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우님이 알튀세르의 {재생산에 대하여} 번역이 좋은지 문의해와서 간단히 몇 가지 번역 예문을 검토하면서 답변을 남겼는데,
어제 자크 비데의 [서문]을 읽어보니까 [서문]은 본문보다 상대적으로 오역이 더 많은 것 같았다. 자크 비데의 [서문]은
그가 {근대성 이론Theorie de la modernite}(1990)이나 {일반 이론Theorie generale}(1999) 등에서 제시한 그의 이론
체계의 관점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요점을 잘 드러내주는 좋은 글이다.
그런데 막상 책을 산 독자들이 오역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아서 오역 몇 가지를 고쳐봤다. 독자들이 읽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 밖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으면 댓글을 남겨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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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비데, [서문을 대신하여: 알튀세르 다시 읽기] 번역 검토
9쪽
“또한 그런 측면은 한편으로 역사에 대한 이런 특이한 비전과, 다른 한편으로 그가 구조의 지성을 위해 자본주의의 사회적 존재에 대해 제안하는 개념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 수정 번역
“이는 또한 역사에 대한 이처럼 특수한 관점과, 자본주의의 구조 및 사회적 존재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가 제안하는 개념성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10쪽 9번째 줄 “장소틀topique” → "장소론"
12번째 줄 “단순하게 이론” → “이론 그 자체”
10쪽 13번째 줄
“겸손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그가 ‘몇몇 제한된 쟁점들’(p. 38)에 대해서 기여하는 것은 ‘여전히 참신한 상세한 설명’뿐이다― ...”
→ 수정 번역
“겸손한 겉모습을 띠고 있지만―그는 ‘몇 가지 제한된 쟁점들’(p. 38)에 대해 ‘제법 새로운 엄밀한 해명’을 제시할 뿐이라고 말한다― ...”
10쪽 아래에서 7번째 줄
“제 1장이 도입하는 주장이 다루는 것은 사회적 갈등과 과학적 작업을 전제하는 형태로서의 철학이고, 새로운 것이 “결정적인 정치-경제적ㆍ과학적 사건들의 결합”(p. 50) 속에서 떠오르는 상황들의 계열로서의 철학사이다.”
→ 수정 번역
“제 1장은 사회적 갈등과 과학적 작업을 전제하는 형식으로서 철학이라는 그의 테제, 새로운 어떤 것이 “결정적인 정치ㆍ경제적 사건들과 과학적 사건들”(p. 50)의 결합conjonction에 따라 생성되는 정세들conjonctures의 연속으로서 철학사라는 그의 테제를 도입한다.”
11쪽 아래에서 11번째 줄
“변모” → “변혁transformation”
아래에서 10번째 줄
“왜냐하면 그것은―결국은 불변하는 것을 종식시키는―변화가 생산되는 불변적인 조건들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 수정 번역
“왜냐하면 그것[구조의 재생산에 관한 이론]은 변이가 생산되는 불변적인 조건들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이러한 변이는 결국 불변적인 것을 종식시키기 때문이다.”
12쪽 아래에서 12번째 줄
“사실 권력은―알튀세르가 뒤에 가서 쓰고 있는 것처럼―”
→ 수정 번역
“사실 권력은―알튀세르가 나중에[1978년에] 쓰고 있는 것처럼―”
15쪽 첫 번째 줄 “고위 권력” → “계급 권력”
8번째 줄 “기여하지 못했다” → “기여했다”
15쪽 마지막 줄~6쪽 첫 번째 줄
“공적 제도들은 ‘계급 투쟁’의 기관들이고, 계급 투쟁에서 둘 가운데 하나가 인정되며, 계급 투쟁은 이러한 지배의 재생산을 보장해 준다는 것이다.”
→ 수정 번역
“공적 제도들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지배하는 ‘계급 투쟁’의 기관들이며 ...”
16쪽 마지막 줄
“그 방식을 국가 이데올로기로서의 국가 속에 구조적으로 포함시킨다.”
→ 수정 번역
“이데올로기를 국가 이데올로기로서 국가 속에 구조적으로 포함시킨다.”
17쪽 11-12번째 줄
“모든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인 주체들을 ‘구성해 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 수정 번역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들로 ‘구성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18쪽 위에서 두 번째 줄
“각자를 ‘자유 평등’한 것으로 정위하는 인권 선언은 주체는 최고(souverain)이고 최고 존재(le souverain)는 주체이며, 나 자신을 최고인 나 자신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 수정 번역
“각자를 ‘자유 평등한’ 사람으로 정립하는 인권 선언은 신민/주체는 주권적이고 주권자는 신민/주체라고 선언하고(déclare le sujet souverain et le souverain sujet), 또 나 자신은 주권자로서 나 자신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자크 비데가 강조하려는 것은 인권 선언이 철학적, 정치적으로 함축하는 전복적인 의의다. 이를 위해 그는 “sujet”라는 단어에 담긴 이중적인 의미와 함께 “souverain”이라는 개념이 내용상으로 전도되는 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한다.
발리바르가 일련의 연구에서 강조하듯이 sujet라는 말은 원래 정치학에서는 “신민”(臣民), 곧 지고한 권력을 가진 주권자(왕)에게 예속된 백성을 가리켰다. 그런데 인권 선언과 동시대의 철학자들(루소, 칸트 ...)에 의해 sujet는 예속된 백성이 아니라 자율적인 존재자, 곧 주권적인 존재자를 갖는 것으로 의미가 변화되었다. 따라서 비데의 윗 문장에서 “신민/주체는 주권적이고”이라는 표현은 그 이전까지 서로 확연히 대립하는 존재자들로 간주된 신민 sujet가 주권자가 동일시되는 전복적인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곧 이제 sujet는 더 이상 주권자에게 복종하는 백성이 아니라 그 자신이 주권적인 존재자, 곧 주체가 됐다는 것이다.
다른 한 편 “주권자는 신민/주체라고”라는 표현은 이러한 전복의 또 다른 측면을 표현한다. 곧 이제 주권자는 더 이상 이전처럼 신이나 왕 같은 초월적인 존재자가 아니라 바로 sujet 자신, 백성들 자신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 주권자가 된 것이고, 이 때문에 sujet는 이제 더 이상 신민이 아니라 주체인 것이다.
밑줄 친 부분은 이처럼 상당히 복합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번역되어야 하는데, 김웅권 씨의 번역은 이런 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18쪽 9번째 줄 이하
“규약” → “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