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가다 문 밖 동그라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국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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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모든 것이 비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비 그을 곳 없어서 일 것이다
마흔 날 마흔 밤을 아직도 끝간데 없이 비내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겐 아직 그칠 기색없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