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를 보았네]-함기석


나는 보았네
나는 양파 속에서 잠자는 소녀를 보았네
나는 밤하늘을 떠가는 피아노를 보았네
나는 태양을 향해 헤엄쳐 오르는 돌고래 떼도 보았네
나는 얼음의 산정에 알을 낳는 히말라야 수탉들도 보았네
나는 노래하는 구두도 보았네
나는 보았네
손에 손을 잡고 춤추는 집들을 보았네
토슈즈를 신고 빙글빙글 춤추는 산들을 보았네
하얀 스카프를 휘날리며 달리는 바다도 보았네
나는 바다 위의 포도밭도 보았네
그 포도밭에서 구름을 따먹는 어린 기린들도 보았네
나는 보았네
영원히 돌 속에 갇혀 우는 새를 보았네
영원히 물 속에 떠돌며 우는 달을 보았네
나는 보았네
한 여자를 보았네
생이라는 이 거대한 사막의 한복판에서
아름답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보았네
이 모든 것을 보았다는 한 여자를 보았네
이 모든 것을 내게 말해준 한 여자를 보았네
그녀는 눈이 없었네
그녀는 입도 없었네
사람들이 모두 무섭다고 그녀를 피했지만
나는 사랑했네
몇번인가 내 품에서 앵두나무처럼 울던 여자
나의 고해소인 여자
내 눈보다도 내 입보다도 더 그녀를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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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을 빌어
하늘과 땅 바람과 햇빛과 바다와 영원의 이름을 빌어
잘 버무린 추억과 모과향기로 익어간 그리움과 온전히 아문 상처 그토록 빛나던 삶의 이름을 빌어

앵두나무 빨갛고 땡그란 열매 같은, 쪼작쪼작 그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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