고 있는 쌀마저 개방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실정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당시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국으로 인정받은 이래 10년간의 유예기간이 만료되기 때문이다.

정광훈 쌀국본 대표는 “쌀 개방은 농민의 생존권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가치 측면에서도 막아야 된다”고 말하고, “쌀이 개방되면 농민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도시 문제도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며, 의료, 교육, 공공 기간산업 개방 반대와 함께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쌀마저 개방되면 400만 농민은 앞으로 10년간 1/10 규모로 축소된다는 전망이다. 이 과정은 사회적 빈곤화 과정과 맞물려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다는 이야기인데, 이미 개방의 고삐는 풀릴만큼 풀렸다는 이야기다.

초국적자본, 알짜는 이미 다 챙겼다

세계화에 따른 개방 물결 이야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돌아보면 외환위기를 정점으로 자본 개방 물결이 거세게 몰려왔다. 초국적자본의 활동을 따져보면 자본 투자의 면에서는 더 이상 개방할 게 있는가 할 정도로 완전 개방된 것이나 다름없다. 체결했거나 체결을 추진중인 다자협상이나 양자투자협정, 자유무역협정과 관계없이 자본의 투기는 지금까지 별다른 장애없이 자유롭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가령 국내에 있는 은행의 실제 주인을 따져보면 모두 외국 자본으로 되어 있다.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이 60%를 상회한다. 특히 국내 은행산업의 외국인 주식보유 비중은 지난 6월말을 기준으로 약 63%로 사실상 외국자본 지배체제 하에 들어갔다.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5월 13일 서울에서 열린 Asia Society Conference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국제 금융 거래에 대한 자유화 조치는 신흥시장에서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격히 진행되었다”고 말했는데, 이에 따른 폐해마저도 금융개혁의 성과로 언급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장화식 사무금융연맹 부위원장은 8월 25일 대한투자증권 강당에서 열린 투기자본 국민대토론회에서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국내 증권시장에 유입된 외국자본의 약 95%가 단기성 투기자본이고, 안정적인 장기투자는 5%에 불과하다”며 “이러한 투기자본은 각종 탈법과 불법, 합법을 가장한 편법적 금융기법을 동원하여 투기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외국 자본은 99년에 약 48조원, 2001년에 약 29조원, 2003년에 약 36조원의 이익을 챙겼으며, 98년 이후 2003년까지만 약 93조 6천억 원의 평가이익을 발생시킨 것으로 되어 있다. 자유롭게 투자하고, 맘먹은 대로 챙겨갔다는 이야기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상위 10개 대기업의 외국인 주식소유 비중은 더 높은 실정이다. 2004년 1월을 기준으로,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은 58.18%, SK텔리콤 48.99%, 국민은행 74.38%, POSCO 66.76%, 현대자동차 51.23%, KT 46.82%, LG전자 36.06%, 삼성SDI 37.14%, 신한금융지주 52.40%로 절반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글로벌스탠더드를 적용해야 하고, 노동유연화도 더 높여야 한다며 개방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개방, 과연 대세인가

최근 2-3년 개방은 부문 영역별로 불균등하게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올해 개방 속도를 보면 가파르기도 하거니와, 사회 전 부문 전 영역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세계 자본운동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자본간 시장 확보와 이윤 획득을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데, 다자협상의 연장, 자유무역협정의 확산, 유럽, 전미, 아시아 등 지역블록화의 형성 등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따라서 앞으로 1-2년이 세계 시장질서 재편에 있어, 지각변동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개방은 대세가 맞다. 그러나 민중의 모든 부분, 영역에서 개방에 반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로 압축된다. 개방이 다수 민중의 생존과 삶을 침해하고, 억압하고, 위협하며 진행되기 때문이다. 착취의 세계화, 빈곤의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개방이라는 점에서 다수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부르는 것이다.

지금 개방에 반대하고, 자본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운동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민중이, 민중운동이 진지하게 해결의 실마리를 내놓아야 할 때다.

[특별기획]세계화에 저항하라
1회(9. 9) - [취재] 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
2회(9.16) - [기고/좌담] 미 제국주의와 반제, 반전 운동
3회(9.23) - [기고/영상] 반동의 제국주의, 전쟁은 계속된다
4회(10. 5) - [기고/취재] 한-미동맹의 현주소와 한반도 전쟁 위기
5회(10.12) - [기고] 무한 자본시장 확장의 결절점, 지역블록화
6회(10.19) - [기고/취재] 아시아 황금시장 노리는 초국적자본
7회(10.26) - [기고/좌담]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1) : 의료,교육,스크린,방송,에너지 개방
8회(11. 2) - [기고/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2) : 금융세계화와 투기자본의 횡포
9회(11. 9) - [대담/취재] 초국적자본이 점령한다(3) : 산업공동화, 한-일FTA, 기업도시
10회(11.16) - [대담] 자본의 세계화와 저항의 세계화

 

“반세계화운동의 동원전략과 정치적 방향 수립을”

 

[특별기획] “세계화에 저항하라”(1)-세계화 10년, 저항의 세계화<2>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 반세계화운동 과제 제기

 

이정석 기자 
반세계화운동의 도화선, 씨애틀 전투

1999년 씨애틀 전투가 반세계화 운동의 도화선이었다는 데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은 없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새로운 무역협상을 출범시키려 했던 WTO 각료회의가 5만의 반세계화 시위대에 가로막혀 개막식도 치르지 못하고 무산된 사건이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 전념하다시피 했던 한국 노동운동에 있어 씨애틀 전투 소식은 다소 먼 곳의 이야기로 받아들인 것이 사실이다.

시애틀전투는 미국노총 AFL-CIO의 대규모 동원으로 70년대 베트남 반전투쟁 이후 최대의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90년대 후반 MAI(다자간투자협정) 반대투쟁, 실업과 사회적 배제에 반대하는 유로마치, 유럽차원의 EU-G8 반대투쟁 등 지역별, 국가별 반세계화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이 투쟁들 모두는 시애틀 전투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주곡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씨애틀 전투에 대한 이창근 민주노총 국제부장의 말이다.

“첫째, 국제기구와 협정에 맞선 직접행동과 국제적 조정과 연대 투쟁의 필요성을 국제적으로 각인시켰고, 둘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세에 맞선 20여 년 간의 수세적인 국면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셋째, 전술적인 측면에서 각료회의장을 포위, 타격하여 각료회의를 실질적으로 저지시킴으로써 국제공동행동의 전형을 창출했다는 점 등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반세계화 운동은 2001년 9.11 테러를 전후해서 소강 국면에 접어든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선언은 반세계화 운동을 크게 위축시켰다. 미국 내에서 IMF-세계은행 총회에 맞서려던 투쟁이 취소되었고,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 대응 투쟁은 상징적인 국제행동의 날 행사로 대신했다. 9.11 이후 벌어진 미국의 아프간 공습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자, 씨애틀 전투로 고양되어온 반세계화 운동이 소멸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낳았다.

반제국주의, 반전운동과 결합으로 확장

그러나 2002년 1월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제2차 세계사회포럼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4월 바르셀로나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반세계화 시위를 벌임으로써 반세계화 운동의 물꼬가 다시 트이기 시작했다. 이 즈음 반제국주의와 반전 운동을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많이 제기되었고, 반전투쟁 역시 고양기를 맞았다. 영국 런던의 40만 반전시위가 이를 웅변한다. 이창근 국제부장은 이후 전개된 반전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애틀 투쟁 이후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투쟁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계기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의 활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3년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은 9.11사건으로 제공된 국제적인 공안국면을 공세적으로 극복하고, 반세계화 운동의 정치적 의미를 강화시킨 계기였죠. 즉 현재 무한전쟁은 금융세계화,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에 대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초국적자본의 공동관리, 공동지배를 위한 전쟁이고, 이는 이라크에 대한 침략 전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플랜콜롬비아 등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형태의 무력, 폭력 개입까지 포함하는 것이었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2.15 국제반전행동은 대안세계화 운동에 있어서, 국제기구 및 협정에 대한 포위, 타격 투쟁을 반제, 반미 등 군사세계화 문제와 결합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이 처음 열린 것은 2001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투기자본 거래에 대한 토빈세 신설을 목표로 유럽의 반지구화운동을 주도해온 프랑스 ATTAC(투자과세시민연합)과 진보적 신문 "르몽드 디를로마티크"의 제안으로, 지배엘리트가 주도하는 세계경제포럼에 대당하는 대안 토론의 장이 마련되었다.

대안 토론의 장, 세계사회포럼

2001년 1차 포럼에는 12,000여명이 참석하였으나, 2002년에는 1차포럼의 성공에 힘입어, 123개국 공식대표단 12,000여명을 포함, 모두 6만명 규모가 포르투 알레그레로 결집했다.

제2차 세계사회포럼은 제국주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공세와 전쟁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정치적으로 성공하였으며, 2003년 1월에 열린 3차대회에서는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을 결의하는 등 반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이 하나의 운동임을 확인하였다. 이창근 국제부장은 반세계화 운동의 발전을 위한 세계사회포럼의 과제를 짚었다.

“세계사회포럼은 대안세계화 운동의 발전과 전망의 재구성에 있어서 핵심적인 결절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세계화의 상징적 의미를 넘어, 어떻게 운동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을 활성화시킬 것인가가 핵심적인 과제죠. 즉 세계사회포럼 운동의 미래를 위해서 현재 무엇인가를 변화시켜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세계사회포럼은 국제적으로 '세계화가 대세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을 대중화, 여론화시키는 데 성공한 지금의 국면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야 합니다. 반세계화 담론(안티 담론)을 극복하는 초창기의 유의미성을 넘어야 한다는 건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의 도전 과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는 강령인데, 워싱턴컨센서스에 대비되는 포르투알레그레컨센서스를 구성할 필요가 있어요. 이는 세계사회포럼의 각종 워크숍 등에서 제기되는 내용들을 이론화 정치화시켜 지속적으로 논쟁하고, 업데이트 해나가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 구조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합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 과정에서 세계 사회운동세력의 민첩함과 유연함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소유 사상을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03년 1월말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제3차 세계사회포럼은 2002년 하반기 유럽 반전운동의 성과를 전지구적 투쟁으로 확장시켜 2.15국제반전공동행동의 역사적 투쟁을 가능하게 했다. 비록 3월의 이라크 침공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는 제국주의세력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는 정치적 성과를 통해, 전쟁세력들의 국내적 정치적 기반을 와해시켰다.

세계사회포럼에서 결의한 2.15국제반전공동행동

반전투쟁의 맥락에서만 보면 하반기 9.27, 10.25 등 국제반전투쟁이 반전운동의 불씨를 살리는 중요한 투쟁이었지만 2.15국제반전공동행동 당시 국면을 확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11월의 유럽사회포럼에서 제기된 2004년 3.20 국제반전투쟁, 제4차 세계사회포럼에서의 반전총회, 각 국에서 벌어진 파병 철군 투쟁과 9월 베이루트 반전 전략회의 개최 등 국제 반전운동의 명맥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전운동과 반세계화운동 역시 지속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반WTO, 반FTAA 투쟁은 매우 큰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 2003년 9월 WTO 칸쿤회의와 11월 마이애미 FTAA 회담은 모두 강력한 반세계화 투쟁에 막혀 결렬됐다. 2003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공세를 통해 새로운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던 제국주의의 시도는 전세계 노동자들과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혀 사실상 좌절된 것이다.

지난 2003년 9월의 칸쿤투쟁은 반세계화운동의 투쟁력을 복원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9년의 시애틀 전투를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는 WTO 체제 고유의 모순과 한국 농민 이경해 동지의 자결에 따른 투쟁 성과였다. 칸쿤투쟁 승리로 반세계화운동은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다는 정치적 역량과 자신감을 갖추게 되었으며, 보다 정교한 전략과 동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 역시 이창근 국제부장의 말이다.

“결국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운동은 시애틀 투쟁과 국제반전투쟁을 거치면서, 두 가지 측면의 과제가 제기됩니다. 하나는 국제적 동원전략과 일국적 동원전략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국제공동행동의 날은 국제주의적 시각의 형성과 확산,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투쟁의 집중점 형성 등에 있어서 그 유의미성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전술이 남발되고 일국적 동원전략과 결합되지 않으면 홍보용 이벤트로 전락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국적 동원 전략, 일국적 수준의 운동주체 형성, 특히 대중조직과의 결합력 강화가 핵심적으로 요구됩니다. 두 번째로 대안세계화 운동의 내용적, 정치적 측면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어떻게 공동의 내용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 차원에서의 핵심은 금융세계화와 군사세계화 문제를 결합하고 공동 강령 및 내용을 합의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한국 반전, 반세계화운동, 세계 민중투쟁과 함께

미국 주도의 제국주의 질서 재편, 지역블록화와 자유무역협정의 확산, 다자협상의 연장과 세계적 수준의 축적위기의 심화 등으로 압축되는 오늘날 자본운동의 흐름은 반제, 반전, 반세계화 운동과 필연적으로 대치하게 된다.

한국에서의 반전, 반세계화 운동도 어느덧 세계 민중의 투쟁과 맥락을 같이 해나가고 있다. 특히 작년 교육개방 반대,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반대, 공공성 쟁취 투쟁과 반전투쟁의 형성 등 민중의 투쟁은 세계 반전, 반세계화 투쟁의 내용과 큰 차이를 갖지 않는다. 나아가 한-미 양자투자협정, 한-일, 한-싱가폴 자유무역협정 체결 반대 투쟁 등 신자유주의적 자본협정에 반대하는 투쟁 과제를 제기함으로써 본격적인 반세계화 운동을 열어가고 있다.

이창근 국제부장의 말대로 한국에서의 대중적 동원전략과 국제적 동원전략을 결합시켜가야 할 과제와, 반세계화의 정치적 내용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과제를 동시에 풀어가야 할 시점을 경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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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9-13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시의적절한 기획이군요. 이 참에 공부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