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balmas님의 "발리바르-우리, 유럽의 시민들? [역자 해제]"

"해체 불가능한 것"은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면 "이상적 보편성"이죠. 가령 "평등-자유 명제" 같은 것이 대표적인 해체 불가능한 것이 되겠죠. 정치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 미국인 교수가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데리다에 관한 최근의 논의나 유럽 정치철학의 최근 흐름에 대해서는 아주 무지한 사람인가 봅니다. 그런 사람들 이야기에 일일이 대꾸할 만한 가치도 없지만, 질문하신 님 자신이 문제가 많다고 하셨으니 어떤 문제가 있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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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4-1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해체 불가능한 정의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신적 폭력에 대한 끊임없는 기다림으로 밖에 가지 않는 것 아닌가요? 마치 기독교 역사주의처럼, 그 어떤 정립적이거나 보존적인 폭력도 결국엔 해체 불가능한 정의에는 도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 것을 정의로 설정한 뒤에 어떤 정치가 가능한 건지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정의가 항상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 뒤에, 그 다음에 모든 사람이 다 같이 민주주의를 좋아할 것이라고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을지, 그런 이들에게 대체 뭐라고 답하면 좋을지, 애초에 민주주의를 따라가야 할 해체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는 한 것인지. 어떤 비정형의 정의 개념이라고 말하고, 그 내용은 실상 비어있고 그 비어있다는 데에서 강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는 대체 '나치즘적 정의'를 변명하는 하이데거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더군요.
푸코는 촘스키와 한 대담에서 '정의가 계급없는 사회에서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말했는데, 이걸 어떻게 반박할 수 있나요? 대체 도달 불가능한 정의, 그걸 생각해야 할 이유는 뭔가요? 전 답을 못 찾겠습니다. 정의가 지금 널리 쓰이고 있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 이외에 정의에 대체 무슨 특권을 줄 수 있는 것인지...

balmas 2010-04-16 01:19   좋아요 0 | URL
ㅎㅎ 데리다가 정의가 불가능하다고 했나요? 해체 불가능하다고 했지.^^ 그리고 나치즘적 정의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건 그게 과연 해체 "불가능한" 것인지 따져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도달 불가능한 정의는 다른 말로 하면 완성 불가능한 정의가 되겠죠. 정의가 완성되면 역사가 완성되고 세상의 종말이 오는 걸 테니까, 적어도 그런 식의 종말론이나 목적론을 믿지 않는다면, 정의는 도달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리고 왜 이걸 생각해야 하느냐고 하셨는데, 발리바르가 말하는 이상적 보편성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죠. 그것이 없이는 사회 정의나 해방 같은 것도 생각하기 어려운 것. 이상적 보편성, 해체 불가능한 정의 같은 것들은 사실 원초적으로 따진다면 내용이 비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는 객관적 토대가 없기 때문에 그렇고, 둘째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거기에서 파생되니까 그렇겠죠. 푸코 이야기는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어떤 점에서 데리다 이야기와 모순되는 것인가요?^^

답변 주셔서 감사한데,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뒤섞여 있어서 더 이상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답변 주신 걸 보니 미국의 자유주의(보수주의?) 정치철학자인 마크 릴라(Mark Lilla)의 데리다 비판과 상당히 유사한 점들이 있는 것도 같고 어떤 대목에서는 토머스 맥카시 같은 사람들이 예전에 제기했던 비판과도 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네요. 데리다에 관한 이런 식의 비판들의 문제점이나 난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논문을 한편 쓰는 수밖에는 없을 듯하군요.

... 2010-04-16 11:2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데리다에 관해서는, 제가 일단 더 공부를 해야겠군요. 이에 대해서는 저와 더 논쟁해보셔야 얻는 것 없이 시간만 뺏기실 겁니다; 그 어떤 정립적/보존적 행위도 정의롭다고 부를 수 없는데 정의가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게, 지금 엄청 혼란스럽네요. 제가 대체 뭘 잘못 읽은 것인지 더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전 마크 릴라를 읽었는데 그의 거의 황당한 푸코 비난에는 기가 질리더군요. 하지만 데리다에 대해서는 푸코 만큼은 잘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웠고, 그의 비판이 어느 정도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논문을 쓰신다음 그걸 제가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 좋을 것 같네요.

푸코가 한 말의 맥락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the idea of justice in itself is an idea which in effect has been invented and put to work in different types of societies as an instrument of a certain political and economic power or as a weapon against that power. But it seems to me that, in any case, the notion of justice itself functions within a society of classes as a claim made by the oppressed class and as justification for it(...)And in a classless society, I am not sure that we would still use this notion of justice.(...)you can't prevent me from believing that these notions of human nature, of justice, of the realisation of the essence of human beings, are all notions and concepts which have been formed within our civilisation, within our type of knowledge and our form of philosophy, and that as a result form part of our class system; and one can't, however regrettable it may be, put forward these notions to describe or justify a fight which should-and shall in principle--overthrow the very fundaments of our society. This is an extrapolation for which I can't find the historical justification. That's the point."

우물 안 개구리 2010-04-1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소프트커버에 집착했나요? 자제하겠습니다. ...님은 정말 진지하군요. 그렇다고 해도 발리바르는 푸코도 아니고 데리다도 아닌데 마치 제 얘기처럼 엉뚱한 면이 있네요. 굳이 쓸데없이 개입하자면 아무래도 미국은 "자유주의"가 득세하는 공간이예요. 무슨 얘기를 해도 "자유주의"적 관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더군요. 제가 보기에 미국인들이 말하는 다원주의나 상대주의 또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식으로든 자유주의와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데리다를 얘기하면서 슬쩍 나치즘을 끌어들이는 발상 자체가 그렇지 않나요?

저도 데리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데리다의 사상 자체가 목적론과 대결하는 독특한 사유방식이라고 봅니다. 추상적인 얘기를 많이 해서 알아 듣기는 힘들지만 항상 목적론이나 결정론 및 종말론에 시비를 건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데리다를 읽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목적론에 사로잡힌 존재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고 할까요. 그런 점들이 포스트식민주의와 공명하는 면도 있어 보이고요. 어딘가 알튀세르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는 면도 있어 보입니다.(가령 역사는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데리다의 해체가 유물론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물론과 결합 가능하다고 봅니다. 아마 그 미국인 교수는 유물론자가 아닐 겁니다.

식견 높은 분들이 많으니 엉뚱한 얘기를 하면 혼날 듯 하니 그쳐야 하겠네요.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Real한 것에 대한 想像적 재현이라고 했습니다. 푸코를 좋아하는 폴 벤느는 담론과 이데올로기를 서로 다른 것으로 얘기하죠. 이데올로기는 허구적인 것이라는 전제를 깔면서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알튀세르의 주장은 그 누구도 Real한 것을 알지 못하면서 어떤 것을 마치 Real한 것으로 "상상"할 뿐이라는 거죠. 즉 누구도 Real을 모른다. 그런데도 각자 스스로의 견해나 주장을 Real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결국에는 "상상"이라는 거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폴 벤느의 주장과 다르게 "모든 담론은 이데올로기" 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다고요. 모든 담론은 항상 불완전한 무엇이 아닐까요? 발리바르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도 있다는 얘기죠.

저는 ... 님이 제가 소프트커버에 집착하는 것처럼 어떤 것이 틀림없이 "Real"하다고 전제하면서 질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보다는 각각의 주장들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그 주장들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나 맥락, 그것의 한계 지점부터 검토하는 편이 좋다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자의적인 읽기는 피해야 하지만 텍스트를 읽는 방식이 하나로 고정될 필요는 없는데 제가 보기에 ...님은 텍스트를 읽는 "고정된 형태의 읽기"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이거야말로 "자의적인 오독"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알튀세르를 잘 아시는 발마스 님한테 혼날 것 같은 얘기만 썼군요. 발마스 님이 저한테 "너는 알튀세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셔도 딱히 반박할 말은 없습니다. 앞으로 발마스 님한테 혼나면서 배워보고 싶군요.

... 2010-04-16 18:0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고정된 형태의 읽기 같은 건 없죠. 데리다를 그래도 조금이나마 읽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사람이 A를 말했는데 제가 이 사람은 A'를 말했어라고 한다면, 그건 당연히 잘못이죠. A를 어떻게 해석할지는 마음대로지만요.
물론 발리바르는 독특한 사람이고 독특하기 때문에 읽는거죠. 그 사람이 푸코랑 똑같은 이야기만 한다면 푸코를 읽지 왜 발리바르를 읽겠습니까 ㅋ 하지만 만약 푸코의 중요한 몇몇 논점들을 반박할 수 없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접점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기를 요구하는게 학문하려는 사람의 당연한 입장 아닐까요...? 전 최소한 그렇습니다.
전 이데올로기에 관해서는 들뢰즈와 푸코의 입장을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는 없고, 단지 그 자리에서 적절한 방식으로 활용되는 전략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효과가 문제인 거지, 허위이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데올로기에 관해 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부터 거절해야 할 지 고민하게되죠. 최소한 따옴표 이데올로기라도 썼으면 하는게 제 바램입니다만.. 뭐 제 바램일 뿐이죠.
미국에 관해서는 미국에 살아본 적도 없고, 미국에 대한 괜한 편견만 있어서 미국 사람 책들은 잘 읽지도 않아서 뭐라고 하기가 힘드네요;; 이왕이면 미국보다는 유럽 저자들을 읽는 것이, 아까운 시간 동안에는 더 좋다는 생각이 있어서 말이죠. 기회가 닿으면 어떤지 잘 살펴보고 싶습니다만. 정치외교학과를 다니고 있는데 비교 정치니 국제 정치 모두 미국의 '과학적' 이론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전 기가 질립니다. 문자 그대로 전쟁터에서 농사 짓는 것 같이 보이는데, 아직 제가 함부로 뭐라고 왈가왈부할만큼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고 하니.

그리고 실재에 관해서는 뭔가 지금도 끝나지 않은 라캉-들뢰즈 논쟁이 생각나는군요. 전 후자를 일단 선호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 2010-04-28 16:1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역시 입장 차이가 있군요. 굳이 선호하는 입장을 밝히자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인도 출신의 spivak이 "Can the subaltern speak?"에서 들뢰즈와 푸코에 대해 비판한 거 알고 계시죠. 거기에서 그녀는 들뢰즈와 푸코에게는 전세계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이데올로기의 작동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자체가 이미 유럽중심주의라는 식으로 맹렬히 비난했죠. 아래에서 누군가 저에 대해 쓴 게 있는 거 같은데 대충 맞는 얘기입니다.

저는 알튀세르나 spivak의 이데올로기 개념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들뢰즈나 푸코보다는 이 사람들 견해에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뭐, 이데올로기가 눈에 보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쉽게 결론이 날 리가 없긴 합니다. 어쨌든 저는 이데올로기가 수많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REAL하다고 간주되는 판타지"에 가깝다고 봅니다. 가령 神의 존재가 Real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많지 않습니까? 허위를 가름하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에는 想像적 관계의 재현이 아닐까요?

어쨌든 제 얘기에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다른 입장에서 ...님의 견해를 들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발마스 님은 분명히 또 이것과 다르게 생각하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