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1989년 이른바 '한겨레신문 방북 취재 기획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신 당시 리영희 한겨레 논설위원이 국가 권력의 대행기관인 검사의 신문에서 국가보안법의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조목조목 따진 글이다. 15년 전에 발표된 글이라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따지기 위해 조목조목 든 14가지가 지금의 싯점에서 보면 조금 상황이 변한 것도 없지 않으나 지금 보아도 보안법의 '허구성과
비논리성'을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겨 원문 그대로를 옮겨서 적어 본다.
이글은 리영희 교수가 펴낸 <자유인>아라는 책에 실려 있으며, 책 안에서의 작은 제목은 "객관적 진실과 법률적 허구"이다.
정확히 6개월 만에 '한겨레논단'에 돌아왔다. 그동안 뜨거운 격려와 사랑을 보내준 독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나는 옥중에서 확인한 감동적인 우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한겨레신문 기자단 방북취재 기획 사건'은 수많은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의 전형이다. 그 핵심적 쟁점은 휴전선 이북에 존재하는
정치적 실체의 '성격' 규정에 있다. 다른 모든 문제는 부차적일 뿐이다.
<한겨레신문>과 나에 대한 공소장 20매는 그 본문 첫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북한 공산집단은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다. 그 끝줄에서 <한겨레신문>은 "그런 단체가 지배하는 지역"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반국가단체'라는 성격 규정이 각기 상이한 내용의 모든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정부 쪽 주장의 논리적 대전제가 된다.
과연 정부의 그런 주장이 객관적 진실 검증을 견딜 수 있는 것인가? 혹시 한때 냉전시대의 맹목적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허구는 아닌지? 나는 국가를 대리한 '검사'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였다.(지면관계상 요점만 적어본다)
1) 광복과 동시에 한반도는 38도선으로 분할됐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반국가단체'가 지배한다는 그 지역에 대해서 대한민국은 통치권을 행사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
2) 정부가 주장해온 이른바 '유일 합법정부론'의 근거인 유엔총회 결의 (제 195호의 제 2항, 1948.12.12)는 1948년 5월 선거(5.10선거)가 실제로 실시된 38도선 이남에 제한된 것이다.(담당 검사도 이 사실을 시인했다)
3) 한국전쟁 초반에 점령하에 놓인 38도선 이북 지역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이 '유일 합법정부론'에 입각해서 대한민국 민정장관을 임명, 파견했다. 그러자 유엔은 그 지역 (38도선 이북지역, 즉 지금의 북한)이 대한민국 행정관할의 밖이라는 근거로 한국 정부의 결정을 취소시켰다.(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 보고서
A / 1881, 1951년)
4) 대한민국 수립 뒤, 한국을 승인하고 수교하는 관계에 있어서 각국은 이 제한적인 결의를 '고려'하라는 유엔의 그 결의 제 9 항의 '권고'를 따르고 있다.
5) 북한을 '반란단체'라 하여 북한을 승인한 국가와는 수교하지 않고, 수교했다면 수교 단절을 고수하던 60년대의 원칙(이른바 할슈타인 원칙)은 이미 백지화된 지 오래다.
6) 그 결과로 대한민국은 현재(1988. 8. 10) 북한을 독립,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있는 102개국과 수교하고 있다.
7) 박정희 군사정부의 '통일원칙에 관한 남북공동성명'(7.4 공동성명)은 최초의 사실적 승인이다.
8) 1980년 1월부터 추진 중인 '남북한 총리회담'은 그 명칭이 말하듯이 주권국가 정부간의 회담을 위한 것이지 '반란단체'와의 회담이 아니다. 반란단체'에 어찌 정부조직인 '총리'가 있을 수 있는가?
9) 전두환은 '남북 최고책임자회의'를 갖자고 '김일성 주석'에 거듭 제의했다.
대통령이 '주석'이라고 공식화 했는데 대통령을 따라 '주석' 용어를 쓰는 국민은 왜 처벌되어야 하는가?
10) 정부는 '불법 조직된 반국가단체'인 북한에 대해 주권국가 만이 회원이 될 수 있는 "유엔에 함께 가입하자"고 독촉하고 있는데 이 모순을 국가보안법은 또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11) 행정부와 국회는 1985년부터 '남북 국회회담' 개최를 추진 중이다.
어째서 반란집단이 입법부인 '국회'를 가질 수 있는가?
12) 남북 정부는 지금 상대방의 정식 국호를 공문서에 사용하고 있다.
(나는 실제로 정부기구의 회의에 참석하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무원 총리 연형묵'으로부터 ' 대한민국 국무총리 강영훈 귀하'에게 방금 전달된 공식문서를 토대로 정책토론을 했었다.)
13)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 '주권국가 정부만'이 발급하는 북한의 여권사증(비자)을 받고 '반란집단'의 지역으로 '잠입' '탈출'하는 행위를 정부가 "승인"했다.
14) 대한민국이 국가적 운명을 의탁하고 있다는 '한미 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사실상' 휴전선 '이남'으로 규정하고 있다.(제 3조 및 종말부칙 '미합중국의 양해사항')
국가보안법이 대전제로 규정한 이북 지역은 과연 어떤 성격인가? 진실로 문제인 것은 오히려 보안법의 성격이 아닐까?
(1989년 10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