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모모 > 이라크 파병반대를 위한 영화인 선언

어제 친구랑 교보 앞을 지나다가, 영화인들의 파병 반대 기자회견을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박찬욱, 임순례 등 얼굴이 비교적 익숙한 사람들이 몇몇 있더군요. 선언문이 생각보다 '과격'해서 흠칫 놀랐는데, 흐, 아무튼 꽤 좋은 글이라서 퍼옵니다.

 

 

이라크 파병반대를 위한 영화인 선언


미국이 이라크침략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내세웠던 대량학살 무기는 애당초 이라크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9.11과 이라크가 아무런 관련도 없음이 밝혀졌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확인 한 것은 더러운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이 얼마나 많은 거짓 정보들을 조작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듣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라크 민간인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최소한의 저항수단 조차 갖지 못한 민간인의 죽음을 우리는 거의 날마다 듣고 있습니다. 포로들에 가해진 미군의 조직적인 고문과 강간을 통해 우리가 본 것은 이 더러운 침략전쟁의 악마성입니다. 온갖 혐오스러운 방법을 동원하여 조직적인 고문과 강간을 자행한 미군에게 이라크인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갖은 역겨운 방법으로 이라크인을 조롱하고 무참히 살해한 미군 역시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했습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자라면, 시작부터 더러운 음모로 점철된 이 침략전쟁이 당장 끝나길 바래야 합니다. 조그만 힘이라도 민간인의 학살을 막는데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일찍부터 파병을 외쳐댔고, 마침내 노무현 정부와 17대 국회는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고 김선일씨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파병의 정당성(?)을 외쳤습니다. 그들은 미친 것입니다. 미쳤다는 것 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어는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라크 파병으로 우리가 얻게 될 경제적 이익을 이야기 합니다. 이라크 유전과 전후 복구사업으로 얻게 될 이득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며 들을 수 있는 가장 역겨운 이야길 것입니다. 이라크의 철없는 어린 아이들마저 무차별 폭격에 죽어가고 있는 마당에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군대를 파병하자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외쳐 댑니다. 철저히 이라크의 석유와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로 침략전쟁을 시작한 미국조차 명분을 만들기 위해 온갖 정보를 조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파병해야 한다는 자들에겐 이러한 거짓 명분조차 거추장스러워 보입니다.

보다 책임 있는(?) 자들은 북핵 문제를 들어 파병 강행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엔 늘 약소국, 주변국으로서의 한숨이 뒤따릅니다. 그러나 북핵 문제 때문에 파병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은 명백히 국민에 대한 공공연한 협박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부시 정권의 북한에 대한 '악의 축' 규정과 북핵 문제에 있어서의 미국의 강경한 태도를 고려할 때,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파병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벼랑에 몰린 미국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르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에 의한 무력사용의 가능성을 배제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라크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한미간의 더러운 거래를 의미하는 것이며, 파병을 안 하면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고조된다는 대국민 협박인 것입니다.


베트남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파병을 하라면 파병을 하고, 돈을 내라면 또 그렇게 했던 그간의 역사에서 보듯 우리가 약소국임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파병을 통해 미국이 자행한 범죄의 공범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파병을 거부하고 국제적인 반전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할 것인지 선택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미국의 범죄행위에 대항한국제적인 반전 운동만이 전 인류에 부끄러움 없이 정당한 결정이며,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파병을 반대하다 파병 찬성으로 돌아선 국회의원들을 주목합니다. 그들은 마치 구국의 결단을 위해 자신의 양심을 배반한 듯한, 그래서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연출합니다. 그들은 마치 국민에게는 공개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절대적인 정보라도 갖고 있는 듯한 뉘앙스로 이야기하고 애매한 행동으로 국민을 기만합니다. 이 더러운 침략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숨겨야 될 비밀은 없습니다. 더 이상 정보를 숨겨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미국이 이라크 침략을 감행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고 자국민을 기만하였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정보가 밝혀지고 면밀히 검토되었다면 이번 전쟁은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우리의 파병목적이 전투가 아니라 복구, 재건에 있음을 애써 강조함으로써 면죄부를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사회 내부에서만 맴도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벌인 침략전쟁에 동참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세계 지형과 하등 무관한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침략전쟁의 근본적인 성격이 폭로되면서 세계는 급격히 반전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미 파병했던 국가들마저 전쟁의 부당성과 자국 군대의 보호를 이유로 철군하고 있습니다. 세계 대다수의 국가들이 미국의 침략 전쟁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을 국제사회 속에서 더욱 고립시키는 것이며,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이는 분명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파병 결정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분명합니다. 이 결정은 국제사회 속에서 궁지에 몰리던 미국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며, 이라크 국민들의 희망을 짓밟는 것입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이는 보다 명확해 집니다. 미국은 애당초 전투부대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당장 전투력에 도움도 되지 않을 복구 재건을 위한 군대를 미국이 지금도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 이라크에 보내려는 것은 복구 재건을 위한 건설업체가 아닙니다. 군복을 입고 총을 든 군대입니다. 우리가 뭐라 주장하든 외부에서 볼 때, 그것은 단지 파병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고 김선일씨의 죽음은 우선적으로 미국과 우리 정부. 국회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고 김선일씨의 죽음은 파병 결정을 막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가는 이라크 국민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더욱 많은 죽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 미친 자들의 망동을 막기 위해 우린 나서야 합니다.
끝으로 파병에 반대하여 거리로 나선 국민과 민주단체와 노동단체 그리고 특별히 직접적인 불편부당을 감수하면서 파병 수송업무 거부를 선언한 항공조종사노조 여러분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냅니다.


2004년 7월 1일
이라크 파병반대를 위한 영화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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