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당 한계 넘으려는 독일좌파의 정치실험
독일 좌파 대안정당운동, 구호보다는 내용이 문제

 

최재한 ajhberlin@freechal.com

 

   
▲ 연이은 선거 참패와 지지율 하락으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슈뢰더 총리
2002년 총선에서 간발의 차(3석)로 재집권에 성공한 독일 사민당(SPD)이 2차 대전 이후 최저의 지지율로 홍역을 앓고 있다. 총선 이후,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던 사민당은 지난 6월 13일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21.5% 득표에 그쳤고, 특히 최초 창당 지역인 아이제나하가 있는 튀링엔 주의회 선거에서는 구동독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PDS•26%)에도 뒤진 14.5% 득표로 제3당 신세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물론 43%라는 낮은 투표율을 보인 유럽의회 선거의 결과가 2006년 차기 총선의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사실은 사민당 지지자 상당수가 녹색당이나 민사당 지지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녹색당의 경우, 베를린(22.7%)/프랑크푸르트(25%)/뮌헨(23.3%) 등 대도시에서 학생과 지식인 그리고 공무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사민당을 추월했다. 한편, 지난 총선에서 5% 득표에 실패해 중앙정치무대에서 사라졌던 민사당은 구동독지역의 사민당 이탈세력을 끌어안고 부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사실 사민당의 지지율 하락은 우경화된 개혁프로그램인 '아겐다2010'과 함께 시작됐다. 국민들 대부분은 사민당이 140년 간 지켜오던 '사회적 정의(soziale Gerechtigkeit)'라는 가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사회적 국가(Sozialstaat)'의 기반을 흔드는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런 국민들의 집권당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7월 초 제1공영방송(ARD)이 실시한 가상총선 여론조사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사민당의 정당지지율은 23%에 불과해, 야당인 기민(CDU)/기사(CSU)연합이 얻은 45%의 절반 수준이었다.

역설적으로 더욱 보수적인 당론의 야당이 사민당 개혁정책이 불러온 국민적 저항의 반사이익을 최대한 누리고 있다. 한편, 독일노총(DGB) 위원장 좀머는 사민당의 노동시장정책인 하르츠법안IV이 "실업자를 지원하기보다는, 그들을 빈민화로 내모는 정책"이라고 노동자•서민의 입장에서 강력하게 비판했다. 따라서 여야가 사회경제정책을 통해 보수적 힘 겨루기를 하는 정치적 상황이 새로운 대안정당운동에 불을 지폈다.

7월 3일 베를린에서는, 90년대 사민당 대표로서 당내 좌파세력을 이끌었던 라퐁텐의 측근들로 구성된 '선거대안2006'과 노조활동가, 반세계화 운동세력들이 중심이 된 '이니셔티브 노동과 사회적 정의' 소속 4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선거대안 노동과 사회적 정의'라는 모임이 공식적으로 발족됐다. 이미 전국적으로 70개 지역의 1만 명이 의기투합한 새로운 대안정당운동은 하계휴가가 끝나는 올가을 전국대의원대회를 개최해서 좌파정당의 창당과 내년 5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 참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그리고 서진(西進)에 실패하고 있는 민사당과의 관계설정을 위해서 프로그램 논의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대안정치운동은 사회적 저항의 일환으로 기존 정치권에 대해 우선 4가지 항목을 요구하고 있다. ◇하르츠법안IV 철회. ◇노동시간연장 철회. ◇사회적 국가의 보장과 혁신. ◇부유세 도입. 그들은 실업수당/사회부조의 삭감과 노동시간연장(주당 35시간→40시간)을 반대하고, 사회적 국가로서 양질의 교육과 의료체계를 보장하기 위해서 자산세를 재도입하고 최고세를 47%로 인상하는 등 부유층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발기인 상당수가 노조관계자인 대안정당의 좌파적 요구들은, 계급의식으로 잘 무장된 조직 노동자들에게 상당한 유인효과를 거둘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조직화되지 않은 하층계급들 상당수도 지난 6월 선거에 대거 불참여했고, 좌파적 포퓰리즘 선동에 이끌릴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기에 대안정당의 주된 공략대상이다. 제1공영방송의 "새로운 좌파정당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6%는 확실히 지지할 것이고, 37%는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응답했다. 사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질문했을 경우, 그 답변이 각각 9%와 49%에 달했다. 그리고 젊은층, 노동자, 실업자를 대상으로 설문했을 때, 그 잠재적 지지율은 더욱 높아진다. 정당전문가인 발터교수(괴팅엔대학)는 라퐁텐(전사민당대표)이나 기지(전민사당대표) 같은 좌파적 명성이 높은 인사들이 참여하고, 몇 가지 쟁점에 대한 구체적 대안만 제시한다면 새로운 대안정당이 비례대표를 배분받을 수 있는 5%조항을 무난히 넘길 것으로 전망했다. 나아가 그는 만일 서독지역에서 집권여당에 실망해서 선거불참을 결정한 절대다수를 투표장으로 동원한다면, 10% 지지율의 상당한 기회를 엿볼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이런 좌파 대안정당운동에 대해 여야 모두 한 목소리로 비난하고 나섰다. 먼저 야당인 기사연 사무총장 죄더는 "현재 독일에 필요한 것이 경제적 실상도 파악하지 못한 또 하나의 좌파정당이 아니다. 그 존재는 독일을 더욱 괴롭힐 것이고, 실망스런 반쪽짜리 공산주의자나 노조관계자가 더 이상 잠재적인 세력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며 그들의 비현실성을 꼬집었다. 그리고 여당인 사민당 지도부는 '사생아'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일단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으로 애써 평가절하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구당위원장 샤르타우는 노조를 향해 야당의 정권탈환이 노동자들에게 재앙이기에 사민당과의 협력이 필연적이며, 당장 신당 창당에서 손을 뗄 것을 호소했다. 한편 부대표 폭트는 "베를리너 차이퉁(BZ)"과 가진 인터뷰에서, 대안정당운동에 참가하는 당원들을 모두 출당조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등 내부단속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내부단속에도 불구하고 당내 좌파세력의 합류로 대안정당운동이 탄력을 받게되면 사민당은 비상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슈뢰더 총리의 스타일로 봐서, 좌파 대안정당세력들에게 무릎을 꿇을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슈뢰더 총리는 독일의 사회적 국가가 현재 모습으로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지지율 급락을 '고통스러운 수치'로 표현하면서도, '아겐다2010'의 성공을 확신하면서 계속적으로 추진할 뜻을 피력했다. 오히려 그는 슈피겔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조는 내용적으로 아무 것도 제시하지 못하는 서비스공공노조 위원장 브지르스케 같은 사람이 노조전략을 수립해야 하는지를 반문해 봐야한다"면서 그간 개혁정책에 딴지를 걸었던 노조지도부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이에 노동계는 발끈해서 새로운 대안정당운동에 적극 참가하자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있다. 이런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서 사민당내 노동블록은 개혁정책에 대한 노조의 우려를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당과의 이해관계에서 노조가 제1선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당지도부에 호소했다.

올가을 브란덴부르크, 자란트, 작센을 시작으로 쉴레스비히홀스텐 그리고 내년 5월 사민당의 텃밭이자 최대인구 지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에서 연이어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만일 여기서 연합세력에게 모두 패한다면, 사민당은 상원격인 분데스라트의 3분의 2라는 절대의석을 야당에게 내주게 된다. 따라서 야당은 예산안 심의를 포함해서 여당이 제출하는 모든 법안들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민당은 정권의 정당성마저 위협받아, 야당에 의해 점차 가시화되는 조기총선이라는 국민적 압력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사민당 대표가 된 뮌터페링은 "가재는 게편"이라는 논리로 좌파세력들의 반란을 무마할 수 있다고 희망할런지 모른다. "노동운동은 단지 사민당과 노조가 어깨 걸고 나갈 때 성공할 수 있다"며 사민당으로 뭉쳐야하는 당위성을 역설한 그의 좌파적 레토릭만으로는 추락하는 사민당 지지율의 반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45년 전 사민주의자들은 소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채택해서, 주요 생산수단의 사회화라는 목적을 포기하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껴안았다. 이때부터 사민당은 사회주의적 목적과 맑스주의적 사상을 버리고 대중정당으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대안정당운동도 단순히 '아겐다2010'을 보이콧하는 차원을 벗어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어떻게 채워나갈지가 관건이다. 만일 대중의 정서에만 호소하고 슬로건성 구호나 남발하는 우파적 포퓰리즘을 답습한다면, 새로운 대안정당운동도 자본주의의 극복은커녕 개조도 불가능한 정치적 깃발 꽂기에 불과할 것이다. 독일 정당사가 새롭게 서술될 지 여부는 조만간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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