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학살을 잊었는가

 

우선 7월4일, 미국 독립 228주년을 축하한다. 미국인들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불꽃놀이를 하며 휴가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에 병사를 보낸 부모 등 가족들은 휴가를 즐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 참전군인 중 많은 사람도 정신적 고통을 받으며 지낼 것이다.

몇년 전 미국 동부의 보스턴에 들렀던 적이 있다. 그곳에서 ‘자유의 길’을 따라 걸었다. 미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독립전쟁의 시발점인 역사유적을 둘러보았다. ‘보스턴 학살’의 현장에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이렇게 배웠다. 종주국인 영국이 이주민인 미국인들의 차세 인상 저항에 대해 보스턴 주민을 학살한 것이 독립전쟁의 기폭제가 됐다고. 나는 역사의 현장에 설 때까지 적어도 수십, 수백명이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섯 명이었다. 대영제국에 대항한 독립전쟁의 기폭제가 되고 명분이 된 대학살의 희생자는 정확히 5명이었다. 미국인들의 조상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고 하면서 본국인 영국의 중과세에 저항해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228년 전 7월4일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 선언서는 인류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지금 이라크에선 최소한 수만명의 민간인이 죽고 다쳤다. 수적으로만 보아도 수천배가 넘는다. 1776년 영국과 미국인의 관계 ,그리고 2003년 미국과 이라크의 관계는 어떤가. 우선 23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 대륙의 차이가 있다. 또 서로 다른 인종, 종교, 문화를 갖고 있다는 큰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인들의 독립전쟁은 종주국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무엇인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9·11 테러를 핑계로 이라크가 테러조직을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전쟁을 일으켰다. 230년 전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영국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이라크를 유혈 점령하고 있다. 230년 전 식민지 백성으로 살 수 없다면서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나선 당시의 미국인들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며칠 전 한국의 한 젊은이가 공포에 떨면서 울부짖었다. “당신의 목숨은 소중하다. 그러나 나의 목숨도 소중하다. 나는 살고 싶다”고. 이 젊은이는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처참하게 죽었다. 왜였을까. 물론 한국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은 부시와 미국 정부에 있다.

한국인과 이라크 민중은 어떠한 민족적 감정도 원한도 없다. 부시 미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이라며 시작한 이라크 전쟁에 끌려들어간 결과일 뿐이다. 최근 한국에서 반미운동이 거세지고 있다. 반미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를 가장 많이 만들고 가장 많이 팔아먹는다.

이제 선량한 미국인들이 답할 때다. 이라크 민중에게, 아랍 민중에게, 세계 인류에게 답해야 한다. 이 순간에도 이라크에선 사람들이 죽어간다. 전쟁이냐 평화냐 부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전범으로 기소해라. 그럴 수 없다면 그의 재선 운동이라도 포기시켜라. 그래야 당신들은 대통령을 잘못 뽑은 책임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이덕우/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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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4-07-0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영석의 거짓말, 열린우리당의 체포동의안 가결 등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분노하고, 언론에서도 연일 큰 뉴스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열린우리당의 성향으로 볼 때 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서영석 같은 사람의 성향으로 볼 때 그보다 훨씬 더한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거야말로 어느 정부에서든 일어날 수 있고, 어느 실세든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 때문에 파병철회라는 정말 중요한 쟁점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또는 적어도 이 문제가 현재의 정국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몇 달이 갈지 몇 년이 갈지 모르는 문제이지만, 이 점을 늘 기억해두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