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제이북스 출판사에서 출간될 에티엔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에 관한 논문집에 수록될 글입니다. 아직 교정이 완료되지 않은 번역이기 때문에, 역시 무단으로 인용하는 것은 금지합니다. 인용을 원하는 분은 역자에게 사전에 허락을 얻기 바랍니다.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 정치의 타율성. 루소에서 마르크스로, 마르크스에서 스피노자로[주 1: (역주) 이 글의 출전은 다음과 같다. E. Balibar, “Le politique, la politique. De Rousseau à Marx, de Marx à Spinoza”, Studia Spinozana 9, 1995. 원래 제목대로 하면 [정치적인 것, 정치. 루소에서 마르크스로, 마르크스에서 스피노자로]가 되겠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고려해서 제목을 약간 바꿨다. 첫째,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기획―곧 근대성의 기획 자체―은 루소가 가장 명시적으로 제시했지만, 이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곧 정치의 타율성의 발견에 따라 근본적인 변모를 맞게 된다.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의 의미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자율성의 기획과 마르크스의 정치(la politique)의 타율성의 문제설정 사이의 차이, 후자에 의한 전자의 지양을 함축한다. 둘째, 하지만 마르크스는 정치의 타율성의 조건을 경제의 영역에서만 발견했으며, 이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정치의 불가능성, 따라서 역사적 마르크스주의 종언의 한 가지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스피노자는 마르크스와는 달리, 그리고 이미 루소 이전에,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한계, 따라서 정치의 타율성의 또다른 조건을 이데올로기의 영역―스피노자의 용어법대로 하면 상상과 정서의 영역―에서 발견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이 양자의 결합 (불)가능성의 조건들에 대한 해명은 주류―곧 자유주의적―근대성 논쟁에서 억압되어온 핵심 쟁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은 주 4) 참조. ]
1. 1925년 맨체스터에서 본(C. E. Vaughan)의 루소 연구 및 루소 저작의 주석본들에 대한 보충으로 그의 유작 연구논문집이 출간되었다. 『루소 전후의 정치철학사 연구』(Studies in the history of political philosophy before and after Rousseau)라는 제목을 지닌 이 책은 이후 정치철학 교육의 고전이 된다. 여러 세대가 이 책에서 제네바 철학자의 이름이 붙은 “부재하는 중심” 주위로[이 저서에는 루소에 관한 논문이 빠져 있음을 의미한다―역자] 스피노자와 로크, 비코, 버크, 피히테, 마치니와 다른 사람들의 학설이 배치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와 『공산당 선언』(1947년 작성), 『자본』(1867년 1권 출간) 또는 『반(反)뒤링』(1878년)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 세대와 『인간 불평등의 기원 및 기초에 관한 논고』(1754년)나 『사회계약』(1762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적 거리와 동일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앞서 루소에 대한 관계에서처럼 “마르크스 이전”과 “마르크스 이후” 사이의 대조가 스피노자를 포함하는 정치적 전통에 대한 우리의 독해―우리는 여기서 현재의 실마리들을 찾아보려고 한다―의 부재하는 중심을 구성하지 않는지 질문해볼 수 있을 것이다.
“루소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그것들이 산출한 모순적인―혁명적이면서 반혁명적인―정치적 효과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각자의 세기에 서로 비교될 만한 중요한 후계자들을 지녀 왔다[주 2: 나는 각자의 세기들이라는 표현을 사후(après-coup)에 도래하는 것들로 이해한다. 곧 19세기가 “루소의 세기”였듯이 20세기는 “마르크스의 세기”가 될 것이다. 이는 19세기에 루소에 대한 관심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앞으로 수십년 동안 마르크스의 망각이라는 생각이 개연성이 없다는 것을 우리가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둘 사이의 유비는 훨씬 더 엄밀한 토대들을 갖고 있다. 『사회계약』 첫부분(1부 5장)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에서 루소는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 것, 따라서 그 내적 통일성의 원리에 관해 질문했다[주 3:(역주) “그로티우스는 말하기를 인민은 국왕에게 자신을 바칠(se donner)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로티우스에 따르면 인민은 자신을 바치기 전에 이미 인민인 셈이다. 이 헌신(don)은 그 자체가 시민적인 행위이므로 공적인 토론을 전제한다. 따라서 인민이 왕을 선출하는 행위를 검토하기에 앞서 우선 인민을 인민으로 만드는 행위를 검토하는 게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행위는 필연적으로 전자의 행위에 앞서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의 진정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Du contrat social, in Oeuvres complètes III, Gallimard, 1964, 359면; 『사회계약론』 이환 옮김(서울대학교 출판부, 1999), 17면(번역은 수정). 이에 관한 발리바르의 논의는 E. Balibar, “Ce qui fait qu'un peuple est un peuple―Rousseau et Kant”, Revue de Synthèse, 1989 [La crainte des masses: Politique et philosophie avant et après Marx, Galilée, 1997에 재수록] 참조.]. 이는 하나의 통치(정부, gouvernement)의 구성에 대한 모든 반성에 전제되는 질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들 나름대로 계급투쟁과 대중운동 및 사회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인 “세계관”의 역할에 대해 반성하면서, 국가 속에서 제도화된 하나의 인민의 내적 통일성이라는 문제로부터 인민 자체의 혁명적 통일성이라는 문제로 질문을 전위시킨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인민중의 인민”이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노동자 계급 안에서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름 아래 이를 찾아내려고 한다. 이로써 그들은 근대 민주주의 정치사상만이 아니라―루소의 저작이 특히 분명하게 보여주는―이 사상을 특징짓는 “봉기”와 “구성” 사이의 내적 긴장 역시 발본화한 것으로 보인다(Balibar 1989/1991).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단순히 그 사상을 반대로 취했을 뿐이다.
마르크스 정치이론의 독창성 및 이것이 표상했던 절단(coupure)의 정확한 본성, 그리고 그 이후에 도래하는 이론에 이것이 부과하는 제약들(따라서 우리 모두는 돌이킬 수 없게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을 평가해 보려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루소주의의 선례를 알고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본질적인 점에서 루소는 “구성”[헌정]에 대한 이전의 모든 이론과 단절했다. 이제부터 입법은, 인민주권의 표현이기 때문에 내재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정치를 규칙들의 집합으로 또는 통치와 통치자들(이들이 집단적이라 하더라도)의 “기술”(art)로 계속 사고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이 판명된다. 이 사실 때문에 그의 선행자들에 대한 독해와 활용은 완전히 의미가 변화된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이 점에서 양자는 사실상 분리될 수 없다)는 역사의 원동력과 의미를 의지나 이성의 목적이라는 관점에서 표상하는 이론들과 단절한다. 정치를 순수하게 “이데올로기적인”[관념론적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는 이러한 단절을 완화시키기는커녕, 그 효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2.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일반적 관념을 주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루소에서 마르크스로 나아갈 때 한 가지 전도가 이루어진다. 만약 마르크스가 완전히 의식적으로(특히 그가 사적 소유를 소외의 근원으로 들고 있는 루소의 이론을 자주 암시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 루소의 민주주의적 참여를 발본화했다면, 이는 정치라는 통념의 의미 자체를 전도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루소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관점의 탁월한 대표자다[주 4: (역주) 발리바르가 이 글에서 사용하는 “정치”(la politique)와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의 구분은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클로드 르포르(Claude Lefort)의 구분을 차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비판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정치”, 곧 경제, 문화, 종교, 사회 등과 구분되는 제도적 영역으로서의 정치는 불어로는 “라 폴리티크”(la politique)에 해당한다. 그런데, 클로드 르포르는 이처럼 경험적인 제도적 구분을 전제하는 “라 폴리티크”라는 용어는 정치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주지 못한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정치의 핵심적인 의미는 사회의 한 제도적 영역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인간들이 세계 및 자신들 사이에서 맺고 있는 관계를 산출함으로써 사회를 성립 가능하게 해주는 산출적 원리를 가리킨다. 곧 르포르에 따르면 넓은 의미의 사회가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 경제, 종교, 문화 등과 같이 사회의 한 제도로서 정치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회 자체의 제도화를 실현하는 게 곧 정치다. 일반적인 의미의 정치와 구분하기 위해 르포르는 이런 의미의 정치를 “정치적인 것”, 곧 “르 폴리티크”(le politique, 영어로 하면 the political)라고 부른다(『정치적인 것에 대한 시론. 19-20세기』(Essai sur le politique: XIXe-XXe siècles), Seuil, 1986에 수록된 여러 논문 참조). 그리고 르포르는 이런 의미의 “정치적인 것”의 차원(또는 사회의 상징적 차원)을 처음으로 발견한 공적을 마키아벨리에게 돌린다(Claude Lefort, 『저작의 노동. 마키아벨리』(Le travail de l'oeuvre. Machiavel), Gallimard, 1972 참조). 반면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는 상부구조인 정치의 본질을 하부구조인 경제에서 찾음으로써, 오히려 정치적인 것의 고유한 상징적 차원을 해명하지 못하고, 당관료제와 경제결정론의 이중적 굴레에 빠지게 된다. 르포르의 이런 구분법은 라클라우와 무페를 비롯한 영미권의 좌파 정치이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발리바르는 여기서 르포르를 따라 “정치”와 “정치적인 것”을 구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양자를 각각 “타율성”과 “자율성”을 지시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발리바르가 말하는 “정치의 타율성”이란, 르포르식의 “정치적인 것”을 포함하는 모든 정치의 차원은 자기자신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원적 타자, 또는 이질적 차원에 의해 규정되어 있음(바로 이 때문에 정치는 타율적이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의 차원을 규정하는 이 타자(마르크스주의에서는 “경제”)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 초월적 지위, 곧 최종 심급의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이 타자는 한 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이 논문에서 발리바르가 보여주려는 것은 루소의 업적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발견해낸 데 있는 반면, 마르크스는 경제의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근원적인 장소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정치(노동의 정치)의 가능성의 장소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정치는 “인민 중의 인민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곧 역사의 주체의 선험적(또는 적어도 실제적)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곧 본질주의와 목적론의 굴레에 빠져들게 된다. 이에 비해 스피노자는 대중들(multitudo)이라는 개념을 정치의 중심 문제로 부각시킴으로써, 마르크스식의 정치의 타율성 이론이 지닌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곧 마르크스와는 달리 스피노자는 이데올로기의 영역에서 정치의 타율성의 또다른 차원을 발견하며, 이는 마르크스 이론이 지닌 본질주의와 목적론의 한계를 정정할 수 있는 중요한 이론적 원천을 제공해 준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발견한 경제의 차원을 경험적인 사회영역으로 환원시키는 르포르와는 달리, 발리바르는 경제가 함축하는 “정치의 타율성”의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를 또하나의 정치의 타자, 곧 스피노자의 이데올로기론과 연결시키려고 하고 있다(이 양자의 관계는 대립이나 모순이 아닐 뿐만 아니라, 종합이나 접합, 보완 또는 병치나 나열의 관계가 아니다). 발리바르의 이러한 이론적 문제설정은 다시 [정치의 세 가지 개념: 해방, 변혁, 시빌리테](Trois concepts de la politique: Emancipation, transformation, civilité)(in La Crainte des masses, 앞의 책)에서는 “시빌리테”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좀더 복합적인 시도로 전개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정치의 타율성”의 구분은 르포르의 작업에 대한 비판적인 전유의 시도로 읽는 게 타당할 것이다.]. “주권”과 “통치”를 분리시키고 “통치자들”과 “피통치자들”을 최초로 전위시키면서 이러한 관점이 고전주의 시기 이후까지 살아남게 해준 것은 바로 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치는 조건들을 가질 수 있으며, “정념들”과 “이해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사회적 소재와 관계할 수 있지만, 그것은 최종 분석에서는 인민과 인민을 구성하는 개인들의 활동 또는 “구성적” 권력으로서의 자기자신 위에 합리적으로 기초한다[주 5: 근대정치에서 구성적 권력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서 네그리와 일치할수록, 우리는 그가 루소를, 루소가 중심적으로 대표하는 전통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시키는 데 더욱 더 놀라게 된다!(Negri 1982; 1992 참조).]. 따라서 우리는 일종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곧 정치는 자신이 그 조건들을 창출해 내는 개념들과 결단들의 자율성을 전제하는 것이다[주 6: 알튀세르가 자신의 1966년 논문에서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읽기에 『사회계약』은 정치적 자율성의 조건들―이는 또한 정치의 자율성의 조건이기도 하다―을 재창출하려는 아포리아적인(그리고 절망적인) 시도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선례를 시민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고대의 공화적 전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피노자가 『신학정치론』 및 특히 『정치론』에서 민주주의를, 각각의 개인이 “역량만큼의 권리”(tantum jus quantum potentia)를 누리는 “가장 자연적인” 국가, 완전하게 절대적인(omnino absolutam) 국가로 정의할 때, 그에게서도 이 전통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 및 미국혁명과 더불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은 또다른 자율성, 곧 집단적 주체로 생성하고 영속적인 “봉기”의 행위 속에서 인민주권을 강제하는 “인민” 그 자체의 자율성을 표현하는 경우에만 현실적인 것이 된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 전통에 속해 있는 마르크스는 정확히 말하면 그 이론적 표현을 완전히 전도시켰다. 곧 그는 정치의 타율성이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에게 정치의 “진리”와 “현실성”은 그것의 고유한 영역 속에, 그것의 고유한 자기의식이나 활동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바깥에, 그 “외적” 조건들과 대상들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의 외재성은 정치를 내생적으로 구성한다.
바로 여기에 마르크스 유물론의 근본 측면이 존재한다(반면 구성적 봉기의 영속적 흔적으로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에 대한 루소주의적 관점은 근원적으로는 관념론의 쇄신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물론을 환원주의나 속류 경제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알다시피 마르크스는 개인들 및 사회적 집단들의 활동이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과정을, 그것의 타자, 곧 넓은 의미에서 경제의 모순들의 발전과 변증법적으로 동일시했다. 그렇다면 정치적 실천의 존재를 무화시키거나 부정하는 게 문제인가? 반대로 좀더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재구성하는 게 문제다. 이 경우 그것은 “계급정치”가 된다. 곧 그것은 양쪽 모두에서(혁명적 계급과 마찬가지로 지배계급의 관점에서도) 인지된 정치적인 것(du)의 제도적 한계들을 영속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사회적 실천으로 사고된다. 만약 착취와 지배, 따라서 사회적 생산관계 속에 함축된 적대의 결과들이 사회적 삶의 측면들 전체로 확장된다는 게 사실이라면, 정치를 달리 사고할 수는 없다. 우리가 마르크스로부터 물려받은 명시적인 역설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곧 인민의 자율성―인민의 자기규정 및 해방―을 정치의 중심에 실제로 기입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인 민주화주의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을 유지하기를 포기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인민 중의 인민을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으로 정의한다. 그는 이러한 동일화를 중심으로 정치의 타율성 이론을 구축한다. 분명히 이것은 정치와 그 타자, 곧 경제에 대한 도발적인 유물론적 동일화 위에 정초된, 근대철학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완성된 이론이다[주 7: 따라서 마르크스에서 정치주의에 대한 “경제적” 비판과 경제주의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결코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 내가 다른 곳에서 마르크스주의와 그의 계급투쟁 이론에 특징적인 단락(短絡)으로 기술하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Balibar 1985/1994).].
마르크스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정치의 타율성에 대한 이러한 발본적인 정식화가 시대의 변화를 규정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자유주의적 전통에 속하는 논쟁을 비롯한) 모든 정치적 논쟁은 전위되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그것을 지탱하는 사회적 변화들에 의해 오늘 의문스럽게 된 것이 바로 정치와 경제의 이러한 단락(이것의 맞짝은 국가의 기능과정 자체 속에서 “노동의 정치”의 중심적 중요성이었다)이라는 점 역시 그에 못지 않게 분명하다. 이러한 조건들 속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의 이론으로서 “정치철학”이라는 관념이 전면에 재등장하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문제는 루소로의 회귀나, 이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로크 또는 칸트로의 회귀로 제기된다. 이 때 스피노자로 회귀하는 경우는 훨씬 드문데, 그를 이러한 관점[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으로 이끌어오기란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감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적으로 결정적인 질문이며, 현재의 작업들 중 한 부분 전체를 관통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분명한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 있다.
3. 스피노자의 사상과의 대면이 결정적이라고 판명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지점이다. 스피노자를 그의 텍스트와 콘텍스트 속에서 읽고, “스피노자주의적인” 개념들과 지향들을 근대정치에 대한 반성에 작동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정치의 이율배반들 속에서 작용중인 것과 함께, 그것들[이율배반들]을 봉기와 구성적 권력, 국가적 제도화라는 고전적 딜레마들에 결부시키는 것을 동시에 이해하게 해주는 수단이 되지 않겠는가? 이미 스피노자는 17세기에 “정치적 주체”를 민족이나 인민이 아니라 좀더 원초적인 실재인 대중 또는 “대중들”(multitudo)과 동일시하면서, 성숙기의 세 권의 위대한 저작(『윤리학』, 『신학정치론』, 미완성된 『정치론』)에서 정치와 존재론의 교차지점에서 자율성과 타율성의 딜레마가 제기하는 모든 질문들을 자신의 방식에 따라 조우했었다.
우리에게 스피노자의 철학이 지니고 있는 특유의 중요성은, 내가 다른 곳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그가 (시민들의 자연권을 다수자의 역량(potentia multitudinis)으로 정의하면서) 대중들[주 8: 나는 multitudo라는 용어에 대한 가장 좋은 불어 번역은 복수로 사용된 “masses”[대중들]이라고 생각한다(Balibar, 1985).]에게 국가 속에서의 구성적 기능을 부여한다는 사실로부터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가 역사 속에서 “대중운동들”의 현상의 양면성을 탐구하는 방식에서도 비롯한다. 근저에서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대중운동들이 국가들(imperia)의 보존에 필수적인 “민주적” 합의의 필수적인 기초를 구성하면서 또한 동시에 (『정치론』 7장 25절에서 말하는 “대중으로의 복귀”를 통해) 그들의 실존을 가장 강력하게 짓누르는 파괴의 위협을 이루기도 한다는 것이야말로―고전주의 시기의 위기들과 혁명들의 정세가 강제하는―결정적인 정치적 문제이며, 이는 대중들의 “존재론”(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병인론(étiologie)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게 만든다. 대중운동은 법과 정치적 권위를 활용해서 몰아낼 수 있는 “자연상태”의 환영들로 사고되어서는 안되며, 역사 속에 존재하는 정치의 현실태 자체로 사고되어야 한다[주 9: 사람들은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3세기에 걸친 “형이상학적” 독해들을 극복하고 스피노자가 위대한 (반종말론적) 역사이론가라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특히 Tosel 1994, Albiac 1994, Moreau 1994를 참조하라.]. 이는 상상의 요소 안에서 구성되고 진화하는 현실태다. 하지만 스피노자는 고전주의 시기의 다른 이론가들과 비교가 안될 만큼 정치의 이러한 상상적 토대에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그 역시도 심원한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들은]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Terrere nisi paveant)라는 타키투스의 표현(Annales I, 29)은 『정치론』 7장 27절에서 사용되고 『윤리학』에서도 약간 상이한 형태 아래 다시 사용되고(4부 정리 54의 주석(“우중들은 위협받지 않으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Terret vulgus, nisi metuat)) 있으며, 스피노자에게는 항상 설명적이면서 규범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법적 정의―그는 우리가 여기에서 “가장 본성적”이고 “가장 절대적인” 국가를 보도록 인도한다―를 아포리아적이게 만드는 원인들 중 하나가 여기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스피노자에서 민주주의의 아포리아(이는 주권적 대중들이 자신들의 정념들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는, 또는 자기자신에 대해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메커니즘을 단번에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존재한다)는 우리가 그의 논거들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때로는 보수적이고 때로는 혁명적인 결과들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의 철학의 가치 전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스피노자에게서 인간본성에 대한 독창적인 “관-개체적” 관점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유물론적 자유 개념을 읽어내지 못할 것이며, 정서적 동일화와 합리적 교통(개인들의 상호 유용성에 기초해 있는) 사이의 상호전제 관계들에 대한 해명에 기초하고 있는 역사 속에서 “공동체”의 변증법―이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에 대한 현재의 토론 대부분이 그에 종속되어 있는,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대립을 단숨에 뛰어넘는 것이다―도 읽어낼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스피노자는 집단적 자유와 개인의 자유들이나 권리들(특히 사고와 표현의 자유)의 상호보충적 기능들에 대해 매우 민주주의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에게서 전자와 후자는 최종 분석에서는 관개체적 코나투스의 구성적이고 활동적인 역량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는 또한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공할 만한 실천적 난점들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혁명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표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혁명들을 항상 고대적인 관점에 따라 대중적인 폭동들을 동반하는 정체형태의 변화나 통치자들의 개인적 교체로 생각했다. 분명 여기에는 민주주의 정치의 또다른 측면, 곧 하나의 국가“장치”나 국가장치 전체 속에 조직되어 있는 지배(또는 소외)와 차별(또는 불평등)에 저항하는 모든 봉기가 함축하는 부정성의 측면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그의 무능력(그리고 우리가 그를 뒤따를 때, 우리의 무능력)이 존재한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근대정치의 보편성이 전제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부정성이다.
4. 나는 다른 곳에서(Balibar 1992) 이러한 이중적 봉기를 지시하기 위해 하나의 특이한 표현, 곧 평등한 자유égaliberté라는 명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근대혁명의 텍스트들(특히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평등과 자유가, 하나의 부정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이중 부정이라는 논리적 형식 속에서 원리상 불가분하며, 심지어 동일하다고 정립한다. 곧 평등 없이 자유 없으며, 자유 없이 평등 없다. 그것들은 이러한 동일성 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zôon politikon) 및 로마의 시민과 같이 국지적이며 배제적인 시민성만이 아니라, 또한 스토아적인 세계시민(cosmopolis)과 같은 도덕적 시민성 및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의 백성(civitas dei)과 같은 초월적 시민성과 대조적으로) “무한한” 실천적 시민성이라 불릴 수 있는 새로운 시민성의 정의를 정초한다.
하지만 평등한 자유 명제는 안정적인 공리, 자기규제적인 법적 질서의 근본규범(Grundnorm)을 구성하지는 못한다. 일단 언표되면(역사 속에서 물질적으로 각인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면)[주 10: 가장 명시적이고 가장 결정적인 반복들 중 하나는 정확히 말하면 1864년 제1 인터내셔널의 창립연설이다. “노동자들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의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평등한 자유 명제로부터 비롯하는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의 정확한 표현을 재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그 이후 무시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모순들이나 갈등 없이 제도들 속에 실현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들은 근대 정치의 제도들 속에 존재하는 평등과 자유의 두 가지 거대한 매개들, 곧 소유와 공동체(ownership and membership)에 불가분하게 관련되어 왔다. 왜냐하면 이것들 각자는 공개적인 갈등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곧 계급 공동체에 대립하는 민족 공동체(전자의 이상적 형태는 마르크스가 보기에 유일하게 현실적인 국제주의였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인데,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러한 반정립에 대한 고전적 정식을 제시했다)와, 자본주의적 (또는 독점적) 소유에 대립하는 개인적 노동 위에 기초한 소유(이들 각자는 상대편을 “수탈”이라고 부른다)가 바로 그러한 갈등들이다. 계급투쟁의 담론(그것이 부르주아적이든 프롤레타리아적이든)은 지난 2세기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두 개의 반정립을 교차시켜 왔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특히 흥미있는 것은 공동체가 사고되어 왔던 대립형태들 사이의 대결 및 따라서 근대 시기의 집합적 주체 내지는 역사의 주체의 모습이다[주 11: “역사의 주체”라는 표현은 19세기의 위대한 역사철학들이 활동 내지는 실천이라는 주제와, 집단적 의식 내지는 정신이라는 주제를 결합하고 있는 한에서―그것이 칸트의 인류이든, 피히테의 민족 또는 헤겔의 인민이나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이든 간에―그것들 사이의 전체적인 비교를 직접 요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 저자들 중 누구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 이 표현을 발명하고 고전들에 대한 해석을 포함한 모든 현대철학들에 이 표현을 강제한 사람은 『역사와 계급의식』(1923)의 루카치다.]. 루소를 우회한 다음 다시 피히테를 우회해 보면 문제가 좀더 명료해질 것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빈발하는 너무 성급한 독해들이 주장하는 것(이는 특히 프랑스에서 그런데,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기에는 견고한 민족주의적 편견들이 계속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과는 달리, 1808년의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서의 피히테는 문화주의나 역사주의, 게다가 인종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독일민족의 선택”이라는 그의 표현은 종교개혁과 자코뱅주의의 이중적 유산을 결합하는 것으로 심원하게 보편주의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능동성과 주체성이라는 변증법적 개념들 위에 기초하고 있는 집단적 동일성들의 형성 및 이상화에서 도덕적 보편주의(또는 상징적 보편주의. 이에 대해서는 Milner 1983을 참조)의 범주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 “개인주의”와 “전체주의”, 또는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와 같은 추상적인 양자택일들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는 사람 모두에게 특권적인 반성의 요소를 제공해 준다. 하지만 피히테의 민족에 대해 타당한 것은 거의 동일한 용어들 속에서, “사물들의 실존상태의 해소”를 통해 현재의 영역 자체에서 미래를 창출해 내는 힘으로서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이것은 그 해소의 의식적 표현에 불과하다―에게도 타당하다.
5. 다시 우리는 여기서 스피노자를 향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의 철학은 정치, 따라서 철학에서 보편주의의 양면적 기능들을 분명하게 해명해 준다. (니체와의 몇몇 성급한 비교들이 제시하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분명히 반보편주의자로 간주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인간주의와 계몽주의에서 유래하는 고전적 형태의 보편주의의 옹호자도 아니다. 관개체성에 대한, 또는 개체들(여기에는 인간 개인도 포함된다) 사이의 현실적 관계들 전체의 무한한 연관망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그의 사상이 궁극적으로 준거하고 있는 개념은 보편성 개념이 아니라 독특성 개념이다. 일체의 목적론과 달리 그에게 보편자는 하나의 본질이 아니라 독특한 본질들 사이의 갈등이나 구성적인 마주침들(합치들, convenientiae)에 대한 이성적이거나 정념적인, 얼마간 부적합한 표상으로 나타난다.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보편성에 대한 “형식적”이거나 “실질적”인, 그리고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관점들 사이에서 발생하기 쉬운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준다. 정치에 대한 보편적 권리라는 혁명적 관념(『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인터내셔널 창립연설』)과 민족공동체에 대한 그 역시 보편주의적인 표상(『독일 민족에게 고함』) 사이의 모순이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프롤레타리아라는 마르크스의 범주의 영역 내부에서 전개되는 모순도 그러한데, 이는 보편성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과 명백하게 관련된다.
스피노자 철학의 이러한 비판적 기능은 경제와 정치, 정보의 “세계화”(Globalization)라고 불리는 것 때문에 보편성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고 있는 오늘날 분명히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화는 계급이나 민족의 (또는 종족적이고 종교적인 공동체의) 투쟁들의 조화나 화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불행하게도―그러한 투쟁들로부터 비롯된 적대들의 세계 전체로의 확장이라는 의미의 세계화이다. 그것은 혁명 개념에 대한 우리의 용법에 관련하여 결정적인 것이다. 기성권력의 “전도”라는 은유는 알다시피 혁명 개념의 고대적인 용법 이래로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근대적인 의미는 무엇보다도 억압에서 저항으로, 감수된 불의에서 봉기로, 그리고 봉기에서 집단적 해방으로 인도하는 연속적인 과정이라는 의미다. 이는 분명히 목적론적 도식으로, 만약 이것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목표들”의 실현을 통한 “역사의 종말”의 이론, 곧 새로운 종말론으로 인도하지는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본 것처럼 연속적인 단계들을 통해 스스로를 구성하는 역사의 주체에 대한 표상을 함축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교육과정(Lernprozess) 또는 도야과정(Bildungsprozess)은 주체 자신에 의한 주체의 구성이자 해방이다. 이는 근대의 위대한 “관념론”(루소 이후, 칸트에서 피히테와 헤겔, 마르크스 자신에까지 이르는), 곧 우주와 그 완전한 질서에 대한 표상의 관념론인 형상들이나 본질들, 이데아들의 관념론이 아니라, 혁명의 정세와 이상에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관념론인 역사적 관념론의 핵심이다. 피히테의 원민족(Urvolk)은 주체의 활동성(Tätigkeit)이라는 이러한 혁명적 이상의 순수한 표현이며, 이것은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들』의 위험스러운 마지막 정식에 이르기까지 다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상이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6. 그렇지만 여기서 철학 텍스트들을 관통하는 대립축들 사이의 복잡성과 긴장을 해소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세계의 변혁”의 형태이자 행위자인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는 확실히 자신의 고유한 해방과정 속에서 그 자신을 구성하는 역사의 주체의 한 모습이다. 피히테의 원민족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부여받은(스피노자라면 “선택”(élection)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도덕적 공동체를 명명하는 “경험적-초월론적”(empirico-transcendantal)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2세기 동안 민족주의(또는 애국주의)와 사회주의는 호명하면서 동시에 호명되는 상징적 동일성들로서, 계속해서 대칭적으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내가 앞에서 정치의 타율성 이론에 따라 그 지평이 구성된다고 말했던 마르크스의 유물론 속에는 또한 아주 명시적으로 주체의 표상에 대한 해체의 요소가 존재하며,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에 작용한다.
여기서 이러한 해체가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생산과정(사상사가들은 자주 이러한 측면에서 마르크스와 스피노자 사이의 유비를 탐구해 왔다[주 12: 요벨이 잘 보여준 것처럼(1989/1991), 이러한 유비는 포이어바흐, 좀더 일반적으로는 자연주의적 전통의 매개에 따라 이루어진다])의 조직형태로서 착취에 대한 분석과, 적대나 “계급의식”(마르크스 자신은 결코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의 단순한 발전으로 환원될 수 없는 계급투쟁들 및 그에 고유한 정치적 복합성에 대한 구체적 묘사(tableau)로부터 분리 불가능하게 도출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알튀세르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그리고 이러한 독창성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불러일으킨 대대적인 부인(否認)에 직면하여 이를 고집했다는 점에서) 옳았다. 곧 여러 가지 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는 역사의 주체라기보다는 역사 속의 비주체인 것이다[주 13: 이는 특히 마르크스가 그의 성숙기 작업들에서 “대중”과 “계급” 사이의 관계들의 “변증법”을, 완전히 이론화한 것은 아니지만, 실천적으로 취급했던 방식으로부터 비롯한다(Balibar 1985/1994 참조). 이는 스피노자와의 또다른 결정적인 대면지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봉기와 해방이라는 통념들과 양립 가능한 것인가? 좀더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혁명의 원리들이 사실과 권리의 독특한 응축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진리의 요소와 양립 가능한가? 하나의 참된 명제가 주어진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생성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명제를 다른 모든 인간들에 준거시키는 인류의 한 부분에 의해, 그리고 그 부분을 위해―하지만 진리를 인지(reconnaît)하며 이 진리에서 자기자신을 [재]인지하는(s'y reconnaît) 그 집단이 거울에 스스로를 하나의 주체로 비추지 않으면서―이 명제가 언표된다는 것을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간단한 게 아니며, 이는 계속해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토론에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스피노자적인 용어들로 하면 관념들과 정념들, 집단적 활동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우리는 스피노자주의의 한 요소가 절대자를 다룬 다른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피히테에게도 자주 전가되어 왔음을 알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피히테의 민족을, 인민의 자율적 구성을 필연적으로 되풀이하게 되는 상상적 공동체의 완전한 예시(민족 자체(Das Volk)는 하나의 민족(ein Volk)이 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로 분석하는 것이 좀더 적합할 것 같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목적론적 표현들 및 프롤레타리아의 보편적인 역사적 사명에 대한 상상적 도표에 입각하여 마르크스를 위의 경우와 유비적인 스피노자적 해체에 종속시키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Albiac 1994 참조).
하지만 우리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나는 만약 이러한 비판이 스피노자와 마르크스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었던 문제나 대상―직접적인 원천이나 영향과 관련된 모든 문제는 제쳐두고서―곧 “대중들” 및 역사에서 그들의 결정적 역할이라는 문제를 고려한다면, 훨씬 더 흥미롭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비교는 스피노자가 마르크스에게는 지각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그리고 따라서 이것은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모호하고 죽은 문자로 남아있는 마르크스 자신의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관념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의 맞짝(contrepartie)은 마르크스가 스피노자에게는 지각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그리고 따라서 이것은 대부분의 스피노자주의자들에게는―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은폐된 채 남아있는 스피노자 그 자신의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스피노자에게는 (정서적 모방으로부터 시작되는) 대중의 동일화들(identifications)에 대한 이론 속에 심리학적 분석 또는 “상호개인적인 정신현상”에 대한 분석의 한 요소가 존재하며, 우리는 이것을 단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로서만이 아니라 유물론적 역사관에 본래적인 아포리아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는 분명히 정치에 내재적인 경제적 조건 및 더 나아가 그것에 내재적인 적대들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사회의 “생산”에서 개인적 역량들의 합성을 보는 공리주의적(이고 낙관주의적인) 관점 때문에 본질적으로 스피노자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자신의 역사적 분석에서 상상적인 것의 필연적인 장소(이데올로기 또는 물신숭배라는 이름 아래)를 표시해둘 만큼 충분히 변증법적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피노자 역시 상상의 정치적 효과들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필요한 경우마다 용어의 넓은 의미에서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조건들의 필연성을 언급해둘 만큼 충분히 변증법적이었다. 우리가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과 타율성이라는 반정립을 넘어서, 마르크스의 질문들과 스피노자의 질문들의 상호보완성을 정치에 대한 현재의 사고를 위한 특권적 지평으로―적어도 하나의 연구방향으로서―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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