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임의
다시 오진 못하는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미당'서정주'의 "귀촉도"3연중 앞부분

장도

소재는 백옥, 금, 은으로 만들었고, 형태에 따라 팔각장도 등으로 이름이 붙여진다.

장도(粧刀)는 평소 소지하고 다니기에 편리하게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한다. 흔히 이 땅의 규방 부인들이 장신구 겸 보신용으로 취했는데, 노리개로 차고 다니는 것을 패도(佩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을 낭도라 했으며, 나이든 부인네들은 실용성에 따라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기도 했다.

은장도는 여러 형태가 있어 원통형, 을자형, 그리고 네모 또는 여덟모의 각을 진 다각형도 눈에 띈다. 그러나 흔히는 손잡이 길이와 칼집 길이가 비슷한 채 그 끝이 둥글리면서 부리를 서로 반대쪽으로 살짝 휘어지게한 을자형이 많다.

칼집의 무늬가 화사한 점도 예외가 아닐 테지만 여기에 더해 단순한 끈외에 매듭과 보옥을 달아 아주 이쁘게 의장하여 노리갯감으로도 훌륭하게 장식했다. 부인네 말고도 병사나 지체가 있는 사류(士類)에서도 이것을 간직했지만 이처럼 멋을 내 단장하지는 않았다. 패도란 말은 옛사람들이 수건 따위를 옷고름이나 허리띠에 차고 다니는 걸 <패(佩)>라 한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은장도는 칼집의 재료와 장식한 보석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바, 대추나무외에 무소뿔인 서각, 소뼈인 우공을 비롯하여 흑각(黑角), 침향(沈香), 흑시(黑枾), 산호, 비취, 호박, 대모, 금패(錦貝), 옥, 밀화가 사용되기도 한다.

제작과정이나 재료는 중요하지 않다. 은장도에 담긴 한국 옛 여인의 삶의 자세와 슬기에서 더욱 멋이 돋아난다. 그것은 정결을 지키고자 한 서릿발 같은 결의의 표상으로서이다. 난리나 사화와 같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연약한 부녀자들은 정조를 보호받기가 어려웠다. 양가집 여인이 몸을 더럽힌다는 것은 죽음보다 두려운 일이었다. 또 집안이 역적으로 몰릴라치면 사대부가의 부녀자는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관기로 전락하는 오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런 환난 말고라도 규방을 침입하여 음행이 일어났음직한 세월을 우리는 얼마든지 상정해볼 수 있다. 연약한 여인이 무엇으로 물리치고 방패삼으랴. 그래서 은장도가 소용되었다. 적을 격퇴하는 무기로서가 아니라 자위수단처럼 자결의 방편으로서 이용되었다.

하늘과 부모가 준 육신을 자해함은 큰 죄악이지만 정결이 생명보다 소중했던 사회배경에선 이것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졌었다. 잠자리에서도 장도를 품고 있다가 위난을 당하여 칼을 빼어드는 여인, 상대방을 어쩌겠다는 것이 아니라 해를 입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결의에서 은장도는 애틋한 정서를 환기시킨다.

장도

잘 만들어진 은장도는 어머니가 출가하는 딸에게, 임종을 맞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대물림한다. 몸을 조심하고 집안의 명예를 지키라는 무언의 교훈이 이로써 전수된다. 하나의 동작이 수천 마디의 타이름이나 경계의 훈도보다 더 명료한 경우가 이래서 가능하다. 어여쁘고 사치스럽기까지 한 은장도에 이러한 서슬 푸른 내훈이 깃든 점도 소중하지만,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하는 염의까지 깃들었으니 이 얼마나 미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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