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과 한반도 군축

 

함택영(경남대 교수·정치학, 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
2004년 7월 1일



이 글은 7월 1일 한국 국방연구원 주최로 열린 국방 NGO 포럼에서 평화네트워크 자문위원이신 함택영 선생님이 발표하신 글입니다. 협력적 자주국방이 국방 정책의 핵심 과제로 등장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군비 증강 논리가 힘을 얻는 상황에서, 자주국방의 본래적 의미와 한반도 군축의 가능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커서 소개드립니다. 표는 생략했습니다. 한글 파일은 군축 자료실에 올려두겠습니다.

서 론

상호방위조약 체결 50년이 지난 오늘날 한미동맹은 전환기에 처해 있다.  미국은 대중 견제를 주목적으로 하는 지역동맹을 원하는 한편, 보다 대등한 동맹관계를 원하는 한국은 또한 동맹이 한반도의 안보에 국한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반미감정이나 안보의식이 해이라고 말할 수 없다.  과거 어려웠던 시기에 전적으로 한미동맹에 의지했던 ‘무조건안보’에서 이제는 군사주권이나 대등한 한미관계를 포함하여 이른바 ‘안보의 질’도 추구하는 의식의 성숙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의 주한 미군 재배치 및 감축계획 발표는 한국민의 안보의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국민의 상당수가 주한미군 재배치나 철수 이야기만 나오면 불안해 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계획은 한국군의 방어능력에 대한 신뢰와 GPR이라는 새로운 국방정책에 의거한 것이지, 한미관계의 변화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반미정서를 지켜본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 내지 재배치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민들의 대미 의존심리를 십분 활용하였다.

오늘날 자국의 군사력에만 의존하는 ‘자력국방’을 할 수 있는 국가는 거의 없다.  그러나 1970년대 시작된 ‘자주국방’에도 불구하고, ‘인계철선(trip wire)’ 역할의 주한 미 지상군을 근간으로 하여 한미동맹이 국가안보의 필수적이라는 뿌리 깊은 대미 안보의존의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최근 정부의 자주국방정책은 미군 재배치와 12,500명 감축에 대응하는 한국의 독자적인 전략기획 및 작전수행능력 배양보다는 미 첨단무기 구입이라는 군비증강책으로 변질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자주국방을 논의함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한미동맹은 한미 우호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수단인 것이다.  또한 남북한의 화해협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군사력균형(가능하다면 우위)을 통한 국가안보를 추구하는 비관주의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단순한 군사적 접근보다 군비통제 및 군축을 통해 ‘공동안보’를 모색하는 ‘포괄적 안보’ 접근방식이 탈냉전기의 시대적 요청이다.

남북한 군사력균형

국민들은 북한의 안보위협이 상존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주한미군 감축에 대응하고 자주국방을 구상함에 있어서 먼저 (남북한) 군사력균형을 새롭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한국군은 교육훈련, 장비지원, 병참보급, 대비태세 등 조직적 역랑에서 세계적 수준으로서 인민군을 압도한다.  특히 최근 신기술(ET) 혹은 군사기술혁신(RMA)의 결과 정보화전력이 전력평가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력승수(force multiplier)가 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태적 분석의 기본 모델로 널리 이용되는 ‘란체스터 기하급수법칙’(Lanchester Square Law)도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화력×기동력×정보력’의 공식을 개념화한 것이다.  인민군이 기계화수준에 있다면, 한국군은 지금 C4I를 중심으로 한 ‘정보화’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정보화전력을 경시하고 단순화력을 중시한 ‘전력지수’가 부적절한 방법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주한미군이다.  1988년 기준 주한미군의 전력지수는 인민군의 5%(한국군의 8.3%)로 평가되었으나, 군사투자 재고는 1990년대초 159-160억불로서 국방부가 추정한 1990년 북한 투자비누계의 36.5%에 달하는 규모였다.  주한미군의 조기경보 등 정보화전력을 높이 평가하나, 이를 전력지수에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력지수는 또한 시간 개념이 배제된 일정시점 화력의 유량(flow, 電力의 KW)이지 지속성을 포함한 화력의 저량(stock, 電力의 KWH)이 아니다.

한편 군사력균형에 대한 동태적 분석은 전쟁/갈등의 시나리오에 의하여 결과를 예측하는 워게임(war game)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는 전투력의 각종 승수효과를 입력하고 교전쌍방의 사상자수 및 이에 따른 전선의 변화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정교한 워게임은 기밀로 분류되어 있으나, 통상적으로 기후·일기·지리·지형 등의 환경요인과 작전 임무, 공격·방어 간의 차이, 기습 효과 등 작전요인을 종합한 것이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산악과 구릉이 많은 한반도의 지형이 방어에 유리하고, 결정적인 병과는 포병의 지원을 받는 보병임을 일깨워준다.  ‘병력 대 공간의 비율’(space-to-force ratio)을 볼 때 전선이 정비되고 인접부대와 연계가 공고한 현재 남북의 대치상황은 한국전쟁 후반처럼 진지전이 될 것이다.  설령 인민군이 돌파에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근접공중지원·이동식 대공방어·병참보급의 결핍 등으로 인해 소련식의 작전기동군(OMG)의 운용이 어렵다.  

한편 한반도의 상황에서 남한은 수도권이 DMZ에서 가까워 전략적 종심이 짧다는 약점을 안고 있어 기습에 의한 인민군의 전격전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인민군의 성공적 기습이나 화학전 감행은 ‘최악의 시나리오’로서, 남한의 성공적 방어를 위해 기습에 대비한 ‘조기경보’ 능력이나 대비태세는 충분하다.  기습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전방의 보병군단들로만 공격을 감행해야 하기에 충격이 약하고, 돌파력을 위하여 제2선의 기갑/기계화부대를 동원할 경우에는 기습의 효과가 사라진다,  다만 수도권이 전선에 인접해 있어 북한은 장사정포와 같은 전술무기로도 수도권을 파괴할 수 있는 전략무기 효과의 이점을 누리고 있다.
군비투자는 군사력의 정태적 비교를 위한 보다 객관적인 척도이다.  국방부도 단순개수비교와 전력지수 외에 투자비누계, 즉 ‘군사자본재’(military capital stock) 비교를 이용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첫째, 한국군의 투자를 오랫동안 책임진 미 군원을 배제하고 ‘율곡사업’에 의한 전력증강계획만을 투자로 치부했다.  둘째, 북한의 국방비를 과대평가했다.  셋째, 군사자본재의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았다.  본 연구자는 ‘국방비+군원’을 총국방비로 규정하고, 북한의 총국방비를 여러 가지 가정하에서 추정하였다.  그 결과 연간 남한이 총국방비에서 1976년경부터, 그리고 투자비누계에서는 1980년대에 우위를 점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압도적으로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남한의 군비증강에 필적할 수 없었다.  경제쇠퇴 및 공산권붕괴에 따른 군사원조의 감축 때문에 1990년대 북한의 군비지출은 크게 감소하였다.  북한의 무기수입액은 1990년대 연평균 1억불 미만으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북한은 군사력의 현대화·정보화에 착수하지 못하였으며, 소련의 말기와 같이 각종 구식 무기를 비축해 놓았을 뿐이다.  더욱이 심각한 에너지난과 외화부족 때문에 노후화된 무기나마 효과적으로 운영유지할 수 있는 능력도 감퇴되었다.  그 결과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남한은 북한에 비해 잠재적으로는 물론 전쟁수행능력에서도 우위에 있다.  사실 남한은 근래 주변국의 잠재적 안보위협에 대처하는 미래지향적 군비증강도 도모하고 있으며, 계획중인 상당수의 첨단무기는 북한보다는 향후 일본 등 주변강국의 군사위협에 대비한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 결정은 이러한 군사력균형 판단에도 기초를 두고 있다.  군사력에서 남한이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부문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북한 따라잡기’ 식의 양적 증강에 치우치는 한편 미국에 의존하는 이른바 ‘독자적 전략기획 및 작전능력의 부재’일 것이다.

북한은 남한의 자본집약적 증강에 대처하여 병력증강이라는 ‘노동집약적 군비증강’을 추진했고, 최근에는 전쟁수행능력보다는 재래식 및 비재래식 대량살상/파괴무기 등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억지전력에 치중하는 등 ‘비대칭적 군비경쟁’으로 전환했다.  북한은 최후수단으로서의 비재래식 억지능력 외에도 적어도 남한에 대하여는 또 다른 재래식 억지력을 지니고 있다.  북한은 특히 제1차 핵위기 이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 즉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는 240mm ‘방사포’와 170mm 자주포 등 500문의 대구경포대를 전진배치하고 있다.
요컨대 남북한간에는 남한의 재래식 ‘전쟁수행능력’ 우위 대 북한의 ‘억지력’이라는 ‘비대칭적 군사력균형’ 혹은 ‘위협의 균형’이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정보화를 중심으로 하는 남한의 재래식 군사력증강이 대북 억지의 측면에서 큰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예컨대 서울을 타결할 수 있는 장거리포대 및 미사일의 위협은 군비증강만으로써 해소하기 어렵다.  모든 북한의 위협이 제거된 ‘절대안보’란 달성하기 어렵다.  절대안보를 위한 남측의 군비증강은 북으로 하여금 더욱 다량의 값싼 공포무기를 갖추도록 부추기게 된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한미군은 1953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하여 한미군사동맹의 상징이자 전쟁억지력의 핵심으로서 한반도의 안보와 동북아의 안정에 필수적인 요인이 되어 왔다.  앞으로 주한미군의 역할과 관련하여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한미동맹체제의 장래 비전을 정립하는 일이다.  한미 양국은 동맹의 성격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 및 아시아전략과 한국의 국지전략을 조화하여 양자간에 일치된 이익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과거 수차의 주한미군 감축이 모두 미국의 일방적 결정에 따라 추진되었다.  앞으로는 이 문제를 한미 양국이 긴밀한 협조에 의하여 결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최근 논란이 된 미 지상군 재배치 및 감축은 한국의 안보에 큰 영향이 없다.  한국군의 증강과 경제난에 따른 북한의 군사력 쇠퇴로 인해 주한 미군은 ‘과잉 억지력’의 측면이 강하게 되었다.  또 병력은 철수하더라도 장비는 ‘사전배치’ 상태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심리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을 겨냥하는 북의 장거리포대에 대한 대응책 외에는 한국군의 대체전력 확보 논의는 시급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오히려 한국군의 자주의식 배양과 독자적인 전략기획 및 작전수행능력 제고의 기회로,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군비통제 및 군축을 추진하는 기회로 선용할 수 있다.

일부 국민들이 우려하는 군사안보위협이나 나 체제불안 등 ‘안보공백’은 ‘마음 속의 공백’이다.  물론 국가안보에는 심리적인 차원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허위의식은 과감히 불식되어야 하며, 만약 북한측이 남한의 능력이나 의지를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면 현실을 보다 직시하도록 해야 한다.

향후 한미동맹의 성격은 한반도 및 동북아의 정세와 밀접히 연관된다.  국가간 힘의 구도를 중심으로 향후 동북아 안보환경을 살펴보면, 비록 한국이 세계 12위의 중진 경제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여전히 약소국이다.  남북한과 타이완 3약국이 높은 병력비율이나 군비부담을 유지하더라도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균형자(balancer) 역할도 하기 어렵다.  동북아의 열강이 힘의 정치와 군비경쟁에 나설 경우, 그 최대의 피해자는 한국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의 국력신장과 이에 따른 중·일간의 갈등 및 나아가 미·중간의 패권경쟁은 한국의 군사안보전략에 시련과 도전이 될 것이다.  한국은 미·중간의 군사적 갈등이 발생할 경우 참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중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경제발전을 위하여 미·일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참여하여야 한다.  중국이 2015-2025년경 경제총량에서 미국을 추월할 수 있다는 <표 2>의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또 비록 경제총량에서 앞선다 할지라도 군사력에서는 여전히 열세이며, 보다 중요하게는 19세기 영국과 20세기 미국이 보여주듯이 경제생산성·과학기술의 우위·사회문화적 가치에서 다른 나라들을 이끌지 못한다면 헤게모니를 누릴 수 없다.
그러나 한·미동맹에 주로 의존하여 왔던 한국의 안보전략은 장기적으로 보다 다변적인 안보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남북한 및 동북아의 군비통제와 군축을 적극 주도하여야 하는 한편 주변국에 대한 최소한의 자위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잠재역량의 배양, 특히 연구개발 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이 앞으로 전개될 미중대결에서 균형자의 역할을 택하든가 혹은 중립국이 되는 개연성은 매우 낮다.  장기적으로 한국은 대중 갈등은 물론 통상압력이나 방위비분담 문제 등을 중심으로 한미동맹 및 주한미군에 대한 냉철한 비용대비 효과 분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주한미군 없는 한미동맹’은 얼마든지 가능한 대안이 될 것이다.

결 어

자주국방의 기본은 자주의식에 있다.  자주국방은 자력국방은 아니다.  자주국방의 요체는 대미의존을 극복함으로써 통일조국의 독자적이고도 평화지향적인 정책과 철학을 갖추는 것이다.  현재의 비대칭적 한미 동맹구도와 대미 안보의존 심리는 과도하다.  한국민과 정부 모두의 ‘위기관리’ 체제와 안보외교능력을 배양함으로써 대미의존을 극복해야 한다.  향후 한미 동맹체제, 특히 미군의 재배치에 따라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등 동맹군 지휘체계, 무기개발 및 구매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시기가 올 것이다.  나아가 자주국방은 ‘주한미군이 없는 한국의 안보’를 구상하고, 궁극적으로는 한미동맹의 유용성도 냉철하게 재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주국방은 남한이 독자적인 전쟁억지력을 확보해야 하나, 이와 동시에 북한의 안보불안감을 자극하여 새로운 군비경쟁을 야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북한은 군사대립과 군비경쟁을 극복하고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및 군축을 통한 ‘공동안보’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대승적인 정치적 해결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남북한의 독자적인 안보정책은 비생산적인 적대와 군비경쟁을 낳을 뿐, 결국 각자의 안보를 증진시키지도 못했다.  GDP 15-20%로 추정되는 북한의 군비지출에 비해 3% 미만인 한국의 군비부담이 높은 편이 아니자만, 근비증강에 이미 한계효용의 체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성 공단 사업의 진척과 2004년 6월 장성급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군비통제 및 군축이 진전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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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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