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방인”
     
민영순 전시회 'Xen-이주, 노동과 정체성'

 김윤은미 기자
 2004-08-15 19:48:47



벽에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붙여져 있다. “세계 인구 35명 중 하나는 이주민이다”, “다른 선진 산업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이주노동자들을 3D업종에 신축성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방 한가운데 설치된 프로젝터가 돌아가면서 파란색 빛을 벽에 쏜다. “4년 이상 한국에 거주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은 2003년 말까지 강제로 한국을 떠나도록 압박 받아왔으며, 이것은 마치 쓰고 나면 버리는 일회용 컵과 같은, 혹은 범죄자와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설명하는 압축적인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이 작업은 13일부터 9월 18일까지 쌈지스페이스에서 열리는 민영순의 전시 'Xen-이주, 노동과 정체성'으로, 2층 프로젝트 갤러리에 설치되어 있다.

‘이방인’으로 주변에 위치한 이들

전시 제목 ‘xen-’은 '손님,' '외국인,' '이방인,' '침입자'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그리스어 어근으로, 동양 종교철학 선 사상(禪) Zen과 동음이의어이기도 하다. 작가 민영순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방인(xen-)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을 명상(zen)하도록 유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영순의 전시처럼 이주노동자와 이주민의 정체성을 다룬 전시는 흔치 않은데,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라는 다중 정체성을 지녔기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 4월 추방된 이주노동자 단체의 리더 네팔인 사마 타파부터 군포에서 노동하는 방글라데시인들, 직장에서 사고로 손가락을 잃고도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한 파키스탄인 등 30여명을 인터뷰해서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3층 메인 갤러리에 설치된 ‘현장/직업’ 작업에서 관련 인터뷰들을 볼 수 있다.

1층에 설치된 ‘3D 출구: 절망적인(Desperate), 일회용(Disposable), 추방된(Deported)’는 “사마 타파는 2004년 2월 15일 강제 연행된 후 추방되었다”라고 작가가 직접 기록한 작은 종이를 멀리서 카메라가 확대시켜 보여주는 작업이다. 관객들은 카메라를 통하지 않고서는 종이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작가는 이 같은 간접적인 전시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회단체들을 통해서만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주변적인 위치를 비유한다.

노동자들의 해외 이주는 서구 선진국가에서 유래된 것인데, 한국 역시 이주노동자들을 3D 업종의 ‘신축성 있는 자원’으로 활용해 왔다.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의 3D 직종을 마다 않는, 값싼 이주노동자의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국내 노동자들의 임금을 떨어뜨리는 타자들로 인식될 뿐, 경제성장에 기여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불법 체류 노동자가 증가한 것도 합법적인 체류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4위 이산국가’ 한국의 정체성

이주노동자 문제는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주는 각 개인의 정체성, 국가/민족의 정체성과도 관련 깊은 주제다. 해방되기 전인 1940년대에도 한국인구의 총 1/5이 모국을 떠나 살았으며, 한국은 현재 6백만 인구가 160여 개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추정되는 세계 제 4위 이산국가다.

민영순은 자기 회의적인 사회일수록 미래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이주민들이 사회 기준 틀에 변화를 가지고 오리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정체성이 강하고 균형 있는 사회라면, 이주민에 의해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3층에 전시된 ‘우리에게 이방인Strangers to ourselves’는 국가, 민족, 이주, 정체성, 타자 문제와 관련된 여러 서적들이 물에 흘러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책이 흘러가듯 속에 담긴 아이디어들도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동체와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늘 이주하며, 그 이주가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을 수용해야만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 www.ildaro.com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