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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7월28일자 중앙일보 27면 '중앙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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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중앙일보 PDF |
| 정운영.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 하지만 1990년대 그는 대표적인 '진보논객'이었다. 적잖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사로잡기도 했다. 기실 그렇게 된 데에는 <한겨레>의 '기여'가 컸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에게 고정칼럼을 '제공'했던가.
정 위원이 <한겨레>에 불쾌감을 드러낸다는 말도 더러 들리지만, 기실 1988년 창간한 <한겨레>의 16년 동안 정 위원에 견줄만한 '특혜'를 받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가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좋은 글을 쓰길 기대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따금 예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의 칼럼은 대부분 뒤틀려 있었다. 딴은 <한겨레>에 고정칼럼을 연재할 때도, 그의 현학적인 뒤틀림이 사내 일각에서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었다.
정 위원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온 까닭
그럼에도 정 위원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던 까닭은 적어도 그의 '몫'이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28일자 <중앙일보>에 쓴 "반동의 반동은 반동을 부른다"를 읽으며, 더 참는 것은 논객 '정운영'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보수 못잖은 진보의 부패"라는 작은 제목이 붙은 글에서 정 위원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과거에는 정권이 간첩을 만들어내고 전향을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 장기수를 때려죽이는 천인공노의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공권력에 의한 살인을 인정하고 추후의 피해 배상으로는 모자라서 민주화 유공자라는 월계관까지 씌워야 하는가.
과거에는 공안 기관이 반정부 인사를 죽이고 증거를 없애버리는 인면수심의 패악을 부리기도 했다. 엄히 다스려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간첩 혐의 복역자가 조사하지 않으면 의문사 조사가 불가능한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과거의 군사 독재 정권들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법적으로 문제없음을 사회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개혁이 새로운 반동의 빌미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 위원에 따르면 '반동의 빌미'를 진보세력이 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반동의 빌미를 주고 있는 것은 지금 정 위원이 몸담고 있는 <중앙일보>다. 아니 반동을 부추기고 있다.
보라. 비전향 장기수가 엄연한 민주공화국에서 고문으로 살해당했는데도 지금 우리 사회에는 그에 대한 분노는 찾아보기 어렵다. 피해배상도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민주화유공자라는 월계관'까지 씌워야 하느냐고 정 위원은 개탄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일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의 일까지 구분 못할 만큼, 그의 정신이 벌써부터 혼미해진 것일까.
'애도'를 그는 '매도'라고 읽을지 모르겠지만
간첩혐의 복역자가 꼭 조사해야 하느냐며 다그치는 대목에선 과연 이 글을 쓴 사람이 '정운영'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수구신문의 마녀사냥에 맞선 의문사위의 해명을 거두절미해 인용한 뒤 언죽번죽 말한다. "과거 군사 독재 정권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 위원은 진보가 부패했다고 비난한다. "학창에서 진보를 외치던 누가 지금 고관이 되어 리무진을 타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진보의 부패가 보수의 부패 못지 않다는 사실만은 보도를 통해 보아왔다. 지식인 얘기도, 판사 얘기도, 위원회와 기금 얘기도, 노조 얘기도 심심찮게 듣고 있다."
물론, 나도 '리무진 탄 진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진보를 대표하지 않는다. 오늘 한국의 진보는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더위 아래 노동자들과 학생 그리고 진보정당이 단식을 해도 여론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바로 중앙일보를 비롯한 부자신문들의 외면 탓이다. 게다가 수구세력은 터무니없이 국가정체성 논란을 벌이고 있다. 저들의 작태를 비판하기는커녕 그 소동을 일으키는 신문에 글을 쓰며 진보를 부패했다고 몰아치는 정 위원의 모습은 섬뜩하다. 하물며 반동의 빌미를 준단다. 그래서다. 정 위원에 묻고싶다. 참으로 '부패한 진보'는 누구인가. 혹 자신이 아닌가.
오늘 정 위원을 '애도'―그는 '매도'라고 읽을지 모르겠지만―하는 마음은 쓸쓸하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타락할 때 그 잘못을 지적해줄 후배를 '각오'하고 있다. 그때 후배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면, 미련 없이 절필할 것을 약속드린다. |
다음은 28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정운영 논설위원의 '중앙시평' 칼럼 전문이다....편집자 주
[중앙 시평] 반동의 반동은 반동을 부른다
대학 시절 신문을 같이 만들던 선후배들이 한해에 서너 번 만나는 모임이 있다. 과거사 한담이 무료하던 차에 누가 불쑥 정치 문답성 재치 문답을 시작했다. 좌우를 각각 10단계로 나눌 때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 있으며, 현 정권의 임기가 끝나는 4년 뒤에는 어디쯤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거의 만장 일치로 지금 좌경화 3~4단계에 들어섰다고 했으며, 임기 동안 좌경이 1~2단계 심화되리라는 전망이 현상 유지나 완화 전망보다 앞섰다.
*** "좌경 심화될 것" 전망이 앞서
내 차례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별 생각없이 현재는 우경화 3단계 이상이고, 정권 말에는 5단계쯤 될 것이라고 했더니 씨익 웃지들 않는가. 누구한테 어깃장을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평소 느낀 대로 털어놓았을 뿐이다. 촛불시위로 좌파와 우파가 갈리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보낸 쌀로 연명하는 상대가 두려워 군비를 증강하는 판에 좌경이라니 참말로 턱도 없는 소리다. 이런 소신의(?) 나한테 위의 '여론 조사' 결과는 정말 의외였다.
근래의 '좌경 협심증'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로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래 좌경 기준이 자유로워졌다. 소련이라는 사탄이 사라졌으므로 다른 적을 '만들어' 악역을 맡기려는 것이다. 악한 조작은 극우와 극좌가 익힌 생존 원리의 하나이기도 하다. 클린턴 행정부가 좌파 정권 명부에 오르고, 영국 노동당이 미국 민주당의 진보성을(!) 공부한다니 개그로 치면 세계 토픽감이다. 국내에도 이런 바람이 불어서 소도 웃을 일에다 마구 좌파 상표를 갖다 붙인다. 아파트 분양 원가를 공개하는 문제를 놓고 진보와 보수를 꺼내는 판국이니.
둘째로 최초의 충격에 대한 과잉 반응이 있다. 민노당 원내 진출이니, 의문사 조사니, 해외 파병 반대니, 미군 기지 반환이니 이런 일들은 전례가 없어서 합리적인 대응 이전에 덥석 겁부터 나는 것이 사실이다. 전교조를 빨갱이라고 여기던 극우파가 여전히 귀찮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함께 살 수밖에 없다고-들어보니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더라고-생각을 돌리는 중이라면 미지의 사태에서 느끼는 공포와 걱정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
셋째로 좌파의-좌파로 불리는 세력의-미숙한 처신이다. '미국의 좌파와 우파'(살림.2003)라는 책에서 이주영 교수는 사회적 약자의 대변자를 자처하던 68세대 '신좌파'가 고위 공직에 앉아서는 "좌파처럼 생각하고 우파처럼 생활하는" 리무진 진보주의자(limousine liberals)로 변신했다고 썼다. 지식인은 베트남에서 죽은 병사들을 비웃고, 판사는 유죄 입증이 어렵다며 범법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리고, 정부는 문화진흥기금으로 하느님을 모독하는 전위 예술가를 지원하고, 노조 간부는 '노동 귀족'이 되어 조합비를 낭비했다. 당연히 반격을 불렀다. '신우파'는 포퓰리즘 운동을 펼치고 '극우파'는 무기를 들었다.
학창에서 진보를 외치던 누가 지금 고관이 되어 리무진을 타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진보의 부패가 보수의 부패 못지않다는 사실만은 보도를 통해 보아왔다. 지식인 얘기도, 판사 얘기도, 위원회와 기금 얘기도, 노조 얘기도 심심찮게 듣고 있다. 우파에 대한 반동으로 신좌파가 나오고 그 반동으로 다시 극우파가 나온다면, 즉 반동을 반동으로 막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과거에의 한풀이일 뿐 개혁이 아니다. 그 반동의 고리는 우파든 좌파든 현재의 집권 세력이 끊어야 한다.
*** 보수 못잖은 진보의 부패
과거에는 정권이 간첩을 만들어내고 전향을 않는다는 이유로 교도소에서 장기수를 때려죽이는 천인공노의 악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시는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공권력에 의한 살인을 인정하고 추후의 피해 배상으로는 모자라서 민주화 유공자라는 월계관까지 씌워야 하는가. 과거에는 공안 기관이 반정부 인사를 죽이고 증거를 없애버리는 인면수심의 패악을 부리기도 했다. 엄히 다스려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간첩 혐의 복역자가 조사하지 않으면 의문사 조사가 불가능한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과거의 군사 독재 정권들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법적으로 문제없음을 사회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개혁이 새로운 반동의 빌미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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