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전 매카시즘으로 돌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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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첩’ 출신 의문사위 조사 3과 김삼석 조사관 인터뷰

    ‘간첩’ 출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을 16일 만났다.

    최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에 보도된 이른바 ‘간첩’ 출신 의문사위 조사 3과 김삼석 조사관이다. 중앙일보가 “간첩·사노맹 출신이 의문사위 조사관이라니…”라며 개탄한 바로 그 핵심 ‘주인공’이다.

    그는 “‘간첩’을 보니 어떠냐?”고 물었다.

    검은 손, 붉은 눈은 아니었다. 머리에 뿔이 달리지도 않았다. 그가 화장실을 갈 때, 뒷모습을 살짝 엿봤지만 꼬리가 달리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렇게 예쁜 ‘간첩’ 봤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장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조사관은 “공안기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된 지 11년이 지났고 세상도 달라졌지만, 언론보도 행태는 똑같다”며 “20~30년 전 메카시즘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 등이 ‘간첩 출신 조사관’이라는 이념공세, 색깔공세를 펴기 위해서 법에 따라 정당하게 조사한 것까지 ‘한풀이’로 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조사관은 “조사관들이 한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보수언론이 손을 잡고 의문사위에 대한 색깔론으로 빨간색을 덧칠해서 흠집을 내고 뒤흔들려는 한풀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입에 성스러운 의문사위의 이름 자체가 오르내리는 게 안타깝다”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의문사위의 정체성과 활동목적을 운운할 자격이 있나?”고 되물었다. 그는 최근 보수언론이 집중적으로 의문사위 활동을 문제삼는 데 대해, “3기 위원회 출범을 앞두고 보수언론과 공안기관이 협조하에 벌어지고 있는 반발이자, 의문사위에 대한 흠집내기다”라고 비판했다. 그동안 제기된 온갖 비판에 대해 따져물었다. 아래는 김 조사관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인터뷰 전문


    -‘간첩·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 출신이 의문사 조사관’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지금 조선일보 등에서 ‘간첩·사노맹 출신이 의문사 조사관’이라고 크게 보도하는 것은 조사관과 위원회에 대한 인격권 침해고, 위원회의 도덕성과 정체성에 대한 흠집내기다.

    ‘간첩’이라는 표현을 언론이나 사회에서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표현자체가 법조항 어디에도 없다. 악법이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자’라고 할 수 있다. 악법을 어긴 데 대한 처벌은 받을 대로 다 받았다. 지난 97년 4년 복역을 마친 뒤 99년 2월 복권됐고, 조용히 사회생활을 하면서 과거를 잊으려는 사람에게 ‘간첩’을 들먹이는 것은 인권침해고 인격권 침해다. 제 경력이 민주주의 역사나 의문사 진상규명의 역사에서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저의 경력이 아니라, 의문사 진상규명을 막으려는 세력들의 경력이 더 의심스럽다.

    -정말 ‘간첩’이 아니냐?

    =국가보안법을 어긴 적은 있지만, ‘간첩’은 아니다. 저를 간첩이라고 권위주의 시절에 당시 공안기관이 만든 것이다. 안기부가 50년동안 간첩조작 사건을 만들어 왔는데, 이 사건은 명명백백하게 프락치를 통해서 간첩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공작에 참여해던 프락치 백흥용이 94년 10월 양심선언에 의해서 조작이라고 폭로했다. 또 프락치가 안기부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95년 3월 국회정보위에서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이 밝혔다.

    사건이 터진 93년 당시, 문민정부가 안기부법 개악을 앞두고서 급히 간첩사건이 필요했다. 1년6개월 정도 심어둔 프락치를 활용해서, 93년 9월8일 이른바 ‘남매간첩단’ 사건을 터뜨린 것이다. 93년 2월 당시에, 국내 군사자료를 모아 ‘청년과 군대’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의 일본어판 출판을 위해서 일본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일본에서 한국의 노동운동과 민주화 지원활동을 했지만, 당시 보안법상 반국가단체였던 ‘한통련’ 관계자, 곧 반국가단체 구성원을 만나면서 국가보안법을 어긴 것이다.

    군사기밀자료를 넘겨줬다지만, 그게 바로 ‘청년과 군대’라는 책이다. 한겨레신문과 ‘말’지에 나온 자료를 엮은 것이다. 공작금 60만엔(약 600만원)을 받았다는데, 그해 3월10일 결혼했기 때문에 축의금과 한통련 관계자를 통해서 책이 출판돼 책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았을 뿐이다.


    -어쨌든, 편견을 갖고 기무사 등 공안기관에 대한 ‘한풀이’ 조사를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전혀 아니다. 국회에서 통과된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과 시행령, 위원회 규정과 규칙에 의해서 조사한다. 조사분석서와 조사계획서를 만들어 조사팀장, 조사과장, 위원회 상임위원 등의 지휘도 받는다. 또 내부검토를 거쳐서 중간중간 유족들에게 설명을 하면서 위원회와 진정인에게 절차가 공개되는 가운데 조사가 진행된다. 1~2명의 조사관이 독단적으로 판단하거나, 개인에 의해서 조사활동이 치우칠 수 없다. 위원회는 조사관 63명 가운데, 민간인이 36명과 나머지 공안기관에서 파견된 직원이 섞여 같이 자료를 찾고, 같이 조사를 한다.

    모든 조사는 법적절차에 따라 이뤄졌다. 특별법 22조에 “진정인, 참고인, 피진정인에 대한 진술서 조사요구, 진정인, 참고인, 피진정인의 출석요구 및 진술청취”가 법적 권한으로 주어져 있다. 이에따라 더러는 소환하고, 때로는 직접 방문해서 진술을 듣는 것이다. 조선일보 등에 언급된 조사자들은 대부분 참고인에 해당된다.

    군 사령관 등을 조사한 것은 이들이 군 의문사가 벌어졌던 군사정권 시절에 당시 대대장, 연대장 등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운동권 출신 사병을 어떻게 감시·관리했느냐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간부급을 조사할 수밖에 없다. 군 사령관이든 국방장관이든, 법적 권한 안에서 피진정인과 참고인으로 조사한 것이다.

    조선일보 등의 보도는,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는데 ‘간첩 출신 조사관’이라는 이념공세, 색깔공세를 펴기 위해서 제가 조사한 것까지 문제삼는 것이다. 군사령관이나 국방부 장관이 사건과 관련성이 없는 문제로 제게 조사를 받았다고 항변을 하거나, 부당한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다.

    지금의 논란은 조사관들의 한풀이가 아니라 이를 막으려는 세력들의 한풀이가 아닌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공안세력과 기득권 세력, 특히 의문사 사건을 일으킨 피진정인들이 아직도 기득권 세력으로 존재한다. 의문사위에 대한 색깔론으로 빨간색을 덧칠해서 흠집을 내고 뒤흔들려는 한풀이가 아닌가 싶다. 특히 기득권세력과 보수언론이 서로 공조를 취해서 한풀이 하는 것으로 본다.

    -어찌되었든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는데, 의문사위 직원으로 채용한 것은 잘못된 것 아닌가?

    =국회에서 제정하고, 일반 공무원과 국가기관에 다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국가공무원법 33조에 따라 결격사유가 없으며 공개채용 되었다. 또 특별법 13조와 위원회 규정, 조사관(전문위원)의 채용에 관한 규정 등 5~6개의 심사과정을 거쳐서 들어왔다. 특히 경찰과 공안기관의 신원조회도 거쳤다.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이 들어와서 ‘한쪽으로 치우친 게 아니냐’고 하는데, 우리들에게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이냐? 우리도 사람이고,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지 않느냐? 그게 민주주의 사회 아니냐? 이것을 왜 트집을 잡는지 모르겠다.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은 권위주의 통치시절에 저항하고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격권을 침해 받았지만 사회를 보는 눈, 고문과 의문사가 없는 세상, 의혹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80년대부터 옥살이를 마다하지 않고 행동해왔던 경험이 있다. 진상규명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성실성, 역동성이 남다르다. 위원회 활동은 누가 ‘역사의식’을 갖고 더 적극적으로 조사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때문에 조사관 채용 규정 3조3항은 민주화운동단체의 추천자를 우선 채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의문사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용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92년에 ‘청년과 군대’라는 군생활 입문서를 냈고, 일본어판으로 나오기도 했다. 2001년에는 ‘반갑다 군대야’로 개정판을 냈다. 군의문사와 군인권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경험을 갖고, 군사평론과 기고를 오랫동안 해왔다. 군대는 구타·안전·총기 사고 등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권의 사각지대다. 인권이 보장되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공부하고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와 동시대에 살았던 이른바 전대협 세대 등 민주화운동 경력자들이 얼마나 많이 국회의원으로 뽑혀 활동하고 있는가? 국회뿐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도 민주화운동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공직사회를 이끌고 있다.

    사노맹 사건에 연루됐던 조국 교수가 국립대학인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있고, 백태웅씨도 국제로펌에서 국제변호사 자격을 따려고 하고 있다. 오랜 수형생활을 극복하면서 민주주의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남다르다. 오랜 수형생활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조사에 임했다.


    -직원의 경력 등 최근 잇따라 의문사위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3기 의문사위원회가 KAL기 관련, 3천여건의 군대 의문사 조사 등 의문의 사건에 대한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다. 또 조사시점도 69년부터가 아니라 5·16 쿠데타가 일어난 61년도부터 잡으니까 3기 위원회 탄생을 저지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공안기관은 위원회의 조사권한이 강화되고 조사범위가 확대되는 것을 앞장서서 반대하기 때문에, 공안기관과 보수언론이 협조하면서 의문사위를 끝없는 색깔론 공세로 몰아가고 직원들의 전력까지 문제삼는 것이다.

    또 이번에 뒤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9일 기무사에서 의문사 사건에 대한 마이크로 필름 관리시스템을 열람하는 등 강도 높게 실지조사를 했기 때문이다. 위원회와 공안기관이 전면적으로 부딪히니까 이렇게 반응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들에 대한 경력 등을 알고 있으니까 공안기관과 보수언론이 협조하지 않았나하는 의문이 든다.

    보수언론은 6월 말부터 위원회를 본격적으로 뒤흔들 준비를 했다. 7월2일치에서 중앙일보가 ‘남파간첩과 빨치산이 민주화 인사라니…”라는 식으로 보도한 게 시발점이었다. 180도 왜곡이다. 위원회는 이들의 의문사 과정에서 공권력이 위법하게 행사가 됐고, 강제전향을 거부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98년에도 전향제도 폐지, 2003년 준법서약제 폐지 등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에 기여했다고 봤던 것이다. 이 보도 뒤 왜곡 편향보도로 나가고 있다.

    -보수언론은 의문사위의 정체성과 활동목적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한다?

    =그 지적 자체가 말도 안되는 기가 막힌 것이다. 경찰에서도 문제삼지 않는 조사관의 전력을 이제와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왜 문제삼는지 그 저의가 더 의심스럽다. 보수세력을 대변하면서, 의문사위를 흔들어서 자신들의 보수독자를 응집시키려는 저의가 아닌가. 그들 신문은 의문사위의 정체성과 활동목적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그들의 입에 성스러운 의문사위의 이름 자체가 오르내리는 게 안타깝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의문사위의 정체성과 활동목적을 운운할 수 있나? 어떤 신문들인가? 친일과 족벌의 경력을 갖고 있는 신문이다. 신문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언론보도에 대해 앞으로 법적 대응 등을 검토하고 있는가?

    =간첩은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편의 내부에 침투해서 그 기밀을 알아내는 사람이다. 저는 국가보안법을 어긴 것이지, 간첩이 아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간첩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문제다. 정정보도와 반론보도를 요청할 계획이다. 또 앞으로의 보도수위를 보고서 민·형사상의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조사를 시작하면서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섣부른 기대를 했다. 하지만 의문사위의 지난 3년은 공안기관의 비협조의 역사다. 음지에서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을 위해하고 의문사를 낳았던 공안기관인 국정원, 기무사, 경찰이 어떻게 세상의 변화에 조응하는가 하는 것이 민주화의 척도라고 본다. 열린 자세나 제도적인 정비를 통해서 의문의 사건을 그들 스스로가 밝혀야 하는데, 지난 3년동안 비협조로 일관했다.

    이 기관들이 변하지 않고는 아직 우리사회의 민주화는 멀었다. 3기 위원회가 곧 출범하는데, 의문사를 낳았던 공안기관들이 이제는 20년전 강제징집 녹화사업자료, 허원근 일병 자료, 이름 없이 군복만 입은 죄로 철책선 초소에서 죽어간 사병들의 사망보고서를 가감없이 공개하면서 털고 가야 한다. 모든 자료는 그들이 갖고 있고, 그들이 자료실을 열어주면 논란없이 문제가 이른 시일안에 풀릴 수 있다. 의문사의 원혼이 아직도 떠도는데, 민주와 인권을 얘기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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