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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고 싶다. -한국사회 성 소수자 인권 현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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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2002년 10월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는 동성애 사이트를 전면 차단하는 소프트웨어 ‘수호천사’를 제작․유포하는 (주)플러스 기술과 동성애를 음란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 보호법 시행령을 ‘인권침해’로 규정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지난 4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끼리끼리>의 진정을 받아들여 청소년보호위원회에 청소년보호법 시행령 상의 동성애 관련 조항은 인권침해 조항임으로 삭제하라는 권고를 하였고,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삭제 결정을 공식 발표하였다.
그러나 청소년보호위원회의 공식발표에 이어 보수 종교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다수의 인권을 유린하는 결정을 취소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국가인권위원회측에 공문을 발송하여 권고 결정을 취소하라는 의견을 제출했다. 보수 종교 언론인 <국민일보>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 결정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동성애란, 두뇌 구조이상 유전인자가 요인’․‘동성애 사이트 접속 허용, 잘못된 환상 심어’ 등의 동성애혐오 기사를 게재하였다.
권고 결정 이후 시작된 보수 종교계의 반발이 거칠어 질 때 즈음인 4월 26일 <동성애자인권연대> 회원이자 활동가인 윤모씨(19세)가 6장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윤씨가 남긴 유서에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하여 청소년 보호법상의 동성애 차별조항이 삭제된다면 바라 것이 없다’, ‘이젠 내가 동성애자라고 떳떳하게 밝힐 수 있어서 행복하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난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한국 최초의 ‘레즈비언 문화제’가 개최되었다. 이화레즈비언 인권운동모임인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주최로 개최된 이번 문화제는 “넌 어쩌다 이성애자가 되었니?”라는 주제로 기획․진행되었다. 이대 활동가들은 이번 문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홍보를 위한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학생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이후 늦은 밤 시간만을 이용해 홍보 작업을 해야했고, 다음 날 아침이면 찢겨지고 떨어져나간 포스터를 발견하고, 그 날 밤이 되어야 다시 보수를 해야하는 어려운 진행을 지속해야 했다.
문화제 기간 중에 <이화에서 레즈비언 문화제를 반대하는 모임>이라는 모임이 결성되어 이번 문화제를 ‘비정상적인 행사’로 평가절하하며 ‘넌 어쩌다 이성애자가 되었니?'라는 질문과 '어쩌다? 이게 정상이야. 우리가 비정상인양 말하지마'라는 대화로 이루어진 대자보를 선전하는 일이 발생했다. 레즈비언 문화제를 기획․추진한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활동가 모씨는 “이화 안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ꡐ평범한 이화인은 당연히 이성애자ꡑ라는 말이 소름 끼칠 지경이다"라고 말한다.
공중 매체를 통해 커밍아웃한 남성 동성애자를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성전환수술을 한 트랜스 젠더가 유명세가 떨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이 판치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동성애자의 인권이 향상되고 있는 증거들이 아니냐”며 당연하다는 듯 묻고는 한다. 그러나 가부장제와 이성애 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골방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말 할 수 없이 끔찍한 피해들을 경험하는 현실에 살고 있다.
1994년부터 시작된 한국 사회의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어디에까지 와 있으며 동성애자 인권은 어느 수준에까지 올라와 있을까.
2. 한국사회 성 소수자 인권 현실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구체화된 시기는 1993년이었다. 1993년 11월 <초동회>라는 이름의 인권운동 모임이 조직된 이후 1994년 1월 <한국남성동성애자인권운동모임 친구사이> 1994년 11월 <한국여성동성애자모임 끼리끼리> 단체가 결성되었고, 1995년 이후부터 4대 PC 통신에 동성애자 모임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학에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위한 모임이 결성되기 시작했고,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 이후에는 사이버상의 동성애자 친목 사이트들이 봇물 터지듯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편견과 그릇된 고정관념 때문에 항상 심각한 재정 적자와 열악한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동성애를 혐오하고 비하하는 매스컴의 오보에 적극 대항하고, 매스컴을 이용한 대 사회적 커밍아웃 등의 과감한 활동을 통해 동성애자의 존재를 가시화 시키고, 상담소 개소․이반 업소 개업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동성애자를 위한 지지체계들을 마련하는 등의 사업을 추진하여 왔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교과서에 실린 동성애 혐오 내용을 삭제하게 하고,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관련 법령을 첨가시키고, 청소년보호법상의 동성애자 차별 조항을 삭제하게 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하였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의 동성애와 동성애자에 대한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보수 기독교 단체들의 행태로 인하여 열 아홉 살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발생하고, 보수 기독교 학생 집단으로 간주되는 이들로부터의 노골적인 동성애자 혐오 작태가 남발하고 있는 것이다.
9년째 성 소수자 관련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 상담실에는 연간 300건에 이르는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내담은 자신이 동성애자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문제, 기혼 여성․남성이 겪고 있는 성정체성 문제, 자신의 성정체성이 드러나 겪게되는 집단 따돌림과 구타 그리고 아웃팅 협박을 당하며 금품갈취와 폭력 그리고 성폭력의 피해를 입게되는 내용 등 다양한 사례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끼리끼리>는 접수된 상담 사례 중 아웃팅 협박을 전제로 가해지는 동성애자 관련 범죄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사례 1. 이성애자로 정체화한 40대 모씨는 레즈비언 업소에 출입하며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에게 접근, 상대방의 개인 신상을 알아낸 다음 아웃팅 협박을 하며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사례 2. 대학에 다니는 레즈비언 모씨는 같은 학과 남자 선배로부터 아웃팅 협박을 당하며 1년을 끌려 다니며 강간 피해를 겪고 있으나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위의 두 사례는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다. 하나의 ‘차이’일 뿐인 성 정체성의 문제가 드러날 경우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강제 결혼 당하고, 100% 해고를 당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 살아가는 성소수자들 에게는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상황일 뿐만 아니라 이미 그와 같은 범죄는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금품갈취와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신고조차 할 수 없는, 구제 법률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은 사회적 현실 속의 성 소수자 피해자들은 ‘성 정체성을 드러내느니 당하고 만다’는 생각으로 피해를 묻어버리고,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자신을 놓아 버린다.
3. 나오며
최근 동성애자 커뮤니티내의 인권운동단체 결성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1994년에 조직된 <친구사이>와 <끼리끼리> 이후에 <동성애자인권연대>, <부산여성성적소수자인권센터>, <한국성적소수자인권문화센터> 등 인권운동단체들이 조직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위해 조직된 인권운동 단체들은 ‘다르지만 같은 지형’ 위에서 ‘동성애자 인권’을 인권 의제화하기 위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 성 소수자들의 인권 현실을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인권 운동 단체들은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해외 단체들과의 연대, 국내 동성애자 단체의 연대를 통한 사회․문화․제도 차원에서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윤씨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다. ‘차이’를 긍정하지 않는 편견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동성애자에 대한 집단적 가해에 다름 아니다. 윤씨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버겁고 끔찍한 일인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윤씨의 죽음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구타 당하고, 강간 당하고 있을 성 소수자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활발해지고, 드러내는 성 소수자들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구체화되고, 가시화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성 소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하나의 ‘차이’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사회, ‘종교’라는 이름으로 성 소수자를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 사회이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는 살고 싶다.
# 이 글은 문화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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