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상가)에 모인 구두들]-유홍준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 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亡者(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 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 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북천)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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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삶이란 게 다 뭔지?

아랫 고을 윗 마을 골골 통기온 e-mail 받고 賻儀(부의) 하나 써 들고 문상 간다. 일면식도 없는 이의 죽음을 핑계삼아 돼지고기 놓아라, 소주 떨어 졌다, 국밥 좀 더 다오, 하염없는 주문을 늘어 놓는다. 구두 밑창같이 질기고 힘겨운 하루의 보행 저마다 풀어 놓으며 웬 푸념들이 그리도 많으냐.

누구랄 것 없이 광땡을 쪼으며 비고도리를 꿈꾸고 쓰리 고에 흔들고 피박! 씌우려 화투짝을 때리면 잊고 살아 온 무엇이, 애써 감춰 온 그 무엇이 보이는가.

때로 수취거부가 되어 돌아 온 부음을 읽다 보면 다음은 네 차례다.

밤 깊어 맨숭맨숭 음주단속을 걱정하거나
엉망으로 취한 몸 대리운전을 기다리며
조금씩 자세를 낮추고 담벼락에 오줌을 갈기다 보면
저 북망산천쪽으로 별 보인다
시름 겨운, 채 뫃다한 , 근심 끊이잖는 우리네 사연들 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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