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보법 폐지 원년으로
〈오동석/아주대 교수·법학〉
56년 전 태어난 국가보안법 원판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쏙 빼닮았다. 치안유지법은 ‘국체 변혁’ 목적의 단체 조직을 중심으로 그에 가입하거나 협의, 선동·선전, 재산상 이익 제공 등의 주변행위를 처벌하는 법이었는데, 국가보안법 역시 ‘국가 변란’의 표현 정도를 제외하면 별로 다르지 않았다.
치안유지법이 악법인 이유는 식민지 지배를 위해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수단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근원적인 문제는 한국의 독립이든 사회주의든 특정 사상에 체제비판의 목적을 덮어씌워 그 단체와 관련된 광범위한 활동 일체를 처벌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현행 법률은 그보다도 적용범위가 넓다. 반국가단체에 대한 가입 권유, 형법상 100여 종류의 목적수행행위, 잠입과 탈출, 찬양과 고무,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회합과 통신, 불고지 등을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논의의 최소한 합의선으로 볼 수 있는 개정론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제7조의 찬양과 고무, 이적단체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그리고 제10조의 불고지죄 등을 삭제하자는 의견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사건 90% 이상이 제7조 위반임을 감안하면, ‘국가보안법의 꽃’이라는 제7조가 없는 국가보안법은 그 이름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나머지 조항의 적용대상행위는 대부분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으며,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행위는 국가안보에 별 영향이 없어 굳이 처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일제하 치안유지법 빼닮아 -
한편 대체입법론은 예컨대 ‘민주질서수호법’으로의 개명론이다. 하지만 수호대상인 민주질서를 아무리 구체적으로 정의하더라도 비폭력적인 체제비판행위를 포괄하여 처벌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여전히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예이츠 사건(1957년)에서 폭력행위의 이론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 즉각적으로 폭력혁명이 실현되지 않는 한 그 주장 자체를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것은 그 때문이다.
‘자유의 적에게는 자유가 없다’는 명제를 인용하며 방어적 민주주의를 국가보안법의 방패로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의 적’은 프랑스 혁명 직후 공화국을 부인하는 왕정복고세력이었다. 독일기본법상 ‘자유로운 민주적 기본질서’와 그에 위배되는 정당의 강제해산제도 또한 나치즘의 부활을 꿈꾸는 파시스트들을 염두에 둔 헌법보호장치였다. 독일공산당이 1956년 연방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받기도 했지만, 12년 만에 정당활동을 재개한 것이 그 증거이다. 결국 비폭력적 체제비판에 대한 민주주의 체제의 물리적 방어란 아직 헌법질서가 제자리를 잡기 이전의 과도기에서 수구세력으로부터의 방어 차원 혹은 과거청산을 위한 재발방지 차원에 한정된 논리이다.
한참을 양보하여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 법무장관의 말처럼 건국과정에서의 혼란 때문에 일시적으로 국가보안법이 필요했다고 치더라도, 1953년 형법 제정시 당시 대법원장이 형법과 중복되니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자고 한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형법도 전혀 손보지 않고 국가보안법만을 폐지한다고 이적단체가 창궐하고 이적표현물이 난무하며 북한에 대한 찬양·고무행위가 빈번하게 그리고 버젓이 일어날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인 북한에 대한 현실적 판단과 평화적 협력 그리고 건전한 비판을 둘러싼 설득과 토론이 자리잡아갈 것인가. 대답의 관건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헌법체제와 그것을 움직여 갈 국민에 대한 신뢰 여부에 달려 있다.
- 형법만으로 체제수호 가능 -
이미 1948년에 ‘사상에는 사상을 가지고 극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헌법정신을 몰각하고 인민을 극도로 속박하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한다면, 3일이 못 되어 후회하고 자손만대에 죄를 짓는 일이며 정치력 0점의 정치인’이라고 자기비판한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그 뜻을 이어받아 제17대 국회가 56년 만에 ‘국가보안법 폐지 원년’의 월계관을 쓸 수 있도록 주권자의 이름으로 다그칠 일이다. 치안유지법의 잔재인 국가보안법을 청산하는 일은 의외로 간결하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보안법은 이를 폐지한다”는 조문만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