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병론의 허구, 솔직해지자
김선일씨의 비극적인 죽음은 우리에게 큰 슬픔을 안겨줬지만, 이라크 파병 뒤 우리가 겪어야 할 고통스런 현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막연히 생각하던 이라크 파병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엄중한 문제임을 새삼 실감케 된 것이다. 평화재건론, 경제실익론, 국제사회 약속, 이라크 민주화론, 한-미 동맹 강화론 등 각종 파병옹호론이 얼핏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임이 김씨의 죽음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우선 정부가 그토록 내세운 ‘평화재건론’의 허구성이 부각됐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미군과 달리 이라크 주민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는 일방적 선전이 여지없이 깨졌다. 우리가 제아무리 이라크 재건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해도, 그곳에서는 증오의 대상인 미군을 도우러 온 군대로 보는 게 냉엄한 현실이다. 이라크 민주화를 위해서, 또는 앞으로 중동지역에서 경제적 실익이 클 것이라는 말 따위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거짓말이다.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고 테러에 굴복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국민 뜻을 거스르며 졸속으로 파병을 결정한 근본적 잘못을 호도하는 궤변일 뿐이다.
이제 파병옹호론자들은 정직해져야 한다. 그럴듯한 말로 포장할 게 아니라 파병 문제의 본질을 솔직히 드러내야 한다. ‘한-미 동맹’ 운운하며 서로 어려울 때 도와야 한다고 얼버무리지만, 미국 말을 듣지 않을 때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니 눈 딱 감고 파병하자는 것 아닌가. 상대를 이토록 겁박하는 것이 진정한 동맹관계인가. 고민의 핵심은 두가지일 터이다. 안보 위협과 경제 불안심리다. 둘 다 만만치 않은 문제다. 그만큼 우리의 약한 고리를 미국이 쥐고 있다. 심리적 불안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지 못하면 뾰족한 대처 방법이 없다. 의연하고 당당해져야 한다.
안보 걱정은 북한 핵 문제에서 드러나듯이, 조지 부시 정부의 강경파들이 한반도 문제를 난폭하게 다루며 긴장을 높일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6자 회담을 통해 간신히 평화적 해결 쪽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강경파들이 언제 또 위기를 증폭시킬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문제와 맞물려 한-미 동맹의 심각성이 더 커졌다. 경제 불안 심리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이 틀어버리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흔들린다는 걱정이 나온다. 민간 투자가들은 원칙적으로 경제논리에 따라 투자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부시 정부가 신용평가회사들에 입김을 넣어 신용등급을 낮추거나 통상 압력을 가하면 어찌 감당할 것이냐고 불안감을 부추긴다.
아이엠에프와 북한 핵 위기를 겪은 터이기에 이런 우려를 가벼이 넘길 수는 없다. 하지만 심리적 불안감에 젖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미리 알아서 기는 식으로는 올바로 대처할 수 없다. 한국과 미국은 정치·군사·경제·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쪽에 피해를 주면 자신도 버금가는 상처를 입어야 하는 구조다. 미국의 파병 요구가 한-미 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극단적으로 행동할 만큼 무게를 지닌 것이냐는 냉철한 가늠이 있어야 한다. 그에 걸맞은 지렛대를 확보해야 한다. 평소 얼마나 자주적 태도를 보이고 외교력를 발휘하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부시 정부와 미국을 동일시하는 잘못에서 벗어나야 한다.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양심적인 미 국민들이 계속 늘고 있다. 더구나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이다. 북한과 화해·협력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꿈꾸는 동맹국 남한을 무시하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 위기를 부풀려 온 부시의 강경정책에 고통을 당하면서도 이라크 전쟁 뒤치다꺼리를 도맡으며 당장의 어려움을 모면하겠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어리석은 단견이다. 정직하게 말해 민족의 재앙인 한반도 전쟁 위험이 다소나마 누그러진 것은 부시 정권이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혔기 때문 아닌가.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라크 전쟁에 발을 내딛는 잘못을 범해선 안 된다. 용기를 내야 할 때 내지 못하면 굴종과 모멸의 길만 남을 뿐이다.
이원섭 논설위원실장 ws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