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학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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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집에 와 문무학 시집 <홑>을 받아 펼친다.
오랜 인연을 가진 선배의 일곱 번째 시집이라 반가움과 고마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밀려온다.
그러나 먼저 눈에 든 것은 책의 판형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눈에 익힌 국판이나 4,6배판이나 신국판이나 크라운판이 아닌 줌안에 넣으면 쏙 들어가는 아담 사이즈였다.
아니 이것은 말 그대로 조선시대 수진본(袖珍本)이나 좁쌀책의 변형이 아닌가. 예전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유생(儒生)들이 사서오경(四書五經)이나 시문류(詩文類)를, 학승(學僧)들은 불경을 조그만 책으로 만들어 깨알 같은 글씨를 적어 소매 속에 넣어 두고 수시로 꺼내 보았다는데.....

그러나 내 눈길을 다시 끈 것은 한국판 하이쿠라고 할까 극서정시라 할까 촌철살인의 지극히 짧은 말로 이끌어 내는 울림과 여운이었다.
어디에서 촉발된 관심이 어떤 연유로 이렇게 색다른 장정과 형식과 내용을 이끌어 내기에 이르렀는지는 몰라도, 참 재미있고 새롭고 단순한듯 툭툭 내던지는 시편들이 편편마다 아름답기 조차 하다.
과문한 탓인지 나는 이런 류의 시로는 부손이나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 몇 편 밖에는 달리 아는 것이 없지만....문무학 시인의 ,홑,에서 또 몇 편을 취해 가슴 저 밑바닥에 갈무리해 두고 수시로 소매 자락 안쪽을 더듬듯 꺼내어 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논>
아버지
놀다 오시면

이팝꽃이
피던 곳

<밭>
호미로
밑줄을 긋던

울 엄마의
책 한 권

<땅>
초록에
젖물려 놓고

하염없는
어머니
...........................................

절창이다!
달리 무슨 구구한 사설이나 설익은 감상 따위 드러내어 밝히고 깨씹으며 해설을 붙이랴.
여섯 해 전 '낱말'이란 시집을 통해 한껏 펼쳐 보였던 시를 읽는 재미가 한층 더 농익어 다시 한 진경(眞景)을 이루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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