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퍼오는 김에, 알튀세르의 자서전에 대한 소개 기사가 [한겨레]에 실려서 함께 퍼온다.  

이미 15년 전에 한 번 출판됐던 책이라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할 것 같아서 좀 걱정했는데  

그래도 꽤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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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한 천재 철학자의 자기 정신분석

 
 
 
한겨레 고명섭 기자
 








 

»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루이 알튀세르 지음·권은미 옮김/이매진·2만5000원


루이 알튀세르 자서전 증보판 번역본
대표작 ‘마르크스를 위하여’ 집필 뒤
‘무식 드러날까 두려워’ 심한 우울증
말년 ‘과학주의’ 버리고 우발성 주목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20세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1918~1990)의 자서전이다. 1990년대 초반에 한 차례 번역된 바 있는 이 책의 증보판이 한국어로 출간됐다. 알튀세르의 이 자서전은 두 판본의 자서전이 하나로 묶인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976년에 쓴 ‘사실’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자서전과 1985년에 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제목의 두 번째 자서전이 하나로 합쳐져 알튀세르 사후에 출간된 것이 이 자서전이다.

그 두 자서전의 한중간에 알튀세르 삶의 결정적 비극, 곧 ‘끔찍이도 사랑했던 아내 엘렌을 목 졸라 죽인 사건’이 놓여 있다. 이번에 나온 증보판 번역본은 초판본에는 없었던, 150쪽에 이르는 자서전적 자료들이 함께 묶여 그 비극적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이 부록 가운데 알튀세르가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전환을 설명하려고 따로 쓴 ‘스피노자’와 ‘마키아벨리’는 우발성의 유물론 또는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말년의 알튀세르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두 번째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살인 현장에 대한 자기 목격에서 시작한다. 1980년 11월 16일 아침 정신이 든 자서전의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미친 듯이 외친다. “내가 엘렌을 목 졸라 죽였어!” 그는 곧 정신감정을 받게 되고 정신착란 상태에서 살인을 한 것이 인정돼 면소 판결을 받는다. 이 책은 아내 살해라는 이 비극적 사건의 기원을 해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삶을 통째로 정신분석한 것이 이 자서전이다.

부모의 결혼과 출생에 얽힌 비밀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이 자서전이 자기 자신의 정신분석임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알튀세르의 어머니는 루이라는 사랑하던 남자 대신 그 남자의 형 샤를과 결혼한 사람이었다.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루이가 전사하자 형이 대신 청혼한 것인데, 얼결에 청혼을 받아들인 여자는 곧 그 결혼을 후회한다. 동생과 기질이 전혀 다른 형을 아내는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자 여자는 그 아들의 이름을 루이라고 붙여준다. 아들은 죽은 남자 루이의 대리물이었다! 어린 루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존재’, ‘가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루이는 내 어머니가 사랑했던 삼촌이었지 내가 아니었다.”




 

» 루이 알튀세르
 
알튀세르의 이후 삶은 자기 존재의 이 태생적 결함을 메워보려는 ‘생사를 건 투쟁’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욕망을 실현시키려고, 어머니가 사랑했던 남자가 돼 그 사랑을 얻어내려 분투한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이 말한 그대로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삶이었다. 동시에 알튀세르는 그런 가짜 존재, 껍데기 삶을 벗어나 자기 자신으로 사는 진짜 삶을 열망하게 된다. 이 모순적 욕망은 그의 내부에 감당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어머니의 욕망을 거역해 자기 자신이 되려는 욕망이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이 일찍부터 그의 정신에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심어놓는다. 이 자서전에서 알튀세르는 자신이 성인이 된 이후 열다섯 차례나 우울증 악화로 입원 치료를 받았음을 밝힌다.


이 우울증의 한 사례가 알튀세르 자신을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대표자로 끌어올린 저작 <마르크스를 위하여>와 <자본론을 읽는다> 발간과 관련돼 있다. 1965년 가을 거의 동시에 발간된 이 출세작은 그를 지독한 우울증 상태로 빠뜨렸다. 이 자서전에서 그는 도발적일 정도로 솔직하게 자신이 마르크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으며, 자본론도 1권만 겨우 읽은 상태였다고 고백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는 책 발간 직후 그 책들로 인해 자신의 무식과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야 말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견딜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런 파국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나는 그 파국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어 엄청난 우울증에 걸렸다.”

두려움과 우울증의 이 변증법은 이후에도 계속 증폭됐는데, 마침내 그것이 아내 살해라는 극단적 행위로 나타났다고 자서전의 지은이는 해석한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존재의 결핍감 사이에서 고통받다가, 끝내 자기를 소멸시킴으로써 자기 존재의 근원적 부재를 증명하고 그 증명을 통해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이 아내 살해였다는 것이다. 아내 살해는 자기파괴의 매개물이었던 셈이다.

자서전은 바로 여기서 끝나는 듯한데, 알튀세르는 이 지점에서 마지막 한 장을 덧붙여 이 모든 해석에 도전함으로써 이 자서전을 문제적 저작으로 만든다. 그런 수미일관한 과학주의적 해명은 아내 살해 사건을 그 자체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또다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살인이라는 사건은 내적 필연성의 결과로만 볼 수 없고, 그 사건을 전후한 여러 우연적·우발적 요소들이 결부된 결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설명을 통해 이 자서전은 알튀세르 철학의 ‘인식론적 단절’의 한 국면을 보여준다. 명징한 과학주의를 주창했던 그는 말년에 이르러 과학적 법칙성·필연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우리 삶과 역사의 의외성을 마주침(우연한 만남)의 유물론으로 설명해 보려 했는데, 바로 그 사유의 전환을 이 자서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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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03-16 02:39 
    [알라딘서재]알튀세르-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신문 소개 기사 15번 정도 입원해 줘야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지.. 험험
 
 
u2 2009-01-21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명섭기자는 책 안 읽고 아는 것 얽어서 글쓰는 것 같아 서평 아닌 소개기사에 항상 거북했는데, 이 기사는 그남 잘 읽히네요^^

balmas 2009-01-22 01:44   좋아요 0 | URL
잘 읽힌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