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시민들을 위한 글 하나

 

질서

적지 않은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역대 최고의 깡패 부시가 패배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어떤 교수는 외국의 사회포럼에까지 가서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던 낙선운동을 펼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의 진심이야 이해안가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류의 순진한 저항이 낳는 폐해는 꽤 오랜 세월 진정한 진보를 갉아먹는 사이비로 기능해온 것도 사실이다.

클린턴이 TV쇼에서 색소폰을 불면서 뒤통수 때리는 타입이라면 부시는 텍사스 석유로 찌든 트럭을 몰면서 정면으로 전진해오는 타입이다. 이 덕분에 오히려 진보주의자들은 '음모론' 쯤으로 치부되던 미국의 악랄한 대외정책의 본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역시 부시와 같은 녀석은 없는 게 낫다. 일단 얼굴 자체가 너무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_-;

이번 선거에서는 누가 승리할까? 부시일까 케리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정답은 '둘 중 누구도 아니다' 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선거의 승리자는 자본이 될 것이다. 국경과 국가를 원치 않으면서도 가장 힘이 센 국가의 패권을 중시하는 자본, 바로 다국적 기업이 진정한 승리자가 될 것임에 선거 결과는 어찌 보면 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할지라도 사실은 사실인 것이다.

파병국익론자들의 파병 논리 가운데 하나로 파병철회로 인한 경제제재 내지는 손실을 들고 있다. 이는 자본의 세계화로 말미암아 이미 외국자본에 안방을 내준 남한의 사정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이다. 이미 그들이 안방을 차지했는데 무엇 때문에 자신들의 안방을 포위하겠는가? 주한미군 재배치 발표 이후 무디스가 신속하게 남한의 국가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시티은행의 한미은행 인수에서 또 한번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자본들은 이제 남한의 땅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기에 오히려 섣부른 한반도 위기론은 저들의 수익감소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시기적으로 거칠게 나눠 보자면 군사력으로 유지해오던 한반도 내 미국의 패권이 슬슬 자본에 의한 패권으로 옮겨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이비 개혁세력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미국으로부터의 자주(물론 이러한 입장은 여당 지지자들 중에서도 보다 급진적인 성격을 갖는 집단이지만)를 외치는 이들이 정작 자본의 침탈에 대해서는 순진하다라고 할 정도로 관대하다는 거이다. 작위적이든 또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든 그들이 보여주는 신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근거 없는 맹신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뛰어 넘은 경제적 민주주의에는 무서우리 만치 무관심한 - 또는 역행하는 -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이 잘못된 세계관은 역사적 흐름에 역류하여 또 다시 정치적 민주화와 자주를 침해하기도 한다. 그들은 미국과의 FTA를 위해 스크린쿼터의 폐기를 정당화하고, 반(反)시장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분양원가 공개라는 공약을 철회하고, 금융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하에 시중은행을 외국자본에게 도매금에 넘긴다. 이미 잃을 것은 다 잃으면서도 경제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파병을 하는 거란다.

'전쟁'과 '(자본의) 세계화' 이는 이란성 쌍둥이다. 둘은 때로 의견차를 보이기도 하지만 형제이기에 공동의 이익을 위해 싸운다. 전쟁은 인간세계의 우연한 폭력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빈틈없이 계산된 정치적이자 경제적인 행동이다. 세계화는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척하면서 뒤통수를 갈긴다. 굳이 나눠보자면 석유-군수-건설 자본이 전쟁을 선호하는 반면, 금융-주식-서비스 자본은 세계화를 선호한다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대상국가(먹이)를 빈대떡 앞뒤로 뒤집듯이 골고루 요리해 먹을 것이다.

탄핵반대 시위로 광화문을 뒤집는 그 열기는 파병 철회를 위한 열기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그 열기는 자본침탈에 반대하는 열기로 그대로 전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실세계에서는 그러한 전이를 막는 '저항'이 곳곳에 존재한다. '탄핵은 안되지만 파병은 어쩔 수 없다', '파병은 싫지만 반(反)노무현은 아니다', '전쟁은 싫지만 세계화는 대세다' 등등... 이것이 사이비 개혁 세력의 패악질 이다. 개혁적 정치 사이트의 사장이란 자가 민주노동당의 깃발이 싫어서 집회에 안나간다는 소리를 천연덕스럽게 해대고 있는 것이 사이비 개혁세력의 본질인 것이다.

진보세력의 과제는 그 불순한 저항을 걷어내는 것이다. 그 무식한 저항을 걷어내는 것이다. 한 예로 파병 반대집회에서도 시민과 함께 하니 깃발을 내리랄지, 구호를 순하게 외쳐야 한다랄지 하는 뻘소리만 해대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어정쩡한 개념인 '시민(대체 시민은 무엇일까? 정치적 무오류의 순수결정체?)'이 반세계화로 나아가는 길은 너무나 요원할 것이다. 결국 시민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그 세력 또한 불순하거나 무식한 저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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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5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진보누리]에서 퍼왔습니다.

가을산 2004-07-06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에 대체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 말하는 '불순한 저항을 걷어내는' 방법으로, 어떤 방법이 현명한지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노무현 지지자가 아니고, 더이상 실망할 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지만, 목표가 '파병철회'이니만큼 '파병철회'의 목소리를 가장 커지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노무현의 퇴진을 주장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나 소모적인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집회때마다, 토론회마다, 진보적인 매체마다,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번 사태의 배경이 되는 경제세계화 체제의 폐해, 전쟁과 세계화의 양면성, 현 체제의 지속불가능성 등을 설득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공유되어야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구호와, 깃발을 앞세우는 것은 선명성을 부각시키는 데는 성공하겠지만, 오히려 귀기울여 듣고자 하는 마음들은 닫아버릴 수 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아주 '선명하게' 외치는 사람들 말에 귀를 기울이나요? ^^

마음은 급해도 실을 바늘 허리에 매어 바느질할 수는 없습니다. 일일이 바늘귀에 실을 꿰어야지요.
아.... 또 말만 해서 죄송합니다.

balmas 2004-07-06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이 점과 관련해서는 가을산 님과 약간 이견이 있는데요. 우선 원칙은 좀더 분명하게 설정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파병반대 국민행동]이 하나의 정당이 아니라, 파병철회를 위해 연대한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의 통합기구라면, 가능한 한에서 파병을 철회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파병반대 국민행동]은 실제로 파병을 철회시킬 수 있고, 또 어떻게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지를 거의 보여주지 못한 채, 정치권에서 논의해주면 좋고 안해주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식의 태도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탄핵반대 집회나 파병철회 집회는 성격이 매우 다른 데도 불구하고, 탄핵반대 집회와 거의 동일한 기조로 집회를 진행하는 것이나 여러 단위들이나 개인들이 제기하는 <파병강행, 노무현퇴진>의 구호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파병강행, 노무현퇴진>의 구호는, 파병철회의 굳은 의지와 결속력을 높이고, 실제로 노무현을 퇴진시키느냐 않느냐, 퇴진운동을 전개하느냐 아니냐 여부의 문제를 노무현 정권 자신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파병철회 국민행동]이 마땅히 채택해야 할 구호라고 봅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 구호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이 구호를 <노무현탄핵>의 구호와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노무현탄핵>과 <파병강행, 노무현퇴진>의 구호는 성격이 많이 다르지요. 저는 이 후자의 구호가 하나의 경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구호를 수용하지 않은 채 파병을 철회하겠다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거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병철회의 굳은 의지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힘만 빼고 그들을 분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후자의 구호라면 여러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제가 말한 제 대학 동기인 여선생도 <노무현 퇴진>과 <노무현 탄핵>의 구호의 차이를 이해하더군요.

가을산 2004-07-0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님의 의견 잘 보았습니다. ^^

balmas 2004-07-0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너무 싱겁게 그냥 가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