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nation이나 droit de cite의 번역 문제를 둘러싸고 최원 선생과 몇 가지 논의를 주고 받은 적이 있다.
알라딘 서재 주인장들이나 아니면 알라딘에 자주 들르는 분들이면 이 점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된 것 같아서 한 마디 해두겠다.
최원 형과 이 문제에 관해 몇 마디 논의를 했지만, 사실 나는 이 논의를 길게 지속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것은 인터넷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nation 문제 같은 복잡하고 다양한 쟁점들을 다루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았고
그리 생산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droit de cite에 관한 문제는, 논의를 더 계속하기에는
이 문제에 관한 발리바르의 언급이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계속해서 논의를 진행해봐야 특별히 더 유익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원 선생이 상당히 의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논거를
제기했지만, 나로서는 nation에 관한 문제라면 차라리 다른 지면으로 옮겨서 본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어떤 댓글에서 최원 선생에게 nation에 관해 좀더 긴 글을 한번 써보라고 제안한 것은
바로 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사실 확실히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내년에 nation 문제에 관해 한두 편의 글을 써보고 싶었고 또 준비를 하고 있는
참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좀더 긴 호흡을 가지고 논의를 심화하고 싶었다. 최원 선생의 문제제기에 대해 내가
더 이상의 반응을 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최원 선생의 문제제기는 그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고 또 꽤 오래된
독서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곰곰히 따져볼 만한 논점들을 여럿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 년 간 알라딘 서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제한된 몇몇 용도를 제외하고는
지적 논의를 전개하기는 쉽지 않고 또 그다지 적절한 공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쓴 이런저런 글을
올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참고하게 하는 데는 나름대로 유용한 공간이고 이런저런 시사적 쟁점들에 관해 짧은
논의를 주고받는 데도 적절한 공간일 수 있겠지만 좀더 깊이 있는 지적 쟁점들을 다루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고 본다.
우선 인터넷은 감정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그만큼 인터넷은 즉발적인 반응이 오가는
곳이다. 그것이 친근감과 유쾌함, 또는 슬픔의 공유와 위무 같은 것이라면 좋겠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트러블과
소란을 낳기도 한다. 지적 논의에서 그런 것들은 최대한 절제되고 조절될 필요가 있는데, 인터넷은 그것을 어렵게 한다.
그것은 인터넷이 글(물론 동영상이나 이미지, 음성 파일을 올리기도 하지만)을 올리는 곳이기는 하지만, 사실은
지면보다는 직접 말을 주고받는 대화의 공간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의 공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욕망과 감정들이 있는 그대로 표출되는 곳이다. 아마도 인터넷은 새로운 공론장이기 이전에 새로운 욕망과 충동의 장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깊이 있는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더 나아가 인터넷은 문자 그대로 "지식의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공간이다. 지식의 민주주의란 좋은 측면도 있지만
또 (내가 보기에는) 나쁜 측면도 포함하고 있다. 좋은 측면은, 인터넷이 존재하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도 없고 구할 수도
없었던 정보들과 자료들을 좀더 많은 대중들이 얻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에서 그렇다. 나같은 경우도
만약 인터넷이 없었다면 아마 도저히 학위논문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 서적을 구하기 쉬워졌고 외국의 신문이나
방송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면 외국의 수많은 간행물 자료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요즘은 국내외 대학들이나 단체들에서 강의나 강연 동영상 서비스를 많이 하기 때문에, 생생하게
저명한 학자들의 육성을 들을 수도 있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기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터넷이 구현하는 "지식의 민주주의"에는 또 다른 측면도 존재한다. 그것은 누구나 거의 아무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나라들의 경우는 인터넷에 대한 검열과 통제가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경우도 최근 그러한 검열과 통제가 강화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터넷은 상당히
자유로운 편이다. 이처럼 누구나 아무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또 권장될 만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본다면 전문적인 지적 논의에서 이처럼
누구나 아무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꼭 바람직한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인터넷에는 일종의
지적 포퓰리즘이라고 할 만한 것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적 포퓰리즘은 지식의 민주화의 이면이다. 따라서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 제거되어야 할 어떤 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소수의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는
어떤 논의들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것이 바람직한 경우들도 적지 않다. 적어도 학문은 그런 것이다.
인터넷은 때로 그것을 망각하게 하거나 이해 불가능하게 만든다.
아무튼 이번 일이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내가 보기에는 누구도 악의를 품고 있지 않았다. 선의에 의한
폭력과 갈등도 숱하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쨌든 악의적으로 일어난 것들보다는 더 쉽게 해소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