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ksammy님의 "ksammy님이 작성하신 방명록입니다."

글쎄요, [철학과 인문과학]은 내가 지금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아서 [프로이트와 라캉]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이 글과 강의록 사이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발표된 글과 미공개 강의 사이의 차이라고 할 수있겠죠.  

[프로이트와 라캉]에서는 주로 라캉의 업적이 어떤 것이고 그것이 왜 인문사회과학,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중요한지 역설하고 있다면, 강의록에서는 라캉의 업적을 중요하게 간주하면서 그것을 동시대의 인문사회과학의 장 속에 위치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죠. 그 과정에서 라캉의 한계 내지 애매성도 지적하게 되고, 근대 서양 철학 및 인문사회과학의 맥락에서 그의 이론 작업을 검토하고 있죠. 아마 당시에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주의 사이의 전략적 동맹을 추구하고 있던 알튀세르 입장에서는 라캉의 한계에 대해 공공연히 이야기하기는 좀 껄끄러웠을 겁니다.  

사실 이론적으로 굉장히 조심스러운 문제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라캉의 애매성 내지 한계에 대한 분석은 [담론이론에 관한 세 개의 노트]에서는 더 분명해지게 되죠. 따라서 나중에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에서 제기된 라캉에 대한 비판은 이미 초기 작업에서부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물론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에서 알튀세르의 주장은 이전의 글들과 비교해볼 때 두 가지의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1) 메타이론적 관점의 변화 [담론들의 이론에 관한 세 개의 노트]에서는 말 그대로 메타이론(과학들의 과학)을 구성하려는 야심이 표현되고 있는 데 반해,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에서는 이러한 메타이론적 야심이 포기되고, 그 대신 사상으로서의 프로이트주의를 강조하게 되죠. 이제 알튀세르가 보기에 프로이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운동하고 있는 사상, 작용으로서의 과학입니다.  

2)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에 대한 강조 바로 여기에서 또 다른 차이점이 나오는데, 그것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차이점에 대한 강조입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하나의 완성된 과학을 구성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제안한 이론적 ‘가설들’을 결코 확정적이라고 간주하지 않"은 반면, 라캉은 “무의식의 어떤 과학적 이론 대신에 정신분석학의 어떤 철학을 세상에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주장은 자신의 초기 작업에 대한 일종의 자기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알튀세르는 메타이론, 과학들의 과학을 추구하기보다는 활동, 작용으로서의 과학을 중시하는 쪽으로 관점을 바꾼 것이죠.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그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의 또 다른 상동성을 발견합니다. 이 점은 그 다음해에 발표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에서 좀더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죠.  

도움이 좀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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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마스 님은 알뛰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중세사회와 관련해서 설명하려는 조르즈 뒤비의
‘세 위계’를 추천할 정도로 알뛰세르를 사랑하는 분이시다. 다만 홉스봄에 대해서만은 포퓰리스트에게 찬
성하는 바이다.

한국의 학계는 홉스봄에 대해서는 진보 내지는 좌파만이 아니라 보수 내지 우파도 칭찬한
다. 좌우를 막론하고 홉스봄을 번역해서 팔아 먹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왜 그는
그렇게 인기가 있을까? 그의 글들을 읽으며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려 보았다. 홉스봄은 맑
스주의 역사학자이면서 동시에 아카데믹한 역사학자이다. 우파들은 하나의 학문 분과인 역
사학 안에서 아카데믹한 학자로서의 모습을 그에게서 찾는 거고 진보나 좌파는 그것만이 아
니라 홉스봄이 대놓고 떠드는 맑스주의자로서의 발언을 상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홉스봄이 맑스주의자일까?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그냥 전문적인 역사학자. 다만 좀 개방적인 역사학자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우에게 사
랑받는 것이다.

홉스봄을 읽다 보면 말로는 안 그런데 글을 보면 역사는 역사학자만이 하는 것이지 일반민
중들은 역사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뿌리깊게 갖고 있는 사람이다.

가령 구술사 또는 일반 민중들이 자신의 삶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 이런 것을 토대로

역사를 만드는 것을 굉장히 혐오한다. 역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역사학이라는 학문을 할 수 있는 거지. 일반 민초들은 그러한 자격이 없다라는 생
각을 뿌리깊게 가진 사람이 홉스봄이다. 과연 맑스주의자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위의 포퓰리스트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학문을 할 수 있는 거지. 일반 민초들은
그러한 자격이 없다라는 생각을 뿌리깊게 가진 사람이 발마스 님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
다.

이 사이트에 방문하신 분들 중에 포퓰리스트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