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차 6자회담이 지난 6월 26일 베이징에서 막을 내렸다. 과연 이번 회담의 성과는 무엇인가. 북핵 문제 해결은 가시권 안에 들어온 걸까.
북한 핵포기 선언 용의 시사
6자회담 참가국들은 대체로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북한이 2003년 1월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 북핵 공방이 재연된 이후 처음으로 핵동결을 위한 행동계획이 마련되고 논의된 게 이런 평가의 근거다. 중국 외교부의 장치웨(章啓月) 대변인은 "(북핵 동결과 보상에 관한 논의가)실질적인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북핵 공방'이 3차 6자회담에 들어 실질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음을 역설한 것이다. 한국측 대표단장인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당사자들이 안을 낸 것은 처음이고 이견 차이도 크다"면서 "논의해볼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음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3차 6자회담을 정리하는 의장성명에서도 실질적인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배어나온다. 의장성명에서도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말 대(對) 말'에서 '행동 대(對) 행동'의 단계적인 과정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실무그룹회의를 열어 비핵화를 위한 첫단계 조치들(First steps)의 범위와 기간, 검증, 상응조치를 정의한다"고 사후 계획도 밝혔다.
이런 대화 분위기 조성은 무엇보다 미국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원칙'을 탄력적으로 적용한 데 기인한다. 미국은 'CVID원칙' 대신 '포괄적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측 수석대표인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최종목표는 CVID이지만 중요한 것은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접근법"이라고 강조했다. 실질적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술적 후퇴란 의미다. 결과적으로 "만약 미국이 CVID를 고집한다면 어떤 결과물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6월 15일 외무성 논평)해온 북한의 체면도 살려준 셈이다. 미국의 융통성에 북한도 즉각적으로 호응했다. 북측은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최종목표임을 밝힌다"면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면 모든 핵무기 관련 계획을 투명성 있게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조건을 달았지만 핵포기 선언 용의를 시사한 것이었다.
북핵 타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핵 해결을 위한 제안에서도 북한과 미국이 다른 화법을 쓰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하나같이 조건부 수용론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먼저' 이뤄지지 않으면 협상의 여지는 없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6자회담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선 북한의 핵폐기가 이뤄져야 한다. 첫 단계가 핵동결이다. 핵동결은 검증이 수반된다. 이것이 바로 6자회담의 중요한 의제다. 비핵화 실현을 위해서 핵시설 사찰 범위와 방식이 주요 논란거리다. 핵동결에 따른 상응조치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미국과 북한 사이의 '모순'이다. 북한과 미국이 제시한 해결방안을 비교해보면 이런 관계는 보다 분명해진다.
우선 핵사찰 범위와 방식에서 현격한 차이가 난다. 미국은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HEU) 핵개발 계획을 동결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북한은 이에 반대한다. 평화적 핵활동은 동결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북한은 종전엔 핵위기의 출발점이 된 고농축 우라늄의 존재사실 자체를 부인해왔다.
다만 북한은 5MWe 원자로와 더불어 방사화학실험실(핵재처리시설), 이 실험실에서 추출한 플로토늄을 동결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했다. 북한은 그동안 이 부분은 동결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HEU) 핵개발 계획을 동결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평화적 핵활동은 동결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협상 진전을 막을 수 있는 요소다. 북한이 HEU계획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미국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핵동결 검증방법도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반대하고, 6자회담 참가국에 의한 사찰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은 IAEA 시찰의 근거가 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다시 가입하지 않고, 핵동결에 대한 검증을 받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항구적으로 핵활동을 감시받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 제한적으로 핵사찰을 수용하겠다는 계산이다. 반면 미국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IAEA 사찰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제안은 북한 의지 시험용?
북한은 핵동결 대가로 요구한 보상안도 만만치 않다. 2백만㎾ 상당의 에너지는 열량 기준으로 중유 4백만t에 해당한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미국이 연간 제공했던 중유 (50만t)의 8배 규모다. 북한의 요구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제공을 약속한 경수로 발전소 2기의 발전량에 해당한다. 미국의 참여없이는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규모의 에너지다. 그러나 미국은 미국을 제외한 한-중-일-러가 에너지를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대신 보상안으로 ▲테러국 제외 ▲경제제재 완화 ▲외교관계 정상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타결이 불투명한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국이 요구한 핵폐기 입장을 '동결과 보상안'의 실시 뒤에나 가능하다고 밝힌 점은 북핵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은 북한이 핵폐기 입장을 먼저 밝혀야 하고, 또 핵동결은 핵폐기의 일시적 과정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 6자회담의 결과가 북한과 미국의 외교적 간격을 좁혔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뒤늦게 제기되는 이유다.
여기에서 정작 궁금증을 낳게 하는 것은 미국의 태도다. 미국이 북한에 제시한 제안 내용은 사실상 한국안을 상당히 존중한 것이다. 다만 핵동결 기간과 관련, 완전한 핵폐기 준비기간으로 '3개월 이내'라는 조건을 달았을 뿐이다. 켈리 차관보는 "미국안은 한국안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면서 "단 핵폐기를 위한 사전 준비기간은(동결기간)은 3개월 정도로 짧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유연한 태도 변화는 북핵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설득과 한반도 주변의 압력이 주효한 것일까. 미국의 제안은 북한의 핵폐기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용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미국 관리들은 전한다. 1, 2차와는 달리 3차 6자회담에서 대표단의 본국 브리핑조차도 중국 현지로 자리를 옮겼다. 이 의미는 종전의 협상전략과 전혀 변화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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