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충격과 이라크 사태

 

삶을 향해 절규하는 고 김선일씨의 마지막 모습은 일본에서도 되풀이 방영됐다. 같은 아시아인이며 비슷한 상황에 있기 때문인지 일본 사회도 충격과 더불어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주도의 ‘유지연합’(有志聯合)의 일원으로 파병한 한국과 일본으로서는 이제 누구라도 테러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라크 사태를 조속히 수습하지 않는 한, 더 큰 비극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주말의 참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일본 사회도 테러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선거 사흘 전에 열차 폭파 테러가 일어난 스페인의 악몽에 대한 경계다. 전철역마다 삼엄한 경계태세가 펼쳐지고, 중동이나 남아시아 계의 외모를 한 외국인에 대해 집중적인 검문도 행해지고 있다. 안전이라는 명목 아래 벌어지는 인권 침해가 별다른 저항이나 비판도 없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또다른 우려다.

“일본 정부는 3명의 인질을 구출했는데 왜 한국 정부는 속수무책이고 수수방관했는가” 당연한 문제제기다. 보도된 것 이외에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외교통상부를 비롯한 관계기관의 초기 대응에는 많은 의문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일본의 인질사건과 김선일씨의 경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본인 인질의 경우는 팔루자의 저항세력의 행동이었다. 당시 미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되고 있던 팔루자의 상황을 세계에 알리고 미군의 공격을 중지시키려는 명백한 현실적 목표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질 살해를 위협하면서도 국제 여론과 일본 사회의 반응을 보면서 ‘교섭’에 응하는 유연한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인 인질사건도 하나의 계기가 되어 팔루자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둘러싸고 국제적인 비판이 고조되고 ‘휴전’이 일단 성립됐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이에 반해 김선일씨를 살해한 그룹은 알카에다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인질의 잔혹한 살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국제 사회에 충격을 가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전개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섭’이라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전시효과를 노린 살해 그 자체가 인질로 삼은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큰 비극, 나아가 한국 내에서 테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이라크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새로운 체제의 형성을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테러의 위협에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반복하는 것도, 이라크에서 즉시 철수하라는 주장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다. 지금과 같은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문제 해결의 수단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이며, 상황을 수습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편 지금 이라크에서 각 국이 전면 철수할 경우, 수습하기 어려운 혼란과 분쟁이 뒤따를 것도 거의 확실하다.

사실상의 미군 점령체제를 대신할 명실상부한 국제적 지원체제를 형성하는 데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각 국이 연계한 외교노력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시점이다. 궁극적으로는 유엔의 주도 아래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당사자인 중동 이슬람 각 국, 나아가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립적’이며 중동지역과 호의적 관계를 유지해온 한·중·일 등 동아시아가 포괄적으로 관여하는 체제 구축이다. 우리 정부도 또한 일본도 이제까지 이라크 전쟁에 대한 협력을 에너지 확보나 대북정책 등 너무나 좁은 ‘국익’ 차원에서만 설명하고 행동해 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동아시아 공동체’의 공통의 과제로서 이라크의 부흥과 안정이라는 새로운 시각과 실천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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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부가 못하면 시민들이 나서서 해야죠. 동아시아 평화연대의 구축은 정말 절실한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