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미국 대선과 한반도-(하)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이유

 

남북한, 기다리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정욱식/ 2004년 8월 10일



6자회담과 미국 대선이라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2004년 하반기에 우리는 어떠한 평화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변수가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라는 점에서, 치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위기가 해소되면 좋겠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당분간 6자회담의 성공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미국 대선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한반도 평화를 6자회담과 미국 대선에 의존하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는 비책(秘策)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던져 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미국 대선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중심축을 미국의 선의와 이해 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6자회담 구도에서 남북한 중심 구도로 전환시켜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결코 6자회담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6자회담과 함께 '남북한 평화프로세스'라는 또 하나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갈 때,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어떤 선택이든 위험 부담이 따른다는 것이다. 6자회담과 미국 대선에 의존하는 방식은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더러, 그 결과 역시 극히 불투명하다. 반면에,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중심의 평화프로세스'를 가동시킨다는 것은 성사 여부도 불확실할 뿐더러 한미 관계에 균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하나는 미국 대선 전까지 한반도의 정세를 잘 관리하면서 미국 대선 이후를 기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멈춰 버린 '남북한 평화프로세스'를 본격적으로 재가동하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든 위험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지만, 후자가 '비교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 전까지 한반도의 정세를 잘 관리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미국 대선 이후에는 한반도 문제가 미국의 정치 일정과 정권의 이해 관계, 그리고 정치적 역학 관계에 종속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핵 해결 없이 정상회담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무현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 없이 남북정상회담 없다"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출범 이후부터 이러한 입장을 밝혀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3월초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상세히 밝힌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은 ▲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사안이라는 점 ▲핵 문제에 관한 한 중국·러시아·미국 등 핵 강대국들이 세계 핵 질서를 주도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고 이를 제어할 힘을 그 밖의 누구도 갖지 못하다는 점 ▲북한에게 핵 문제는 생존 카드라는 점 등을 제시하면서,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후에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언급의 수위는 조금 바뀌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최소한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있어야 정상회담 추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지나치게 강대국의 역학 구도를 의식하는 '비관적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지적처럼 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미간의 적대 관계에서 파생된 문제인 것이 사실이고, 북미간의 타협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핵 문제가 북미 관계에서 발생했다고 해서, 문제의 해결 방식 역시 북미 관계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즉, 문제의 '원인'과 문제의 '해법'을 준별할 수 있는 지혜가 아쉽다는 것이다.

북미간의 입장 차이와 부시 행정부의 정치적 의지의 박약함, 그리고 한반도를 바라보는 미국 내 이해 관계의 복잡함을 생각할 때, 핵 문제 해결의 기본축을 북미 관계로 보는 것은 부시의 선의(善意)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고, 부시의 선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남한이 이라크 파병과 같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부시가 선의를 가지고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적 사고'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핵 강대국이 세계 핵 질서를 주도하는 것과 남북정상회담을 못하겠다는 것 사이에는 거의 관계가 없는 문제이다. 미국, 아니 정확히 부시 행정부를 제외하고는 주변 핵 강대국인 중국, 러시아가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면, 이들 국가는 오히려 남북정상회담을 환영할 것이다.

핵 문제가 북한의 생존 카드라면, 남한이 북한의 생존을 도우면서 핵 카드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존 전략으로서의 북한의 핵 카드가 갖는 의미는 '안보'와 '경제' 두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안보적 측면은 다시 두 가지로 핵무장이 갖는 억제력의 측면과, 핵개발 포기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안전 보장을 받는 것으로 나눠진다.

물론 북한은 이 가운데 양자택일을 해야 하며, 북한이 원하는 것은 후자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에너지를 비롯한 경제지원과 경제제재 해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에 따라 남한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한 상응조치로서 에너지를 비롯한 경제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의 회생을 돕고,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의 구실을 완화하는 것이 북한에게 안보적 차원에서 더 이롭다는 점을 들어 대타협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미사일'을 넘어섰다

김대중 정부 때 성사된 남북정상회담 역시 북미간에 미사일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핵 문제와 마찬가지로 미사일 문제 역시 북미관계에서 파생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북한과 미국이 미사일 문제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을 때,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은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도 촉진시킨 매개체였다. 이는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관계의 발전을 핵 문제에 종속시킬 것이 아니라, 핵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독립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이 대단히 모호하면서도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핵 해결 없이 남북정상회담 없다"는 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핵 문제의 해결이라는 것은 북한의 핵 포기 의사 천명부터, 6자회담에서 최종 합의문의 도출, 그리고 부시 행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얘기하고 있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이킬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CVID)"까지 대단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북한 핵 문제의 해결의 기준을 "완전 핵폐기"로 잡는다면, 노무현 정부는 임기 중에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완전 핵폐기"에 합의하는 것 자체가 불확실할 뿐더러, 설사 합의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으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데에는 수 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 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언급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최선의 전략 : 6자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의 결합

그렇다면, 한반도의 위기를 해소하고 공고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노무현 정부는 지금까지 한-미-일 삼각공조와 6자회담의 틀 내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6자회담과 더불어 '+알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알파'는 미국 대선전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평화 선언'을 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6자회담의 성공과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선언'을 결합시키는 방향으로 평화 전략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서는 '남한의 새로운 평화 로드맵 마련 및 남북 특사회담을 통한 북한과의 공유(1단계)→6자회담에서 북한의 대담한 양보(2단계)→남북정상회담을 통한 한반도 평화 선언 발표(3단계)'→남북한 중심의 평화프로세스 본격 가동(4단계)'으로 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2기 부시 행정부의 출범까지 고려한 한반도 위기 예방 및 리스크 관리 차원뿐만 아니라, 6자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지렛대를 내포하고 있다. 6자회담과 관련해 북한의 대담한 양보를 이끌어 냄으로써, 6자회담의 좌초를 예방하고 핵 문제 해결 방안을 조기에 도출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6자회담에서 북한이 얻을 수 없는 인센티브 상당 부분을 남한이 보장함으로써, 6자회담에서 북한이 과감한 양보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남한은 북한의 실리와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로드맵을 작성해 북한과의 특사 회담을 개최해야 할 것이다. 특사회담을 통해 남한의 대북지원 및 남북경협 활성화와 6자회담에서의 북한의 대담한 양보를 출발점으로 하는 '새로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북한에게도 확실한 '비교우위'에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이 특사 회담을 통해 북한의 파격적인 양보 조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식량·비료·의약품 등 대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그리고 철도·도로 연결 등 3대경협 사업을 활성화시키는 한편, 적절한 시점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해 북한의 경제재건 및 안전보장을 위해 남한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평화지향적인 민족공조'가 남북한 모두가 살길이라는 점을 강력하게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 즉 특사회담을 통한 새로운 로드맵에 대한 남북한의 공유를 평화프로세스 1단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는 6자회담에서 북한이 대담한 양보 조치를 제시하는 것이고, 이는 크게 두 가지의 차원에서 구성된다. 하나는 지난 3차 회담에서 나온 미국의 제안을 '큰 틀'에서 수용하고, 다른 하나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의혹 해소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북한은 구체적인 조치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복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1, 2단계가 성공하면, 다음 단계로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점은 4차 6자회담 직후이자 11월 미국 대선 이전인 10월에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 시기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핵 문제가 해결 가닥을 잡은 이후에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외의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부시 행정부가 대선 전에 '올인'해야 할 시기라는 점에서 남한의 자율성의 공간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을 적지 않게 '이행'한 이후에 2기 부시 행정부든, 민주당 정권이든, 차기 미국 정부를 상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4단계인 '남북한 중심의 평화프로세스 본격 가동'은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와 합의 사항 실천 방안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상당 부분 좌우되게 될 것이다. 대체적인 방향과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의 재천명, 6·15 공동선언 재확인,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비통제 본격 추진, 민족경제공동체 건설의 본격 추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의지 천명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연결해 유라시아 철도를 건설하는 문제, 러시아의 잉여 전력과 천연가스를 남북한 모두 활용하는 문제, 대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설치 문제, 상호 적대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의 정비,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적 관리 방안, 탈북자 문제 등도 의제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과 의제를 가지고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합의사항을 실천해 나간다면, 대내외적 변수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새로운 평화프로세스를 창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004년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 미국 대선 이후의 한반도 정세에도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사전에 '위기의 뇌관'을 제거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을 방지할 수 있고, 민주당의 케리 후보가 집권하면 북미관계 정상화의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남북특사 회담 추진해야

물론 남북정상회담이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도 있다. 또한 남한이 원한다고 해서 쉽게 될 일도 아니다. 남북한 상호간의 필요와 이익이 맞아 떨어져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다. 안팎의 조건이 어렵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체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고, 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의 포괄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남북한 정상이 서로의 의중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첫 단계로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의 특사회담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특사회담을 통해 민족공동체의 엄중한 현실을 공유하고 미래의 비전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은 이미 2000년 미국 대선 직후의 시간을 허송세월한 바 있다. 남북한 모두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인 부시를 바라보면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일시 중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중단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로 4년 가까이 지나고 말았다.

이제 11월 2일 미국 대선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모처럼 주어진 시간을 '부시의 낙선'을 기대하면서 보낼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정신으로 대전환을 모색하는데 사용할 것인가? 남북한은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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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8-1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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