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 반대하는 그 전쟁에

 

나의 작은 취미 중 하나는 새로 나온 책들을 소개한 신문기사를 보고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만들어서 갖고 다니는 거다. 단골 서점이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은 후론 책을 자주 사지도 못하는데다 바쁘단 핑계로 그중 반도 소화 못해낸 채 볼 책들을 쌓아놓는 곳엔 ‘대기 중’인 것들이 항상 열 권이 넘는다. 그런데 요샌 네 살짜리 딸아이까지 책맛을 알기 시작해서 아이 책까지 살피느라 신간서적 소개하는 날이 더 기다려진다. 그러던 어느날, 어린이들에게 헌법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놨다는 어떤 새 책에 대한 소개 글을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책을 소개한 기자는 200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는 거리에 아이들이 몰려나온 일이라면서 탄핵 반대와 이라크 파병 반대 촛불시위에 나선 뜻있는 엄마 아빠라면 어른들에게도 힘든 법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이 책을 아이들에게 꼭 보여줘야 할 거라는 얘기였다. 귀가 솔깃해지는 책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책이기에 우리 아이에겐 맞지 않지만 우선 법에 무지한 나부터 일단 읽어보고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 녀석에게 선물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 기자는 법치국가인 나라에서 헌법을 다룬 어린이 책이 없었다는 건 난센스라며 책 내용을 소개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의 뜻으로 대한민국을 다스린다.’ 헌법 1조 1항이란다. 가슴이 뻐근했다. ‘남북의 통일과 평화를 지향한다.’(헌법 4조) 우리의 아이들이 읽을 생각을 하니 기특한 책이지 싶다. ‘사람은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헌법 10조) 그 딱딱한 책에 이렇게 낭만적인 얘기도 실려 있나 싶다. 풀어서 쓴 것이겠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인 얘기라 나중에 상처받기 십상인 구절 같다. ‘양심은 내 마음 속의 진정한 재판관이다.’(헌법 19조) 음 …, 정말 멋진 조항이다. 이런 책을 읽고 자란 아이는 어른이 되면 비전향 장기수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건드린 대목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을 반대한다’(5조 1항)는 조항이었다. 눈물이 났다. 정말 헌법 책에 그렇게 나와 있다면 이라크 파병을 막아내지 못한 우리 국민 모두는 심각한 범법자가 된 꼴이 아닌가. 우리 어른들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에, 그것도 남의 나라 전쟁에 비굴하게 동참하면서 아이들보고는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하다니….

글 쓰는 사람은 글로, 가슴이 더 뜨거운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 파병 반대 뜻을 알렸다. 우리 ‘국민’들이 말이다. 심지어는 ‘국익’ 같은 말을 정말 좋아하던 한나라당의 일부 의원들마저 ‘잘못된 전쟁’이라더라, 우리도 그만두자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주인’인 국민이 목 터져라 반대하는데 … 국민의 뜻으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헌법에 나와 있거늘 … 침략적 전쟁엔 동참하지 않겠다 해놓고 … 그렇게 얘기하는 ‘국익’을 입을 당사자인 우리들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지난 대선 때 타는 가슴으로 텔레비전을 지켜보다가 이른바 ‘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사람으로서 대통령이라는 ‘처지’를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애써 봤다. 하지만 김선일씨의 울부짖음 앞에 작은 ‘액션’ 하나 없이 ‘고!’를 외친 그를 보고는 정이 뚝 떨어진 게 솔직한 심정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어느 문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름을 표기하는 데 ‘ROH’가 아닌 ‘NO’로 표기를 해서 작은 말썽이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실수가 아닌가 싶다. 옛정()을 생각해서 그가 ‘ROH’무현이 아닌 ‘NO’무현이 되는 것만은 막아보고 싶으므로 내가 오늘 신간서적 목록에 올린 이 어린이 서적을 그에게 선물하고 싶다. 가만 있자, 청와대 주소가 어떻게 되더라 참! 그의 전직이 변호사였다지 이런! 이렇게 민망할 데가 ….

오지혜/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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