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이재행

인생은 더러
외상일 수도 있는 일이라고
아내를 설득시켜 본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외상을 좋아하느냐며
아내는 내 말에 함정이 있음을
눈치로 알고 있다

내 말의 위험한 함정을
아내가 알고 있다는 것을
나는 모르는 바 아니면서

내 아내의 첫사랑의
눈부신 황혼녘을
나는 훤히 알고 있으면서

인생은 잡지의 표지나
혹은 안개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을 달리 했더니

서러운 나의 所以(소이)를 눈치 챈 아내는
그런 허황한 소리가 어디 있느냐며
인생은 엄연하게
현금이라고 못을 박았다

사는 일이 어려워
오늘은 현금으로 술을 마신다
모르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
하루의 溫氣(온기)로 술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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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정도 터울 지는 형을 처음 만나 '형용사의 가을"이란 시집 한 권을 건네받은 그때가 봄이던가 가을이던가.
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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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마신다.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씹으며
형의 독설을 추억하며 술을 마시곤 한다.
어느날 문득 형은 인생은 엄연히 현금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안간힘 끝에 진작 대봉성당 장례미사를 거쳐 금곡 천주교 장미공원으로 떠나 가고.....
요즘은 사는게 너무 절실해
때로 인생이 외상이었으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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