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밤]-이기윤

함께 덮고 자던 이불을 내 아이가
돌돌 감고 혼자 잔다 잠결에
나는 또 아버지 이불을 뺏어 칭칭
몸에 감고 잔다

아버지는 혼자 아버지를 덮고 주무신다
아버지라는 이불이 추우신지 몸을 웅크리고
가끔 마른 기침을 하신다

깜짝 잠이 들어버린 뒷마당
또래의 꾀양나무는 하얗게 눈썹이 세어가고
내 나이 한 살이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는 섣달 그믐밤

긴 밤 꿈을 꾸며
꿈을 잃어가며 밤새도록 지금 나는
아버지가 되어가는 중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
그 아득한 행간에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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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갑니다.
망년회다, 송년회다, 송년의 밤이다, 계추다...
하냥 섭섭해
무어 그리 지우고 싶은 일 그리도 많던지
잦은 술자리 핑계 뒤끝에 보니 이 해도 달랑 이틀이 남았습니다.

우연히 건네 받은,
2005 을유년
"시는 만고 역적이다"-시와 시학 오십호 앞에-고은(詩人)
하늘엔 별, 땅에는 꽃, 사람에겐 詩
'시와 시학사,에서 펴낸 달력의 시를 읽다가

문득 가슴 저며오는 그리움 앞에 잠시 숙연해 졌습니다.
당신 가신지 20년
두 번이나 강산이 바뀌고
아버지라는 키 큰 나무
그 아래 당신 품에 안겨 잠들던 그 때가 문득 그립습니다.

영락없이 나도 아버지가 되어가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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