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 이어지는 글들입니다.

좌파 남성과 좌파 여성주의자
  글쓴이: marishin(신기섭)
  작성일: 2004. 04. 28. Wed 16:36
  조회수: 228
좌파 남성들의 여성주의 비판이 심심치 않게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 논란이 거듭되면서 저는 날로
자신을 잃어갑니다.

김규항님의 글과 델라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보기에 좌파 남성들은 '좌파 여성주의' 또는 '사회주의 여성주의' 또는 '맑시즘
여성주의'에서 앞의 수식 부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좌파는, 사회주의는, 맑시즘은 모두 같다며
여성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보수, 부르주아 비판에 동조하기를 기대합니다.

반면 여성주의자는 '여성주의'라는 데 강조점을 둡니다. 좌파 남성의 반 여성주의에 주목하는
겁니다. 여기에는 좌파 여성주의자들의 '피해의 기억'이 한몫하는 듯도 합니다. 그동안 좌파
남성들은 좌파 여성들에게 수많은 아픔을, 고통을 주는 가해자였는데, 그에 대한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런 좌파 남성과 좌파 여성주의자들의 시선 차이가 논란을 증폭시키고, 그래서 둘의 간격은 날로
확대되는 것같습니다.

저는 이 차이를 극복하는 게 날로 자신없어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여성주의에 대해 침묵하는 게
최선이라고 느낍니다.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존경과 말없는 지지', 이 땅의 진보적, 또는 좌파,
또는 맑시스트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침묵에 앞서 딱 한가지는 질문하고 싶습니다.
남성은 '여성주의자'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여성주의자들이 '때때로 마초성을 드러내는 아직 불완전한 여성주의자'도 보듬어 안아줄 때가,
제가 침묵을 깨는 때가 될 겁니다. 

 

질문이 이상하군요.
  글쓴이: 들레꽃(della)
  작성일: 2004. 04. 28. Wed 17:36
  조회수: 223
신기섭님하고는... 전에도 이런 논쟁을 잠깐 한적이 있지요.
신기섭님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이 아니라 그 질문을 '화두'로 하여 보다 
일반화된 '진보적인 남성'을 상대로 이야기를 조금더 하겠습니다.
(따라서 아래 제가 2인칭으로 쓴 것은 꼭 신기섭님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점은 오해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좌파 남성과 좌파 여성 간의 '(연대의) 미래'를 얘기하기 전에 
토론의 '전제'와 '태도'를 먼저 문제삼고 싶은데 말이죠,

맑시즘 여성주의건, 사회주의 여성주의건... 여성주의 앞의 '수식'에만 
관심을 쏟는 것에 대한 '섭섭함'을 하소연하는게 아니라,
뒤의 말에 '아예' 존재감이 없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 저 남자들, 뒤의 말이 무엇이건 관심없는 거 아냐? '좌파' 여성주의, '좌파' 
인권운동, '좌파' 이주노동자운동, '좌파' 비정규직 운동... 앞의 말이 한식구기만 
하면 좋은 것 아냐? ... 
... 그럼 여성주의 고유의 고민, 이주노동자 고유의 모순, 이 모든 것은 어디서
고민하나? ... 알아서들 하겠지. 아무튼 좌파기만 하면 되지.
... 이게 연댑니까?

즉,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주의'라는데 강조점을 찍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쩐지 문제가 우리가 당신들을 수용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 같은
화법을 쓰시는 걸 종종 보는데, 혹은 이 사태에 대한 해결의 책임이 여성들에게
있는 것 같은 지적을 종종 듣는데 (나를 계몽시켜봐)
문제는 당신들이 우리를 배제한 것으로부터 시작한 거죠. 

... 저도 연대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태도' 문제라 한 건 이런 거죠. 아니,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을 
투명인간 취급하면 안되지 않겠어요? 나는 좌파인 것 같지만, 여성이기도 한데, 
한쪽 정체성은 쳐주지도 않으면서 "좌파란걸 보여봐"라니 처참하지 않겠어요? 
여기서 좌파란게 대체 뭡니까? 

대강말해 말이죠, 사회주의와 민중주의에 대한 지향 아닙니까? 그런데
'여성'이란 말은 말이죠, (제 입장에선 말이죠,) '민중'이란 말만큼 얼마나
피눈물이 느껴지는지 몰라요. '여성해방'을 외치며 분신한 열사는 없어도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도 맞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정말로 
비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거죠. 그냥 인간적으로 불쌍한 것이 아니라
자본과 가부장주의 양쪽에서 착취당하고 있는 민중속의 민중이란 말이죠.
(그리고 역사의 동력이기도 하죠.)
게다가 그게 바로 '먼' 민중이 아니라 나 자신이면서 내 친구이면서 내 어머니면서 
내 할머니란 말이죠. 
그러니 제 입장에선 민중과 여성은 동격인데 말이죠, 당신들의 태도는, 한쪽을 
있지도 않은 걸로 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본인들이 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좌파 안의 우리가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 느끼지도 못하면서) 충고까지 하고 나선걸 보니, '좌파'라는 
명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이죠. 대단한 프라이드 아니겠어요? ... 아니 사실은
오만과 무모함의 극치죠. 현단계 좌파의 참 한심한 수준을 보이는건 아닌가 싶어서, 
착잡하단 말이죠. 

역사속에서 '진보'와 '인종' 혹은 '진보'와 '장애'를 함께 고민했던 이들은 어떤 
고민을 했었을까요? 단지 '진보운동' 안에 '껴주는 것'? 좌파 '일반'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상태에서, 그저 부문운동으로 세 불리는 것? 머릿수 늘리는것?
... 그게 좌파의 연댑니까? 
사람의 정체성이란 말이죠, 그렇게 간단히 무자르듯이 되는게 아니라서 말이죠, 
저는 정체성에 대한 완벽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 수평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당연히 '기존' 전제와 태도 가운데 도전받을 것들도 있겠죠.
그럴 준비는 되어 있습니까?

앞에 꾸미는 말이 무엇이건간에 말이죠, 일단
그 뒤의 본명사가 말이죠, 앞의 수식어 만큼, 아니 때로는 그이상 생명력을 
갖고 펄펄 뛰고 있다는 걸 진심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그걸 왜 없는 것(모순)으로 
치부합니까? 
혹시 그 모순이 당신의 정체성을 공격하기 때문에 불편한거 아닙니까?
(저는 본인들이 의식하지 못해도 상당부분 그런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성폭력 
사건에 있어 '구체적인 사실'을 듣기도 전부터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려는 준비를
잔뜩 취하는 진보적 남자들을 볼때면 말이죠.)

솔직히 말해서 여성주의와 연대하자는 진보적 남성들 가운데 '구체적으로'
여성문제 해결을 고민하는 사람 만나본적 없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연대하자는
거죠?
여성이 어떻게 해야 해방되는지 '일반'적인 고민이 없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보수니
좌파니 재단해서 됩니까? 이게 좌파적 태도입니까?

그렇게 앙상한 '좌파'를 붙잡고 있을때,
뒤의 본명사 - 여성 뿐 아니라 수많은 소수자들을 잃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은 추상적으로 여성-장애인-비정규직-이주노동자... 모두 좌파의 품으로
오라고 말할지 몰라도,
사람들이 바봅니까. 존재감 없이 사는데는 지칩니다.
민중 속의 민중 - 소수자들이 갖고 있는 다기한 모순을 '좌파'라는 추상적 단어 
속에 수렴시키고 굴복시키려고 할때, 더이상 좌파는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건 좌파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성은 '여성주의자'가 될 수 없는 걸까요?"라 물으셨나요?
오히려 묻고 싶네요.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될 수 있나요?
한국인은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나요?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될 수 있나요?
... 될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겠죠

... 되는게 중요한가요? 여기에 집착해서 양심을 편안히 하고 싶습니까?
(역으로 "그래 나 마초야"하는게 양심을 편안히 하는 방법일 수도 있겠군요.)
근데 저는 제가 이땅에서 이주노동자일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비장애인이다가 장애인이 되거나 정규직 노동자이다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는 
있겠군요. 그러나 내가 비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장애인이거나 정규직 노동자인 
동시에 비정규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게 정체성의 정치입니다.

중요한 건, 정체성 언명에서 끝나는게 아닙니다. 이건 시작일 뿐이죠.
그보다, '아닌' 상태라 하더라도 연대가 가능하게 하는게 우리 숙제 아닙니까?
그리고 해답은 우리에게 있는게 아니라 당신들 쪽에 있는 겁니다. 

일단, 수렴주의부터 버리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류의 질문을 진보적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던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 질문은 스스로에게 하세요.
비정규직 노동자더러 "나하고 친하고 싶어, 안친하고 싶어? 힘 빌려 줄까, 
말까? ... 그럼 내가 동하게끔 설득시켜 봐"라고 말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책임을 이전하고 있습니다... 당하는 입장에선 
"억압이나 하지마."라는 말 밖에 나올게 없습니다. 자기 숙제들을 하세요.

                                                    무슨 불을 밝혀둘까 

 

정말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글쓴이: marishin(신기섭)
  작성일: 2004. 04. 29. Thu 10:35
  조회수: 156
다 좋은데요....
제 질문은 남성이 여성이 될 수 없느냐가 아니고 남성이 여성주의자가 될 수 없느냐는 겁니다.

비유를 하자면 
한국인은 이 땅에서 이주노동자될 수 없느냐가 아니고 이주노동자주의자가 될 수 없느냐,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될 수 없느냐가 아니고 장애인주의자가 될 수 없느냐,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될 수 없느냐가 아니고 비정규직주의자가 될 수 없느냐,
이런 질문입니다.

침묵하기로 한 마당에 델라님의 제 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전혀 토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델라님마저 저의 마지막 질문을 오해하신다면, 아마 여성 문제에 대해 저는 영원히 침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아이의 맑은 눈빛처럼 

 

여성과 여성주의
  글쓴이: 들레꽃(della)
  작성일: 2004. 04. 29. Thu 13:42
  조회수: 210
저도 여성과 여성주의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신기섭님의 질문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서 연상되는 조금 다른 문제에
의도적으로 집중한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해 따로 대답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이상하네요.
왜 저의 '설명'이 어떠느냐가 당신이 침묵하느냐 마느냐 여부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거죠? 
저는 답변 안하겠습니다. 침묵하시던지 마시던지 맘대로 하세요. 
연대하시던지 마시던지 맘대로 하시구요,
-- 무엇보다 그런 질문을 하시는 태도가 연대스런 태도인지 의구심이 드네요.

연대 여부가 저의 태도에 달려있는 거였군요. 
제가 싹수있는 남성 여성주의자 하나를 이렇게 적대시하다니, 큰일이군요.
...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슨 불을 밝혀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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