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친위쿠데타 1년을 돌이켜보며 윤석열의 쿠데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담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2.3 쿠데타가 보여준 것은 한국의 헌정 질서 자체 내에 처음부터 극우 과두제 세력이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정상적인’ 헌정 질서의 회복을 목표로 삼아서는 이번 쿠데타를 통해 드러난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더욱이 기존의 민주주의 질서는 이미 신자유주의를 통과하면서 ‘포스트민주주의’로 전락한지 오래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냉전 극우세력 및 신자유주의적 과두제 세력의 지배에서 벗어나거나 그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태령 대첩의 본질이 무엇인지 거듭 질문해봐야 한다. 남태령 대첩은 민주주의의 기초에는 서로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을들의 상호증언의 연대가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국민주권이 민주주의의 토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을들의 상호증언의 연대에 입각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명목적인 국민주권만을 내세우는 일은 결국 갑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좋은 투표를 통해 좋은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본령이라고 보지만,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주제 및 귀족제 원리에 입각한 사고방식이다. 우리에게는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 민주주의자가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유능하고 좋은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쁜 지도자가 선출되더라도 그 사악한 힘이 제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이고 공론적인 힘을 구축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대통령, 대법원장, 재벌 총수 같은 우두머리들에게 과도한 권한과 힘을 부여하지 않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초는 국민(인민)에게 있다고 헌법은 말한다. 그런데 왜 국민, 특히 을들로서의 국민에게는 (좋은) 지도자에게 통치 받을 수 있는 권리만을 할당하는 것인가? 을들로서의 국민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권리까지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길을 생각해보는 대담한 상상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