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진태원 선배 말씀을 제가 좀 거칠게 축약을 해버려서 오해를 했다고 보신 것 같습니다.
진선배의 아래의 구절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2부 정리 37과 38에서 증명된 것, 곧 “모든 것에 공통적인 것과 부분 및 전체 안에서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은 어떤 독특한 사물의 본질도 구성하지 않는다”(정리 37)와 “모든 것에 공통적이고 부분 및 전체 안에서 균등하게 존재하는 것들은 적합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데서 따라 나오는 규정입니다.
따라서 notio communis에서 “공통적”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 모든 물체들 또는 몇몇 물체들이 공통으로 지니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요컨대 실재적인 기초(사물들 또는 물체들에 공통적인 것)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초를 적합하게 인식하는, 표현하는 notio가 notio communis인 셈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notio communis와 일반적인 notio, 곧 실재적인 기초를 갖지 않는 상상의 양태나 사고의 양태로서 notio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얼렁뚱땅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스피노자가 이곳에서 말하는 것은 '모든 사물들에 공통된 것은 그 자신 사물들의 일부인(즉 그 자신도 사물인) 인간에도 있으며 이 공통된 것에 대해서는 인간이 필연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지적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저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의 해당부분을 다시 읽어봐도 여전히 그렇게 읽히는군요. 당연히 인식 대상과 인식하는 자 사이의 공통성이 common notion의 common이 지시하는 것이다라는 말 아니겠습니까? 좀 표현이 거칠었긴 하지만 크게 문제로 느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에서 발리바르가 한 말의 앞에 나오는 말을 조금 더 읽어보기로 하죠. 이미 읽어보셨겠지만 함께 읽어보면 또 다른 맛이 나니 말입니다.
"실제로 어느 누구도 자신의 견해들을 표명함 없이, 친구들로 이루어진 회합에서라도 그것들을 교통하지 않고, 전적으로 혼자서 사고할 수는 없다. 사고의 장소는 사적 개인이 아니며, 그것의 철학적 실체(hypostase)인 의식[양심]의 은밀성이 아니다. 사고의 장소는, 그 한계 또는 범위가 무엇이든, 교통 그 자체이다(cf. 신학-정치론 20장, pp. 328-329). 우리는 왜 윤리학이 “나는 사고한다”[cogito―데카르트]가 아니라 “인간은 사고한다”라고 공리화하고 나서, 인간은 자신의 의념들이 공통의념들로 되는 만큼만 사고한다는 점을 보여주는지 이해한다."
저는 여기서 저 마지막 구절을, 인간은 자신의 "통념"이 말하자면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실재적인 관계에 대한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공통통념"이 될 수록 많이 사고한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말로 읽을 도리는 없다고 봅니다. 도저히 맥락과 맞질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꾸 다른 함의를 이 문장에 실으시려고 하시나 하고 궁금해하다가 진선배가 이번에 주신 질문을 보고, 아!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선배님은, "인간은 사고한다"고 스피노자가 말했는데, common notion없는 사람은 그렇다면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말이냐라는 식의 질문을 주셨지요.
보다 정확히 옮기면,
"제가 볼 때 최원 형 생각의 난점은 notion은 사적이거나 개별적이고 common notion만이 공통적이다라고 간주한다는 데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인간은 사고한다Homo cogitat”는 {윤리학} 2부의 공리는 common notion을 가진 사람에게만 적용되지, notion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전혀 적용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 질문은 제 관점에서는 질문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질문이고 따라서 어폐가 있는 질문인데, 그것이 묘하게 선배님의 생각과 저의 생각의 차이를 잘 드러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사고의 장소는 특정한 개인이 아닙니다. 위에서 발리바르가 말하듯이 그것은 교통 그 자체이지요. 그리고 "인간은 사고한다"는 말도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특정 개인을 지목하여 이런 사람은 사고를 하냐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개인은 '의식'을 하겠지요. '사고한다'는 것은 '의식한다'는 것과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notion은 기본적으로 '의식'에 속할 것입니다. universal notion은 원인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효과/결과의 보편성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에서 의식에 탁월하게 속하겠지요.)
제가 보기에 진태원 선배의 해석의 난점은 "인간은 사고한다"를 "모든 개개의 인간은 사고한다"(each man thinks or everyman thinks)로 은연중에 바꿔 놓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적 개인을 사고의 장소로 보는 데카르트 입장이지 스피노자의 입장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개개의 개인들로 말하자면, 이들은 모두 항상 이미 교통의 과정 속에 있고 거기에서 관개체적인 사고의 과정은 항상 이미 시작되어 있느니만큼 거기에 참여(?)하는 한에서 어떤 모종의 합리성(이론적인 합리성까지는 아니라도 실천적인 합리성이라면 말입니다)을 항상 이미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 동안 선배님도 토론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장진범님께 책을 맡겨 두는 것은 좀 뭐하군요. 장진범님도 할일도 많을텐데. 나중에 한국에 들어가시면 이메일 한 번 주십시요. 그때 댁으로 보내드리든지 사정이 허락되면 직접 찾아뵙고 드리든지 하겠습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좋은 추석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