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이광훈칼럼] 집단적 思考의 함정

 

얼마전 미국 상원은 이라크전이 중앙정보국의 잘못되거나 근거없이 과장된 정보 때문에 일어났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중앙정보국의 잘못된 정보평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집단적 사고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의 이같은 보고서는 이라크전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잘못된 전쟁이라는 주장을 공식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당초 전쟁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라크가 9·11테러에 관련되거나 지원했다’는 근거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후세인이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쌓아두고 있을 뿐 아니라 10년 안에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정보도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다. 상원 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이같은 ‘세계적인 정보 실패’를 근거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결과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집단사고 때문이었다.

9·11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성조기 배지를 달고 공석에 나타났다. 아마도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정부의 항재전장(恒在戰場) 결의를 과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자 파월 국무장관을 비롯한 핵심참모들도 약속이나 한듯 일제히 성조기 배지를 달기 시작했다. 그 성조기 배지에는 또한 부시를 정점으로 한 동지적 결속과 일체감을 다지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

-美, 근거없이 이라크 침공-

그러나 돌이켜보면 일제히 달기 시작한 그 성조기 배지야 말로 부시 행정부의 집단적 사고를 가꾼 토양이 되었다.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이나 조직이 어떤 중요한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고 하는 사고의 경향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정의하고 있다.

이같은 집단적 사고가 지배하는 조직에서는 만장일치를 깨뜨리는 소수의견이나 비판적인 사고는 동지적 결속을 위협하는 ‘불온(不穩)’으로 낙인찍히게 마련이다.

집단사고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흔들리거나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 지배자가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조직일수록 더 많이 나타난다. 이런 조직에서는 “윗분의 결심이 섰다. 모두가 힘을 합쳐 그 분의 결심을 실천해야 한다”는 한마디에 모든 부서가 일사불란한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이렇게 되면 가장 정직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정보도 윗분의 구미에 맞게 윤색되거나 왜곡되게 마련이다. 만약 윗분의 결정에 토를 달거나 성공을 의심했다간 ‘왕따’당하거나 추방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 자리에서 새삼 집단적 사고의 함정을 경계하는 것은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그토록 활발하게 쏟아져나오던 다양한 의견들이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목소리로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당정이 일제히 나서서 복창하고 ‘실시!’를 외치기에 바쁜 것이 참여정부의 요즘 모습이다. ‘계급장 떼고…’ 운운하던 것도 행정수도 이전문제가 첨예한 정치쟁점으로 떠오르기 전에 있었던 옛날 얘기다.

물론 지금도 정책토론회도 있고 공청회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같은 모임의 대부분은 이미 결정된 정책을 다짐하는 결의대회나 윗분의 결심을 실천하기 위한 전진대회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른 어느 정권보다도 열린 정부임을 자랑하던 참여정부가 출범 1년6개월도 안되어 집단적 사고에 빠져들어 획일적이고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참여정부 획일성도 우려대통령의 한마디에 일제히 복창하는 모습은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김명수 시인의 ‘하급반 교과서’라는 시를 떠올리게 한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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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15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이해찬 총리 임명 역시 당을 견제하기 위한 노무현의 뜻을 담고 있다고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