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성애자 커플의 사실혼 관계에 대해 재판부가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한 사건이 있었다. 소송을 제기한 여성은 42세의 레즈비언으로, 상대 여성과 20여 년간 여느 이성애자 부부와 다를 바 없이 함께 생활해 왔고 재산을 함께 모으고 관리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대가 휘두르는 폭력으로 인해 관계 해소를 원했으며, 이에 따라 파트너 여성을 상대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낸 것이다. 법원은 이들은 사실혼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소송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우리 사법부가 기본적으로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결정이다. 법적 부부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로 부부와 마찬가지로 생활하고 있는 이성애자 동거 커플의 경우, 법원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해주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존재하는 동성애자의 사실혼 관계가 사법기관에 의해 부정되었다는 것은, 한국의 사법기구가 동성애자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국가가 동성애자를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시민권을 가진 자’로 여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7월 27일 인천지방법원 제2가사부가 내린 판결 이후 국내 여러 성적소수자 인권운동단체들이 항의성명을 냈다. 성명서의 내용들을 보면, 이번 사법부의 판결이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조항과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성애자 커플의 사실혼 관계는 인정해도, 동성애자 커플의 사실혼 관계는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분명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다.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와 마찬가지의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 시각으로부터 비롯된 이번 판결을 보며, 사회문화적 차원에서건 법제도적 차원에서건 동성애자 인권에 대한 고민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현실을 뼈아프게 느끼게 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 인권향상을 위한 실로 어마어마한 과제들이 남아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번 소송을 제기한 여성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보자. 그녀는 자신과 파트너의 ‘성정체성’ 때문에, ‘파트너에 의한 구타’라는 가정폭력 피해자로서 온당히 받아야 마땅한 법적 권리보장을 받지 못하게 됐다. 폭력범죄에 관해 소송한 것은 아니지만, 가정폭력을 견딜 수 없어 사실혼 관계를 청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 피해자가 사실혼 관계 해소로 인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을 때, 법원이 내려야 할 결정은 과연 무엇인가.
재판부는 소송인의 상황과 구체적인 요구들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다만 “혼인이라 함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남녀의 정신적, 육체적 결합을 의미하며, 동성간의 동거관계는 사회관념상 가족질서적인 면에서도 용인될 수 없기 때문에 법률혼에 준하는 보호를 할 수 없다”고 했을 뿐이다. 재판부는 그들의 이성애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동성애자의 인권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가정폭력 피해를 방치하는 결과마저 낳은 것이다.
레즈비언을 비롯한 성소수자들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 어떤 피해에 대해 법적 절차를 통해 구제 받고자 할 때, 유관법률과 기관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신고하거나 소송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상담이나 조사, 소송 과정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은 헌법이 정하고 있는 권리 보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동성커플의 ‘사실혼’ 관계를 무시한 이번 판결을 통해, 실상 삶의 전반에 걸쳐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총체적으로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우리 법원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법제정과 적용이 필요한 것이지, 성소수자를 차별해 온 ‘사회통념’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이 그들 위에 군림해도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