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의 어리석음…농업은 무지의 핵심”


△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인터넷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농업은 국가와 민족형성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이며 국정철학과 비전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박종찬 기자

김성훈 경실련 대표 “참여정부 농정철학 없다”

“비교우위론이 한국농업을 망치고 있다. 농업은 없고 인정미 없는 비지니스만 있다. 경제만 있고 경세는 없다.”

김대중정부 시절 농림부장관을 지낸 김성훈 경실련대표는 현 정부의 농업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인터넷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현정부의 농업정책과 관련해 “언론·재계·정부가 합작해 농업을 경시하고 비교우위론으로 접근하는 통상해법만 제시한다”며 “기업가적 측면과 수익성만을 국익이라고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농촌의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지역사회는 붕괴할 것”이라며 “농업은 없고 인정미 없는 비지니스만 있고 경제만 있고 경세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농업은 먹거리 생산뿐 아니라 홍수방지, 지하수 함양, 청정산소 공급, 국토의 균형발전, 경관유지, 전통문화 보전, 식량안보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이 있다”면서 “농업은 국가와 민족형성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이며 국정철학과 비전의 핵심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무역이 세계 식량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오히려 세계는 기아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며 “EU는 농업소득의 60%가 정부의 보조금이고 미국도 40%를 직불제로 소득을 보상하는 등 선진국일수록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주권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쌀 재협상과 관련해 “자포니카 계열을 수출할 수 있는 미국과 중국의 요구가 관건”이라며 “미국은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여력이 10~15만톤 정도고 중국은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의 70~80%선을 보장해주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금처럼 40만톤 정도를 대북 지원한다는 전제에서 MMA 물량을 6%까지 늘려도 수급에 지장이 없다”고 말해 쌀 재협상에서 관세화를 유예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김성훈 경실련대표는 농림부장관시절 규모화보다는 한국의 현실을 인정하는 가족농 중심의 농업구조개편, 증산정책보다는 친환경농업의 추진, 자유무역주의에 맞서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개념화하는 등 한국 농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림부장관을 거쳐 최근까지 중앙대 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쿠바의 유기농업을 한국에 접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시민단체 활동도 활발히 펼쳐 경실련 대표와 환경단체인 ‘136 포럼’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김성훈 경실련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


“비교우위론에 경도돼 농업 몰락 재촉하고 있다”


-10년만에 재개되는 쌀 재협상으로 어느 때보다 쌀 문제가 중요한 국면이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를 비롯해 너무 조용한 것 아니냐? 언론도 관심이 없고, 소비자들도 잘 모르는 것 같고...

=이 정부가 농업과 환경문제에 너무 둔감하다. 그 중에서도 농업문제는 무지의 핵심이다. 쌀을 지키자는 것에 대해 시장 경제적 처방만 내놓고 있다. 소비자 후생과 기업체산성을 놓고 보면 농업은 포기해야 마땅할 지도 모른다.

전경련 회장이었던 최아무개가 “논에 반도체 공장 지어서 외국에 수출하고 쌀은 수입해먹으면 된다”고 하더라. 한마디로 ‘꿩의 지혜’다. 사냥꾼이 쫓아오면 꿩이 눈 속에 자신의 머리를 처박고 (자신이 보지 못하니) 마치 세상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무지의 소산이다. 재계와 언론 그리고 정부 지도층들이 목전의 이익에 팔려 한국농업의 몰락을 재촉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망라해 왜 농업을 살리려고 하고 선진국일수록 농업에 더 투자를 하는가? 선진국들은 국민의 혈세를 투입해서 국민총생산에 기여하는 것 이상의 비중으로 농업에 투자를 한다. 거기에 답이 있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눈앞에 이익에 급급해 장래의 문제, 농업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

-그렇다면 농업의 본질적 가치는 무엇인가?

=옛말에 농자천하지대본(農子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농사는 하늘아래 땅 위의 가장 근본이 되는 대업이었으며, 하늘과 땅과 사림이 3재가 어울려야 나라가 바르게 경영된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그 말에 농업의 다원적 기치를 내 품고 있다. 논농사는 단순히 10조원이 넘는 상품(쌀)의 생산에 그치지 않는다. 홍수방지, 지하수 함양, 청정산소 공급, 국토의 균형발전, 경관유지, 전통문화 보전, 식량안보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원적 기능(multi-functionality)이 있다.

최근에는 어메니티(Amenity: 사전적 의미로 쾌적함, 즐거움,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자원)라는 개념으로 농촌이 생태계에 주는 영향뿐 아니라 역사, 문화와 전통 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돈으로만 환산해도 연간 23조원의 보이지 않는 혜택을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에 대해 주도권를 쥐고 있었다”

-장관 재직시절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강조했는데, 언제 처음 개념화 되었는가?

=지난 93년 UR 타결시 NTC(Non Trade Consence)가 공식 표현됐고 구체화한 것은 지난 98년3월 우리정부가 OECD 농림장관 모임에서 공식 제기했다. 그리고 99년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노르웨이, 스위스, 일본, EU와 함께 농산물 협상에서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는 NTC 그룹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요즘 통상협상에서 다원적 기능을 강조하는 흐름은 찾아보기 힘들다. 농림부도 다원적 기능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 것 같다.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관련해 한국이 국제협상에서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쥐고 있었다. 한국이 주도해 OECD가 정식의제로 채택했을 정도다. DDA 협상에서는 NTC 그룹으로 준비라도 했는데 참여정부는 환경농업 토지에 불감증이다. 준비 안 되고 비전이 없는 사람들이 농정을 책임지고 있다. 386의 비극이다. 내가 관여하는 환경단체인 ‘136 포럼’에서 “참여정부의 환경, 토지, 농업에 관한 불감증이 도에 넘칠 만큼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위 민주화세대라는 386들이 토지규제완화하고 전국 이곳저곳에 골프장 짓겠다고 난리다. 건설경기 부양을 통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토지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이 정도 발상은 시정잡배를 시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몸집은 정치적으로 컸는데 경제와 환경을 생각하는 머리는 꿩 머리만큼 작다.

도대체 국정의 철학과 비전이 뭐냐? 경제를 살리면서 환경과 토지를 살릴 수 있고 토지를 살리면서 성장과 농업발전을 함께 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철학과 비전을 갖춘 정책이다.

-참여정부 들어 농업에 대한 투자가 더욱 인색하고 농업 개방화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농업경시풍토는 언론·재계·정부가 합작해서, 정·재·언이 유착해서 비교우위론으로 접근하는 통상해법만 제시한다. 기업가적 측면과 수익성만을 국익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농촌의 환경과 생태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지역사회는 붕괴하는 것이다. 농업은 없고 인정미 없는 비지니스만 있다. 경제만 있고 경세는 없다.

어떤 정책으로 혜택으로 보는 산업과 부문이 피해를 보는 산업을 도와줄 수 있도록, 골고루 돌아가면서 혜택을 나눠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우리나라는 정책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만 있다. 그리고 정책의 성공여부를 일방적으로 승리한 자만 찬양하고 패배자는 몰락하는 구조다.

칸쿤, 제네바 등 국제협상에서 자신의 배를 가르며 저항하는 것은 한국농민뿐이다. 국가의 정책이 승리자만 찬양, 패배자를 묻어 버리고 힉스가 말한 보상의 원칙은 사라지고 없다.

이 정부는 쌀 재협상과 DDA 협상에서 계속 기업가적인 마인드, 수익성 차원에서 식량과 농업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언론을 장악해 재계의 승리로 끝날 수 있을지 몰라도 후손들에게 꿩 머리만도 못한 지도층이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한반도 태어날 후손들이 사람 못 살 곳이라고 통탄할 것이다.

“농지를 규모화한다면서 농지 줄이는데 앞장서는 농림부
비교우위론에 맞설 논리도 정책의 일관성도 없다”

-농림부와 청와대에 포진한 농정 책임자들이 문제란 말인가?

=현재 청와대를 비롯해 농림부 등 농업정책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역대 가장 약체라고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은 개방주의와 비교우위론에 맞서 반론을 제기할 논리도 없다.

정책의 일관성도 없다. 최근 농림부가 쌀 농업 대책으로 7만호 6ha 육성이라는 규모화 정책을 발표했다. 또 쌀 수급을 위해 80만ha만 있으면 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규모화를 하는 한편으로 농지를 줄이겠다니 이것은 정책의 상호모순이다.

또 농림부는 규모화 하겠다고 하면서 세계 최대규모로 조성된 현대서산농장을 300평씩 개인분양 하는데 앞장섰다. 지난 1월20일 농림부가 토지규제완화를 발표하자 서산농장 분양이라는 신문광고가 일제히 실렸다. 농지를 규모화 하겠다는 농림부가 농지를 줄이는데 앞장서고 있으니...

“자유무역이 식량문제 해결 못해, 선진국이 식량위기 먼저 깨달아”


-선진국은 농업을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가?

=농업이 없는 국가, 농촌이 없는 도시, 농민이 없는 겨레는 결코 상상할 수 없다. 농업은 국가와 민족형성의 최소 필요충분조건이다. 국정철학과 비전의 핵심이다. 국민적 동의가 있기 때문에 미국은 농가 인구가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하고 농업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불과하지만 농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일본, 유럽 등 선진국 모두 그렇다. 선진국일수록 농업농촌을 보호하는데 앞장서지 않는 국가는 없다.

EU는 농업소득의 60%가 정부의 보조금이고 미국도 40%를 직불제로 소득보상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농민들 소득보상해주고 수출보조금 지원하면서 수출시장을 개척하는데 앞장서고 있는가? 그들은 왜 농업보호에 혈안이 돼 있을까?

자유무역이 세계 식량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란 기대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오히려 세계는 기아문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식량주권의 문제를 선진국이 먼저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예외 없는 세계화와 자유무역에서 농업만 빠질 수 있는가?

=농산물도 자유무역을 하자는 논리는 모순에 빠져있다. 자유무역에 이면에는 국제 곡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가 숨어 있다. 농산물 가격의 특징은 그레고리 킹의 법칙에 따르면 조금만 공급이 넘쳐도 가격이 폭락하고 조금만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폭등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73년 세계 농산물 파동과 지난 80년대 냉해로 농산물 수급이 불안할 때 우리는 경험으로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또 최근 중국은 식량부족으로 쌀값이 두배나 폭등하고 있지 않나? 이런 것이 농산물 자유무역이 위험한 이유다. 농산물이 균일하게 안정적인 성장을 할 것이란 것은 안이한 판단이다.

또 부패와 변질성이 강한 농산물을 수송하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농약처리 등으로 국민건강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감안하지 않는다. 농산물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은 국민생존권의 필수적인 요소인 ‘곳간 열쇠’를 남에게 내주는 것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뒤 우리 농업이 더욱 어렵게 됐다.

=한·칠레 FTA는 파트너를 잘못 골랐다. 김영삼 정부 시절 '계륵'이라며 버렸고 김대중 정부시절 ‘소 뼈다귀인가’하고 ‘얼씨구나’ 물었다가 또 버렸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들어 ‘보약과 사골’로 알고 한·칠레 FTA가 맺어지면 공산품 수출이 늘 것이라며 정·재·언 합작으로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체결했다.

그런데 지금 FTA 체결 뒤 몇 개월이 지나서 공산품 수출은 줄고 농산물 수입만 엄청나게 늘어나지 않았느냐?

-쌀 재협상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계열의 쌀을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는 여력은 미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수출여건을 따져보면 답은 명확하게 나온다. 우선 미국은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쌀의 수출여력이 50만톤 정도다. 현재 관세화로 쌀을 수입한 대만과 일본에 수출하고 나면 우리나라에 수출할 수 있는 여력은 10~15만톤 정도다. 미국 쌀 우선 사주겠다고 다국적 기업에 메시지를 주면 된다. 중국의 경우는 지금 우리가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물량(MMA) 가운데 70~80%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만 보장해주면 된다. 지금처럼 40만톤 정도를 대북 지원한다는 전제에서 MMA 물량 6%까지 늘려도 수급에 지장이 없다.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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