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을 방문했을 때 제각기 정치적 입장이 다른 그토록 많은 한국인들이 언제일지도 모를 장래에까지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매우 놀랐다.
아무튼 나는 북한이 이젠 1950년처럼 장기침략전을 펼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고 말했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미군 재배치와 감축 계획들에서 보듯 미국 국방부 역시 이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북한의 위협이 감소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한국에 주둔하고 싶어할까?
미 국방정보국(DIA)과 국가안보국(NSA)이 한국에 있는 비밀 전자감시시설을 이용한 대중국 첩보행위를 계속하길 바라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대만을 둘러싸고 중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주한 공군과 육군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과 한국의 이익이 엇갈리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왜냐하면 한국은 갈수록 중국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북한이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며 따라서 주한미군 존재가 장기적 안보에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좀더 일반적인 반응은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고, 1997년 아이엠에프 사태에서 보듯 국제금융기관들로부터 경제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동맹 종식이 한국인들을 불안하게 하는 진짜 숨겨진 이유라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얘기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미군 주둔과 한-미동맹이 한국에 주고 있는 막대한 경제적 보조금 효과다. 이 보조금은 한국이 조기 통일로 가는 과감한 선택을 미룰 수 있게 만들고, 따라서 일반예산과 군사예산 어느 쪽에 더 우선권을 둘지를 선택하는 것도 머뭇거리게 만든다. 미군 주둔은 주한미군이 없었더라면 한국이 현재 유지하고 있는 대규모 국방비 지출을 위해 들어갔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런 이유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이 국방비 지출을 늘려 주한미군이 제공해주고 있는 현 수준의 안보를 유지할지, 아니면 북한과 상호 군축 협상을 통해 화해와 통일을 달성하는 쪽을 택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보조금이 없다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제공해온 재래식 국방전력을 대체하는 데만 현 국방예산을 2~3배 늘려야 한다.
미국은 매년 평균 20억달러에 이르는 주한미군 주둔에 따르는 직접 비용 외에도, 한국 방위와 관련된 동아시아와 서부 태평양 배치 미군전력 유지비용으로 매년 400억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 한국이 미국이 제공하는 경제적 쿠션을 당연한 걸로 생각하는 한, 한국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마련된 궁극적인 통일 전단계로서의 (낮은 차원의) 연방국으로 갈지 여부를 굳이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국방비의 상당 부분은 거대한 군산복합체로 간다. 약 80개의 방위산업 계약자들이 150여곳의 공장에서 약 350가지 종류의 군사 장비를 생산하고 있다. 군 수뇌부와 손잡은 이 강력한 이익집단은 군사비 지출을 늘리도록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줄일 수 있는 자주국방력에 대해 너무 막연히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을 이롭게 하고 있다.
미군 철수에 대해 한국은 1991년 마련된 남북기본합의에 따른 북한과의 상호군축을 위한 대화 재개 제안으로 대처해야 한다. 91년 합의된 남북공동군사위원회는 핵위기로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지만 노 대통령의 최우선 고려 사안이 돼야 한다. 한국에서 상호군축에 반대하는 군산복합체가 있듯이, 북한에도 노동당 강경파와 결합된 군산복합체가 있다. 평양의 강경파에게 군축은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경제적 문제가 군사 지출을 줄이도록 압박해왔으며 김정일 위원장은 남한이 준비가 되면 상호군축에 참여할 자세가 돼 있다고 지난 4월 (내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들었다. 대조적으로 남한은 국민총생산(GNP) 대비 국방비 비중이 매우 적어서 북한만큼 감축 압력이 크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개성산업공단 건설을 추진하고 서해 충돌을 피하기 위한 군사회담을 촉진시킨 공로가 있다. 그러나 그는 북-미 양국만의 조약을 일관되게 고수해온 과거 입장을 바꿔 종전과 남북한 및 미국간의 3자 평화조약을 추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한 (북한의) 역사적인 5월6일 선언을 조속한 대북 관계개선을 위한 새로운 기회로 포착하는 데는 실패했다.
서울은 평양, 워싱턴과의 대화를 병행하면서 이 제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핵 협상 진전도 가속시킬 것이며 김 위원장을 정상회담장으로 끌어낼 것이다. 그것이 휴전상태의 지속으로 가로막힌 군축회담의 장을 마련해줄 것이라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쓴 평화협정 추진을 겁내는 듯하다. 그는 이 협정이 미국의 한반도 개입 반대 압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이 우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평화조약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 기타 한국전쟁의 잔재를 종식시킨 뒤에도 남아 있을 한-미 상호안보조약에 의해 운용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에 있는 미군기지와 장비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고려해볼 때, 양쪽이 합의한다고 해도 미군 철수를 완료하는 데는 몇년이 걸릴 것이다.
곧 출간 예정인 <한국의 수수께끼>의 저자들인 보수적인 케이토연구소의 테드 갤런 카펜터와 더그 밴도는 4년에 걸친 미군의 일방적인 철수를 주장했다. 그들은 일단 철수 사실이 발표되면 “국방비 증액을 정당화할 만큼 (상황이) 위협적이라고 느끼면서 그런 부담을 기꺼이 감수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은 한국민에게 달렸다”고 결론지었다.
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