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4 14회 인권영화제 뉴스레터 "울림" 제 7 호 (전체 101호)
차례


  1. <영화제 소식> 인권영화제 '기막힌 후원'을 간청드립니다

  2. <국내작 소개> 오체투지 다이어리 / 감독 인터뷰

  3. <국내작 소개> 그날 이후, / 감독 인터뷰

  4. <해외작 소개> [개막작]눈을 크게 떠라-좌파가 집권한 남미를 가다 Eyes Wide Open-A Journey through Today's South America / 예고편 영상

  5. <해외작 소개> 노동의 심장 Heart of the Factory / 예고편 영상

  6. <어!울림>

  7. <1984> ‘통금 있는 여자’의 자유는 어디에?

  8. <자원활동가 편지> 무덤덤한 자원활동가의 많이 늦은 편지

  9. <편집후기>

  10. <감독 인터뷰 전문> <오체투지 다이어리> 최유진 감독

  11. <감독 인터뷰 전문> <그날 이후,> 김주현 감독



영화제 소식



인권영화제 '기막힌 후원'을 간청드립니다


 



인권영화제 기막힌 속사정

집회 신고 내고 '14회 인권영화제' 개최!

인권영화제 15주년. 거리상영 3년째.

○ 영화진흥위원회 추천 없이는 영화관 대관 불가

○ 2010년 청계광장 2회 불허 통보

○ 역사박물관 대관 불가

○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내 공연장 신청

○ 공원 전체 집회신고, 인권단 체 연대와 축제의 장으로 확대


'기막힌 후원금'의 운영

1) 예산을 알리며 후원단 모집

인권영화제 개최를 위해 꼭 필요한 예산들의 쓰임새을 나열하여 공개합니다. 이를 보시고 인권영화제 성사를 위해 단체와 개인은 각 항목을 지정하여 지원하시면 됩니다. (목돈으 로 항목 전체를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기막힌 후원단의 최소 후원금은 5만 원입니다.

(*정기후원은 월 5,000원부터)

2) 후원금의 항목과 쓰임새(사업예산)

- 총 4일(상영시간12:00-22:00) 거리 인권영 화관을 짓기 위해 필요한 것들과 금액입니다.

- 협력업체 견적서 기준/인권영화제를 지지하시면서 최대한 배려 해 주신 가격입니다.

3) 후원방법

CMS나 계좌이체를 통해 납부할 수 있습니다. CMS를 신 청하시면 따로 은행에 신청할 필요 없이 계좌에서 자동출금되며 소득공제 영수증 발행이 가능합니다.

후원내용 (2종: 정기후원/ 기금후원)

■ 정기후원

매달 5,000원 이상을 정기적으로 후원해주시면 인권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필요한 재정이 튼튼해집니다.

■ 기금후원

한 번 5만 원 이상의 목돈을 후원해주시면 거리에 인권영화관을 짓기 위해 필요한 재정이 튼튼해집니다. 기금후원은 아래 항목 중 하나를 지정해서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항목 1. 발전차: 1,800.000원 <전기사용을 위해 발전차 사용>

항목 2. 무대와 조명: 2,200,000원 <무대 위에 아시바(철제구조물)를 쌓고 조명 설치>

항목 3. 영상장비: 5,500,000원 <무대 위에 LEC(대형 영상모니터) 설치>

항목 4. 음향 장비: 3,000,000원 <영화 음성을 잘 들을 수 있도록 >

항목 5. 관객석 몽골탠트: 1,500,000원 <관객석 마련(비둘기똥/소나기대비/강렬한 햇볕 차단)>

항목 6. 관객석 좌석 500,000원 <앉아서 영화볼 수 있도록 좌석 마련(약 200~250석 *100석:서울프린지에서 무 상대여)>

※ 위 항목 중 하나를 지정하지 않으시면, 영화제 현장 운영을 위한 자원활동가와 스탭의 식비, 인권단체 부스 운영을 위한 천막, 야간 조명 등에 사용하게 됩니다.

4) 인권영화제 후원활동가가 되시 면...

■정기후원 : 인권영화제 하라 두건 / 해당 년도의 해설책자와 기념티셔츠 (현장 증정)

■기금후원 : DVD 1편 / 해당 년도의 해설책자와 기념티셔츠 (현장 증정)

■모든 후원활동가에게 인권영화제 소식지 「울림」을 보내드립니다.

5) 후원 가입 신청 및 문의

http://sarangbang.or.kr/kr/new/huwonx/form/hrfilm

전화 : 02-313-2407 ·

E-mail : hrfilmfestival@empas.com

■ 후원계 좌 (자동이체는 본인이 은행에서 직접 신청하셔야 합니다)

국민은행 031601-04-060269 (예금주: 인권운동사랑방(인권영화제))

농협 029-01-223582 (예금주: 인권운동사랑방)




이미지 클릭이 안되는 경우 여기를 ☞ '후원활동가 어디 계세요?'



▲차례

국내작 소개



오체투지 다이어리


 



지금종, 최유진Ji Geum Jong, Choi You Jin|한국Korea|2009|다큐|83분|HDV|컬러 ☞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2008년, 촛불시위와 강경진압으로 어지러운 정국. 약자가 더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는 현실에서 문규현, 전종훈신부와 수경스님이 오체투지순례를 나선다. 온몸을 낮춰 땅을 보듬는 이들을 보며 몇몇은 눈물을 훔쳤고 몇몇은 동행했다. 공동체 가치와 생명의 존엄이 무시되는 요즘, 세 성직 자의 행보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크다.

(감독 인터뷰 전문은 울림 맨 밑단에 있습니다.)



▲차례

그날 이후,


 



김주현Kim Juhyun|한국Korea|2009|다큐|6분 18초|DVcam|컬러 ☞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지적장애를 가진 홍집이는 졸업식을 마치고 세상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지만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단순 노동으로 만족할 수 없는 홍집이의 끼는 남다르다. 특별한 기회! 가족들의 응원으로 그는 마침내 영화배우로 데뷔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그의 외침은 편견과 오만에 포박 된 세상을 향한 유쾌한 일갈이다.

(감독 인터뷰 전문은 울림 맨 밑단에 있습니다.)



▲차례

해외작 소개



[개막작]눈을 크게 떠라-좌파가 집권한 남미를 가다 Eyes Wide Open-A Journey through Today's South America


 



곤잘로 아리존Gonzalo Arizon|프랑스France|2009|다큐|110분|DVcam|컬러
[개막작]눈을 크게 떠라-좌파가 집권한 남미를 가다'예고편 영상 보러가기

차베스는 오바마에게 선진국의 중남미 착취를 비판하는 책 ,‘라틴 아메리카의 노출된 혈관들’을 건넸다. 영화는 책이 쓰여진지 40년 후,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제국주의 착취의 폐해를 보여준다. 감독은 브라질 아마존의 콩 플랜테이션부터 볼리비아의 작은 광산, 에콰도르의 깊 은 정글까지 다국적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자원의 착취, 생태의 파괴와 신자유주의에 따른 민영화의 폐해가 어떠한지 보여주며 그에 대한 대중들의 저항과 그들의 새로운 정부들이 이루려 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 회적 연대의 건설에 초점을 맞춘다.



▲차례

노동의 심장 Heart of the Factory


 



에르네스또 아르디또, 비르나 몰리나Ernesto Ardito, Virna Molina|아르헨티나Argentina|2008|다큐|129분|DVcam|컬러 ☞ '노동의 심장'예고편 영상 보러가기

2001년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 시기. 싸논Zanon 타 일 공장은 근로자들에게 임금 지급을 멈추고 긴급폐쇄를 발표했다. 그러나 260여 명의 노동자들은 시설을 점거하고 스스로 경영하여 타일생산을 계속해 나갈 것을 결정했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도전은 아르헨티나 노동 역사 와 교차한다.



▲차례

어!울림




 




* 시각장애인을 위한 해설입니다.
어!울림
일곱 번째 이야기

중림동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풍경이 있다.

한산한 도시의 풍경과

그 속에 감춰진 치열한 풍경.

"광장은 시민들의 것이라구요!"
'검열에 반대한다'
'표현의 자유 보장하라!'

왜 그런 걸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만든 이: 재영
"여유 있는 사랑방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이미지 편집: 소라 / 타이틀: 공기
▲차례

1984



‘통금 있는 여자’의 자유는 어디에?


 



"지금 몇 시인가요?"
"어? 10시 20분이네."
"진짜요? 아 저 지금 가봐야 되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뵐게요."
"좀 더 있다가 가. 지금 가면 아쉬운데..."
"아, 제가 11시 30분까지 들어가야 돼서요. 정말 죄송해요."

10시 20분이 되면 항상 하는 말이다. 매번 더 있다가라는 말과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열시 이십분이면 지하철역을 향해 뛴다. 지각할까 마음을 졸이 며 안 그래도 빠른 걸음을 더욱 빨리한다. 매번 저녁 약속이 있으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시간을 못 봐서 늦게 들어가면 안 되니까. 그렇다. 난 통금 있는 여자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딸 가진 부모님의 걱정과 학교생활을 더 편리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기숙사에서 3년간 살고 있다. 기숙사에 살면 좋은 점? 우선 밥을 해서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 부모님이 안심할 수 있다는 점, 늦게 일어나도 지각하지 않고 수업 들을 수 있다는 점... 하지만 난... 자유를 잃었다.
11시 30분까지 못 들어올 시 벌점 부과, 관내 소음 유발 시 벌점 부과, 관내 전기기구 사용 시 벌점 부과, 관내 주류 반입 시 벌점 부과, 공동생활 저해 행위 시 벌점 부과, 이러한 벌점이 쌓이면 1년간 재입사 불가. 사회에 들어가면 마땅히 규칙과 규범이라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개개인의 의사표명을 할 수 없게 만들고 시간까지 규정하는 것은 보호해 주겠다는 명목 아래 오히려 억압하는 것은 아닐까? 소음의 기준은 무엇이 고, 공동생활을 저해시키는 행위의 기준은 무엇인가. 혹자는 벌점 좀 받으면 어때?라고 하지만, 나같이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벌점이란 학점 F만큼이나 치명적이다. 때문에 그들은 항상 시간을 확인해야 하고 항상 뛰어 야 한다.
11시 25분이 되면 조용했던 학교는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힐을 신고 뛰는 사람들과 택시들로 분주해 진다. 난 오늘도 헉헉대면서 '세이프'를 외치며 11시 29분에 기숙사 문을 통과한다.


정윤
▲차례

자원활동가 편지



무덤덤한 자원활동가의 많이 늦은 편지


 



제가 인권영화제 자원활동을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아직도 새롭고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맞닥뜨리다 보니 자원활동을 한지 꽤 되었다는 것을 잊고 지내나 봅니다. 사실 그동안 울림팀에서 주로 원고 청탁;;을 맡아 활동해오면서, ‘나중에 원고가 펑크난 긴급 상황에 내가 대타로 써야지’라는 생각에 자원활동가 편지 쓰기를 자꾸 미뤄왔었습니다. 또는 ‘완벽한 모습의 자원활동가가 된 다음에 멋진 편지를 쓰리라!’라고 쓸데없 는 생각을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지난 4월 한 달 동안 인권영화제 활동을 쉬었습니다. 활동을 쉬었다가 다시 영화제에 돌아오는 별 것 아닌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먼저 제가 모든 것에 참견하지 않아도 다른 활동가들이 훌륭하게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제가 그동안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을 은근히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다른 활동가들이 못 미더워서 그랬던 건 아닌데.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들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영화제의 모 든 과정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한 달 동안 영화제 일은 이미 엄청나게 진전되어 있고, 그럴 때에는 일단 뛰어들어 일을 처리하면서 알아가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영화제가 당장 며칠 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저는 별로 긴장이 안 되네요. 인권영화제에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가 원래 좀 무덤덤한가 봐요. 영화제 걱정은 다른 사람이 다 하고 저는 하고 싶은 활동만 하며 보내 고 있는 듯?ㅋㅋ 변명하자면, 원래 각자의 방식대로 영화제를 준비하고 기대하고 즐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으니까요! 아무튼 저는 예고편 편집을 마무리하러 가렵니다. 그리고 이제 슬슬 현장에서 관객들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민지
▲차례

편집후기




 



아니!! 벌써!! 영화제가 이번주라니!!ㅋㅋ 컴퓨터에서만 뵙던 독자 여러분들~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나요^^ - 재영

벌써 영화제 개막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네요. 기분이 묘하네요. - 지 용

올해에는 영화제 현장에서 데일리 울림을 멋지게 만들어 내는 것이 목표!! - 민지

영화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네요!! 마로니에 공원에서 우리 모두 표현의 자유를 외쳐보아요 ^^ -정윤

인권영화제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영화제 기간에도 울림의 목소리는 계속됩니다!^^ -소라

인권영화제 블로그입니다 http://blog.naver.com/hrfilms/



▲차례

감독 인터뷰 전문



<오체투지 다이어리> 최유진 감독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감독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구요, 학생회와 민노당에서 일을 하면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후 다큐에 관심이 생겨서 이렇게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고요. 지금 은 영화촬영을 위해 구입한 카메라 비용을 갚기 위해 아버지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드리고 있어요.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종교는 없어요. 부모님은 모두 카톨릭 신자세요. 하지만 어릴 때부 터 부모님들이 종교를 강요하시지는 않으셨어요.

영화를 만드시게 된 동기 또는 오체투지에 참가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영화가 첫 작품이구요. 함께 영화를 찍은 지금종 감독님이 촬영할 사람이 한 명 더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해서 참가하게 되었어요. 촬영을 위해 독립다큐멘터리 제작과정 수업을 들었구요. 저 자신의 수행의 의미로서도, 자기 몸을 던져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시는 세 분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오체투지 순례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을 보고는 자칫 비슷비슷한 화면들과 이야기들이 영화를 지루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실제 83분의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속 세 분이 3보 후 1배를 하는 모습 자체만으로도 큰 감동이 있었고요. 작품을 만들면서 감독님이 중점을 두신 점은 어떤 부분인가요?

사실 처음에는 세 분의 이야기가 많이 듣고 싶었어요. 근데 오체투지 시작 후에는 말을 굉장히 아끼시더라구요. 수행이 굉장히 고된 것도 이유의 하나이겠지만 마치 묵언수행을 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엔 말을 걸어보려고 노력했는데, 그분들이 온몸으로 보여 주시는 것만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세 분뿐 아니라 순례에 참가하는 다른 분들의 모습 역시 감동적이었고 그분들을 담는 일 또한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작품 을 만들며 직접 오체투지에도 참여해 보셨는지요? 느낌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직접 오체투지를 해보고 싶어서 참여한 것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좀 지저분하다, 힘들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직접 해보 니까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머릿속이 텅 비고 맘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어요. 영화 속에서 한 분이 수행을 하며 처음 촛불을 들 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저 역시 나이가 들면서 느꼈던 복잡함이나 고민들을 많이 정리하면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길을 가시던 나이 많은 할머니께서 비가 오면 좋겠다고 푸념하시는 것을 찍은 게 있었어요. 할머니의 삶이 보이는 좋은 장면이었는데 제가 초보라 그만 사운드를 못 잡았어요. 게다가 그날 하루 종일.... 그날 좋은 장면들이 참 많았는데. 저녁에 울었어요. 이날 이후로는 꼭 이어폰을 끼고 사운드를 확인해요.

감독님이 관객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영화 속 장면은 무엇인가요?

첫 작품인데 모든 장면이 다 소중하죠. 중간에 한 아주머님이 딸과 29년 만에 화해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세 분의 모습을 보고나니 평생을 반성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촬영 중이셨던 지금종 감독님도 함께 우셨어요. 삶을 반성하며 사시려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던 것 같아요. 또 화면 속에서는 잠깐 뿐이지만 오체투지단을 방문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따뜻한 마음 하나하나가 모두 저에게는 감동이었어 요.

스님, 신부님들이 가장 힘들어 하셨을 때가 언제였나요?

스님께서 무릎 수술을 두 번 하셨는데요. 오체투지 중 엎드려서 일어서지를 못하시더라구요. 결국 중간에 일찍 접고 숙소로 돌아 갔는데요. 많이 걱정됐었어요. 그때가 가장 큰 고비였었던 것 같아요. 다행이 많이 회복되셔서 끝까지 함께 하실 수 있었고요.

두 분이 공동연출을 하셨는데,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 어떻게 풀어가셨나요?

나이나 경험, 성별 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보니 중간중간 트러블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 감독님이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셨고, 저도 할 얘기는 하는 스타일이에요. 대화로 잘 풀어나간 것 같아요. 또 그런 충돌 덕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온 거 같고요.

최근 봉은사 사태라든지 천주교 주교회의의 4대강 반대 성명 등 종교계의 정치 발언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이를 보시는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합니 다.

그동안은 종교계가 정치적 발언을 많이 자제해 왔던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23년 만에 명동에서 시국미사가 열렸잖아요. 한 신부님께서 ‘역사의 시계바늘을 20년 전으로 되돌린 정부의 반생태적 반민주적인 행태가 지금을 비상시국이라고 느끼게 한다’고 하셨는데요. 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의 반대와 걱정을 무시하고 계속 저러는 걸 보면 참 무슨 생각인지 답답해요. 그저 소수의 부자들만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뒷감당을 어찌 하려는지...
사실 종교계까지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데 정작 우리 젊은 세대들이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다는 게, - 예전엔 투쟁의 선두에는 항상 학생들이 있었다는데 - 그리고 오히려 종교인들의 이런 반응에 반대하는 목소리 들을 낸다는 게 참 안타깝고 답답해요. 한편으로는 그들의 처참하고 힘든 현실이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영화에서 보면 오체투지의 목적지가 북한의 묘향산이라고 나오는데요.

원래는 북한까지 오체투지가 계획되어 있었어요. 북측과도 허가 등 어느 정도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고요. 남쪽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면서, 북한에서 허가를 취소하면서 무산되었죠.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으신지?

다음에는 장편이 아닌 짧은 단편을 하고 싶어요. 막막하고 아프고 답답한 이야기 보다는 따뜻하고 밝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구요. 4대강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여건이 좋 지 않아서... 하지만 계속 다큐를 찍고 싶어요.

영화에서 아스팔트 길과 사람의 길, 도시와 농촌, 느린 것과 빠른 것 등이 대비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빠르게 돌아가려고만 하는 세상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보 여주는 것이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의 의도가 있었다면 듣고 싶네요.

저만해도 10,20대를 경주하듯이 살아왔어요, 경주마처럼. 무엇 때문에 사는지 뭘 원하는 지도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소중한 가치, 대안적인 삶이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오체투지가 그런 삶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준 수행이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느리거든요.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언제 서울에 가나 싶어요. 하루 세끼 먹는 게 가장 기쁜 일이고. 근데 오히려 천천히 가면서 보니까 전에 차를 타고 다니면서는 보이지도 않았던 길가의 작은 풀, 온갖 벌레 같은 작은 생명들이 보이더라구요. 스님도 ‘살아있는 모든 존재 생명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자신을 반성하고 이기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세상이 힘들어 점점 더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어지는 상황에서 한걸음 멈춰 서서 내가 어떻게 사는게 더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또 굳이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그 때 버린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 덕에 제주도에서 살았었는데요. 어렸을 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두 달여간 함께하신 오체투지를 마치고 나 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아 안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야 끝나는구나, 허전하고 아쉽고 그랬어요. 어서 빨리 편집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구요.

권해효 씨가 내레이션을 하셨 는데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셨나요?

지금종 감독님과 친분이 있어요. 노개런티로 해주셨어요. 좋은 분이시더라구요

인권영화제가 15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거리 상영을 지지하는 메시지와 축 하 인사 부탁드립니다.

표현의 자유를 이런 식으로 무시하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갈 길이 먼 거 같아요. 거리 상영에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인권영화제 15주년 축하드립니다!!


* 인터뷰 질문과 기사의 분량을 고려하여 임의로 편집한 부분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차례

<그날 이후,> 김주현 감독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감독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영상은 어떻게 만들게 되셨는지, 이전에 만든 다른 작품이 있으신지 말씀해 주세요.

영상에 관심이 있어서 영상학과에 들어갔어요. 학교 졸업 작품으로 <파랑새>라 는 단편영화를 찍었고요. (<파랑새>는 극영화이지만) 이번에는 제가 가장 잘 할 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되었어요. 저희 가족에 대한 진실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계기로 이번 작품을 찍게 되셨는지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동생이 있잖아요. 사춘기 때에는 동생을 소개하는 것이 부끄러웠어요. 대학교 들어갔을 때에도 (친구들이) “동생은 뭐하냐? 군대 안 가냐?” 이렇게 물어볼 때 “동생이 지적장애라서 안 간다.”라고 말하면 상황이 어색해지는 거예요. 친구들이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거죠. 저는 우리 가족이 되게 평범하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 어요.
대학교 다닐 때 동생 졸업식에 갔는데요. (영화) 처음 시작할 때 보면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잖아요. 그 장면을 그때 찍은 거예요. ‘이걸 가지고 영화를 찍어야 되겠다.’하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졸업하고 나면서 찍 게 된 거죠.

아주 가까운 관계인 가족을 대상으로 설정하면서 고민되었거나 어려웠던 점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가족이 대상이니까 촬영하면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는 장면 들이 있잖아요. 카메라 앞이라서 오버하게 되거나 하던 행동을 안 하게 되는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찍느라고 오랫동안 계속 촬영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제 영화가)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것이잖아요. 가족들 은 “이런 걸 촬영해서 무슨 의미가 있냐.”하고 자꾸만 문제제기를 하는데, 저는 의미가 있어서 찍는 것인데 이걸 왜 찍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까 가끔씩 회의가 들 때가 있었어요.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걸 보면서 가족 들은 “그때 좀 협조적으로 할 걸”하는 이야기를 해요.

지적장애인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어려움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홍집이가 어렸을 때 일인데, 홍집이보다 어린 아이들이 홍집이 를 둘러싸고 있고 홍집이는 엉엉 울고 있는 거에요. 제가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혼자서는 밖에 잘 안 나가려고 해요. 교회나 작업장 같이 늘 다니는 곳에는 혼자서도 잘 가 지만 낯선 곳, 새로운 곳엔 잘 안 가려고 해요.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안 좋은 기억 때문에 사람들과 만나는데 거부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영화에도 나왔지만 드럼 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드럼을 배우게끔 하려고 해도 안 가려고 해요.

지적장애인들을 대할 때 이런 점들은 꼭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점이 있나요? 비장애인들을 위한 조언 또는 충고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다 알고 계실 테지만, 장애를 특별한 것이라 여기지 말고 편하게 대하시면 좋겠습니다.

동생의 장애가 계기가 되어, 다른 장애를 가진 장애인분들이나 장애인 인권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도 같습니다.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 제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장애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요. 물론 다른 장애인들 보다 지적장애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죠.

지적장애인의 직 업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해주세요. 홍집 씨처럼 직업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면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야 할까요?

학교를 졸업하면 장애인 복지관에 가서 직업훈련을 받게 되고, 그곳에서 소개를 시켜주면 일자리를 얻어서 나가게 되는 거예요. 직업교육이 특별한 것이 아니고 되게 단순한 작업이에요. 직업훈련을 한다기보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청결하게 하는 것, 하기 싫은 일이라도 시간 맞춰서 일하도록 하는 것,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시간약속 잘 지키는 것과 같은 것 말예요. 홍집이는 직업교육에 만족하지 못한다기보다는 처음에 시작할 때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건데요. 사실 같은 또래라고 해도 일하는 능력이 다를 수 있잖아요. 친구들과 잘 안 맞아서 홍집이가 싫어하는 것도 있고 그래요. 비슷한 친구들끼리 잘 묶어서 해주시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고요. 개선책이라고 하면, 이것도 좀 어렵겠지만, 일하는 친구들이 능률이 높지 않아서 돈을 제대로 받지 못 하더라도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신다면 좀 더 보람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에서 나타나는 감독님 가족의 모습이 화목해 보였습니다. 가족 자랑 좀 해주시겠어요?

저희 집이 특별히 화목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가족들이 홍집이를 중심 으로 돌아가긴 했어요. 홍집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하니까. 항상 같이 걱정하고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 홍집이를 중심으로 묶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뭐,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동생이 항상 늦게 일어나고 그러니까 싸우게 되고 그래요.

얼마 전 감독님께서도 결혼을 하시고 아기를 낳으셨는데요. 감독님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이며, 가족 구성원 사이에 어떤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지금 (출산 후에) 처음 자유 시간을 가지게 된 거에요. 아기를 위해서 희생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이요. 계속 보호해주고, 지켜봐 줘야 하니 까. 서로 희생하는 부분도 있고 이해하면서 많이 노력해야 되겠죠.

아기 얘기 좀 해주세요.

아기가 너무 우량아여서요.(웃음) 신생아 같지가 않아서. 들 때도 무겁고, 모유 수유를 하는데 양이 넉넉지가 않은 거예요. 밥 달라고 악쓰고 발버둥 칠 때면 쩔쩔 매면서 우유를 먹이고 그래요. 그래도 자는 모습 보 면 천사 같고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요.

홍집 씨와 다른 가족들의 근황을 알려주시겠어요?

아빠랑 작은 누나는 지금 회사 다니고 있고요. 저는 아기 낳아서 같이 살고 있고요. 홍집이는 원래 다니던 곳에 계속해서 다니고 있어요. 엄마는 여러 가지 일 하고 계신데, 작년에 갑상선암 수술 받으신 것 이번에 2차 수술을 받으시거든요. 좀 힘들어 하시지만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요.

차 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홍집 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또 만들 계획이 있으신가요?

홍집이가 무언가를 특별히 하게 된다면 영화를 찍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가족과 동생에 대해서 이미 하고 싶은 이 야기를 다 했기 때문에 그럴 계획은 없고요.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지적장애인들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은데요. 책을 읽다 보니까 헝가리에 지적장애인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곳이 있더라고요. 술 마시는 곳도 있고, 디스코 장도 있고, 연애도 하고 그렇게 같이 마을을 이루어서 자유롭게 사는데 정말 행복하게 잘 산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이 자라면서 비장애인들과 부딪히면서 겪은 어려움이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적장애인들끼리만 생활하 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고립된 장소에서 그들끼리만 사는 것도 문제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공동체에 대해서 찍어보고 싶어요. 장단점이 무엇인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곳이 없잖아요. 다큐멘 터리 공부하면서 찍어보고 싶어요. 외국에 나가야 하는 거니까 준비를 많이 해야 되겠죠, 언어적인 문제도 그렇고. 남편은 이런 거 많이 좋아해서, 나중에 일을 그만두고서라도 지원을 해주겠다고 그래요.(웃음)

감독님께서는 지적장애인들끼리 살아야 한다기보다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비장애인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비장애인들과 같이 사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아이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따로 생활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요. 홍집이가 가족 내에서는 말을 별로 안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학교 다닐 때에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인기도 많고, 끼가 있어서 무대에서 춤도 잘 추곤 해요. 후배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그 안에 있으면 자신감도 생기고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것 같아요. 밖에서는... 어렸을 때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좋은 기억이 많은 것 같아요. 밖에 잘 안 나 가려고 하고. 어릴 때는 놀리거나 놀림을 받거나 할 수도 있는 건데, 이 때 교육을 잘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님들이 좀 도와주면 편견을 없애는 게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장애인인권영화제에 상영이 되었습니다. 관객들 반응이 어떠했나요?

그때 저는 출산 직전이라서 못 갔고 홍집이랑 엄마랑 같이 가셨거든요. 둘이서 감독과의 대화도 했다고 하더라고요.(일동 웃음) 홍집이는 <마더>도 찍고, 자기가 주인공인 영화도 앞에 나가서 보니까 연예인이 된 것처럼 그러거든요. 저번에 <마더> 찍었을 때에도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영화배우 김홍집 인사드립니다.’ 이렇게 문자로 다 보냈거든요. 이제는 국민배우라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홍집이를 많이 좋아해주시니까. 끝나고 사진도 찍고 이러니까 어깨가 으쓱으쓱 하는 거죠. 홍집이가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인권영화제가 15주년을 맞았습니다. 축하메시지나 지지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울림 열심히 보고 있어요. 열심히 하시고 분위기도 화목하고 좋은 것 같더라고요. 자부심이나 보람도 많이 느끼면 서 하시는 것 같고요. 되게 부러운 것 같아요.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 보면서 자극되는 여러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아서... 영화제 잘 되었으면 좋겠고 사람들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응원 열심히 할게요. 화이팅!

* 인터뷰 질문과 기사의 분량을 고려하여 임의로 편집한 부분이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차례
울림을 만드는 사람들 : 인권영화제 울림팀


인권영화제
서울시 중구 중림동 398-17 3층 (우) 100-360
전화 02-313-2407 팩스 02-365-5364 이메일 hrfilmfestiva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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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ffany jewelry 2010-07-0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울림을 만드는 사람들 : 인권영화제 울림팀 http://www.elinkslondonsa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