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잘 지내시죠? (짧은) 방학이라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읽다가, 혹 2쇄나 3쇄에 반영되면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사소한 제안들 몇 가지와 형이 한 번 확인해 주십사하는 몇 구절에 대해서 몇 자 적습니다. (메일 주소를 몰라서, 어디다 적을까 고민하다가 여기에다가 적습니다. 토론하자는 건 아니구요^^ 제가 불어본을 한국에 두고 와서 영어본을 참고했는데, 그래서 저도 긴가민가하는 부분을 적었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14쪽) ‘질문의 가능성은 아마도 더 이상 한 가지 질문은 아닐 것이며…’ -> 이건 사소한 제안입니다만, ‘한 가지 질문’이라고 하면 ‘한 가지 질문, 두 가지 질문…’이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듯 하게 들립니다. 여기서 ‘질문의 가능성’이 현재를 넘어서 미래/타자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질문’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질문의 가능성은 아마도 더 이상 하나의 질문은 아닐 것이며…’라고 하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15쪽) ‘칸트가 정확히’ -> ‘칸트가 정확히/정당하게’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하신 것 같은데, 특히 이 부분은 칸트의 Wuerdigkeit를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두 가지 뜻을 병기하는 게 어떨지요.

36쪽) ‘4막 3장’ -> 영어본에는 ‘4막 2장’으로 나와있는데, 어느 쪽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37쪽) ‘그 자체로, 진실로 유령을 다루는 학자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것…’ -> 영어본에 따르면, 여기에 한 문장이 누락된 듯 합니다. ‘그 자체로, 진실로 유령을 다루는 학자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학자는 유령을 믿지 않았고, 유령성의 잠재적 공간/장소라고 불리는 것 역시 믿지 않았다. 실재적인 것과 비실재적인 것…’

    ‘아마도 마셀러스는 고전적인 학자는 환영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만한..’ -> ‘아마도 마셀러스는 고전적인 학자는 환영에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할 만한..’ 불어 전치사 a의 애매성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마셀러스가 학자인 호레이쇼에게, 유령에게 말을 걸어 보라고 말하는 부분이 아래에 나오는 걸 봐서는 ‘환영에게’라고 번역하는 게 맥락에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44쪽) ‘대문자 철학의 종말, 헤겔,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및 코제브가 덧붙인 부록들, 그리고 또한 코제브 자신에 대한 부록들’ -> ‘헤겔,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의 코제브적 유언, 그리고 또한 코제브 자신의 유언’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코제브의 사망선고를 헤겔…하이데거의 철학(형이상학)의 종언 선언과 유비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헤겔..하이데거가 한 유언은 코제브적인 유언이고 또 코제브 자신의 유언도 있을 듯 합니다. ‘유언’은 본인들이 죽을 때 남기는 것이므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망선고’ 정도로 의역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 또는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이 오랫동안 인정하지 않았던 것’ ->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 또는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이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던 것’  영어본이 의역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맥락상, 공산주의 국가의 만행을 우리들이 알고 있었고, 그것을 감출 수도 혹은 숨길 수도 없었다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긴 합니다.

45쪽) ‘이는 시사적인 질문이다.’ -> ‘이는 오늘/오늘날의 질문이다.’  아마 ‘역사의 종말에 늦을 수 있는가’는 데리다가 발표하던 그 날의 질문이기도 하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108쪽에도 있습니다) 오늘날의 질문이기도 하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나가는 김에, ‘지진아’는 너무 강한 표현인 것 같아서 그냥 ‘지각생’정도면 어떨지.. 막차가 지난 뒤에 막차를 타려고 하는 사람을 ‘지진아’로 부를 것 까지야…

49쪽) ‘어떤 장-래 못지 않게 어떤 과거, 어떤 고유 명사의 과거를 명명한다면’ -> ‘어떤 과거, 어떤 고유 명사의 과거 못지 않게 어떤 장-래를 명명한다면’ ‘depuis Marx’가 과거를 넘어서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므로,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게 자연스러울 듯… 그래야 ‘고유 명사의 고유명사는 항상 도래할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 듯 합니다.

52쪽) ‘곧 귀신처럼 달라붙어 있는 사물이 되고, 포착 불가능한 유령이 되며, 기억과 번역이 된다.’ -> ‘…기억과 번역의 포착 불가능한 유령이 된다.’ 영어번역은 유령이 기억과 번역의 유령이기도 한데, 맥락상 이게 말이 되는 듯 합니다. 한 가지 번역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유령이라는 의미에서요.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이 말들은 여기서 몇 가지 주요 가능성들 주위로..’ -> ‘이 요구들은 여기서 ...’ 저도 자신은 없는데, 여기서 지시대명사가 받는 게 ‘요구들’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합니다.

‘그것이 부패하고 있는whither’ -> ‘그것이 부패하고 있는wither’  오타네요^^

54쪽) ‘이러한 이중적 기입이야말로 ‘the time is out of joint’라는 햄릿의 말의 수수께끼를 응축하는 것이고’ -> ‘…라는 햄릿의 말의 수수께끼를 정확히/정당하게 응축하는 것이고’  요건 justment이 들어가면 문장이 살 것 같네요.

57쪽) ‘이러한 범죄의 원초성이라는 조건 아래에서만..’ -> ‘이러한 범죄의 원초성, 즉 타자/타인의 범죄의 원초성이라는 조건 아래에서만..’ 구조상, 관계절을 앞으로 빼신 것 같은데, 뒤의 문장의 주어가 ‘타인/타자의 범죄성’인데다가, 내용상, 범죄 일반의 원초성이 아니라, 타자가 저지른 범죄의 원초성을 말하는 부분이니까 넣어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구도 시인할 수 없는 순간에, 타인[이 범죄자라는 것-옮긴이]을 고백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책임을 –옮긴이] 고백하는 것 – ’ -> ‘누구도 시인할 수 없는 순간에, 타인을 고백하는 자기-고백 속에서’ 우선 타인을 고백함으로써 스스로 고백하는 것은 내용상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햄릿이 뒤틀린 세월을 ‘바로 잡으려는’ 자기 고백을 통해서, 그 고백 속에서, 타자를 고백하는 것이므로, 자기-고백 속에 타자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고백이 우선이겠지요. 그리고 형이 주를 다신 것처럼 그 자기 고백은 ‘타인이 범죄자’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책임의 고백을 함으로써 ‘타자 자체’를 고백한다고 하는 것이 맥락상 더 맞지 않을까 합니다.

‘마치 그가 자기 자신을 왜곡/잘못을 바로 잡을 사람으로, 법과 마찬가지로…’ -> ‘마치 그가 자기 자신을 왜곡/잘못을 바로 잡을 사람으로, 정확히/정당하게, 법과 마찬가지로..’

58쪽) ‘오히려 유령으로서 깃들어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 ‘오히려 유령으로서 깃들어 있었던 게 될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전미래시제인 것 같네요.

61쪽)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에 대한 배려가 복수나..’ ->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복수나..’ 영어본은 concern으로 되어 있는데, 앞에서 햄릿의 to be or not to be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존재해야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더 자연스러울 듯 합니다.
68쪽) ‘채무 없고 유죄 없는 이러한 선사’ -> ‘채무 없고 유죄 없는 이러한 선사의 역설’

85쪽) ‘곧 오늘날 어떠한 특수한 과학도 그것을 환원시킬 수 없는’ -> ‘곧 오늘날 어떠한 특수한 과학도, 그것이 인문학이든 아니든, 그것을 환원시킬 수 없는’  요 부분이 누락된 듯...

91쪽) ‘이러한 경계의 실존을 계속 믿었을 것이며’ -> ‘이러한 경계의 실존을 계속 믿었던 게 될 것이며’  전미래시제이긴 한데, ‘계속’이란 말이 있어서 굳이 전미래로 번역 안해도 될 것 같지만. 그냥 지나가는 김에…

97쪽) ‘(이는 보충적인, …이점이다.) 위대한 시인의 천재/정령…’ -> ‘(… 이점이다.) 우리가 살펴보게 되겠지만, 종교는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여러 다른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결코 아니었다. 위대한 시인…’ 한 문장이 누락된 것 같습니다.

101쪽) 셰익스피어 영어 인용문의 단어가 누락된 듯… ‘but perform non’ -> ‘but perform none’ / ‘if thou dost perform’ -> ‘if thou dost not perform’ 근데, ‘not’을 추가하면 번역이, ‘만약 약속을 실행한다면 파멸할 것이다’ -> ‘만약 약속을 실행하지 않으면 파멸할 것이다’가 되어야 할까요?


104쪽) ‘미화하는 이념화의 과정이었다.’ -> ‘변용(變容)하는 이념화의 과정이었다.’ transfiguration은, 형이 옮긴이 주에서도 ‘미화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의 모습이 변화산에서 인간의 모습에서 신의 모습으로 변했던 것을 말하는 단어이고, 여기서는 물질인 화폐가 유령의 모습으로 변화는 이념화의 과정을 의미하므로 ‘미화’보다는 ‘변용’이 이러한 의미를 충분히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105쪽) ‘구두쇠, 수전노, 투기꾼은 교환가치의 성자가 된다.’ -> ‘...교환가치의 순교자가 된다.’ 영어본에는 ‘성자’ 부분이 martyr로 되어 있는데, 불어본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환가치를 죽임으로써 순수한 교환가치를 얻기 때문에 ‘순교자’가 어떨지요.

107쪽) ‘그는 <<공산당 선언>>이 전쟁을 선언하는 낡은 유럽의 모의자들로서의 환영을 푸닥거리하려고 했던 게 될 것이다/..유럽의 모의자들과 같이 환영을 불러오려고 했던 게 될 것이다.’ -> ‘그는 <<공산당 선언>>이 전쟁을 선언하는 낡은 유럽의 모의자들처럼 환영을 푸닥거리하려고 했던 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공산당 선언>>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형이 옮긴이 주에서 쓰신 거처럼 1의 b처럼 해석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1의 b 부분은 대부분 셰익스피어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미상, 92-93쪽에 나오는 것처럼,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그것에 대항에서 전쟁을 선언하는 낡은 유럽의 모의자들이 그 유령을 푸닥거리하기 위해서 모의한 것처럼 마르크스 역시 그들처럼 역설적으로 유령을 푸닥거리한다고 번역하는 게 옳을 듯 합니다. 그러니까 옮긴이 주 87은, 제가 보기엔, 좀 과도한 해석 같습니다. (유럽의 모의자들은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축출하려고 동맹을 결성했지 그 환영을 불러오려고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108쪽) ‘그리고 이는 오늘날, 아마 내일도, 우리의 문제가 될 것이다.’ -> ‘그리고 이는 오늘, 아마 내일도, 우리의 문제가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콜로퀴움이 열리는 이틀 동안, 그러니가 발표하는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111쪽)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매우 타자론적인 동일성-존재론’ ->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질적인 것을 같게 만드는 존재론’ -> tauto라는 접두사가 다른 것을 같게 만드는 접두사이고,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토톨로지는 죽음 및 타자의 타자성 같은 생명과 이질적인 것을 동일한 것으로 귀착시키는 존재론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이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 주면 좋을 듯 싶습니다. ‘타자론적인 동일성-존재론’은 왠지 타자 중심적인 동일성 같은 느낌을 주네요.

 p.s. 쓰고 나니, (좀) 사소하네요^^ 아직 1장까지밖에 못 읽었는데, 나머지는 내년 여름방학전에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읽을수록 중요하고 좋은 책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대선날 멀리서 답답한 마음에 (답답하게) 몇 자 적었습니다. 그럼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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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7-12-20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재환아, 아주 꼼꼼히 읽었구나. ㅎㅎ
내가 좀 읽어보고 내일쯤 답변해줄게. :-)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