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수정헌법 1조’ 힘의 뿌리

“의회는 발언의 자유, 언론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 권리, 불만을 시정하기 위해 정부에 청원하는 권리를 박탈하는 입법을 할 수 없다.”

유명한 미 수정헌법 제1조의 일부다. 건국 초기 헌법을 만들 때 시민의 기본권이 빠져있는 걸 발견한 시민 대표자들은 10개의 조항을 헌법에 새로 추가했다. 그 첫번째가 바로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이 조항이다.

20세기 들어 수많은 대법원 판례를 거치면서 이 조항은 미국 정치, 사회, 문화 발전의 한 상징이 됐다.

최근에도 이 조항에 근거한 연방대법원 판결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어린이를 인터넷 포르노로부터 보호하려는 ‘어린이온라인보호법안’에 관한 판결이다. 대법원은 이 법이 위헌이라고 판시하진 않았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니, 정부와 의회는 다른 방식의 규제방안을 찾아보라고 권고했다.

어린이들이 인터넷 유해사이트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건 미국에서도 큰 사회문제다. 당연히 이걸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의회는 위헌 논란을 피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인터넷 포르노사이트를 무조건 폐쇄하는 게 아니라, 신용카드번호 입력 등 성인인증을 철저히 하도록 강제하자는 게 이 법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수정헌법 제1조를 비켜가지 못했다.

새 법의 위헌소송을 제기한 이는 포르노업계가 아니었다. 영향력 있는 인권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이다. 시민자유연맹이 옹호한 건 포르노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였다. 판결은 5대 4 한표 차이로 갈렸다.

찬성 또는 반대한 대법원 판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9명의 연방대법원 판사 중 진보 성향은 4명, 보수 성향은 5명으로 분류된다. 가장 왼쪽(진보)에 존 폴 스티븐스 판사가 있고, 가장 오른쪽(보수)에 클래런스 토마스 판사가 서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시민자유연맹의 손을 들어준 사람은 진보 쪽의 세명과 중도보수인 앤소니 케네디 판사, 그리고 가장 보수적이라는 토마스 판사였다.

사상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는 사람은 이제 한국에도 없다. 그러나 그걸 지키려는 철저함에서 미국은 한국보다 저만치 앞서 가 있는 것 같다.

연방대법원 판결은 결과적으로 인터넷 포르노를 더 활개치게 할 수 있다. 판결이 옳은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는 있다. ‘표현의 자유’란 때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혼란을 용인하면서도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다. 그중 일부분만 떼내 강조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많은 사안들이 그런 연장선상에 있지 않나 싶다. 지금의 미국을 있게 한 힘의 근원이 바로 수정헌법 제1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찬수 워싱턴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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