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대

지아비를 위해 경대 앞에서 단장을 하는 아낙네의 자태는 그지없이 고혹스럽다. 거울 앞에 앉을 때는 자기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남에게 제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까를 더욱 염두에 두게 되므로 거기에는 자연 애교와 미태가 끼어들게 마련인 때문이다.

목침 겸용 좌경(왼쪽) / 좌경(오른쪽)

확실히 거울은 여심의 허영을 부채질하고 관심을 집중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무르녹는 봄밤에 임을 기다리면서 펴든 손바닥만한 동경(銅鏡), 산골길을 가다가 계곡물에 땀을 훔치고 지그시 용자를 응시했던 수경(水鏡), 또는 곧 자리에 들 낭군을 기다리면서 목덜미의 분칠이며 몸매를 감싸는 옷매무새를 살폈던 체경, 그 어느 것도 마음을 다잡아매는 신통력은 매한가지였다.

고려조의 대문장가 이규보(이규보)는 일찍이 '경설(경설)'에서 이렇게 설파한 바 있다. <거울이란 얼굴을 보는 것이다. 얼굴에 불길한 것이 묻지나 않았는가, 또는 얼굴빛이 평화스럽지 못하지나 않은가 하는 것을 살피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는 거울을 대할 적마다 그 거울의 맑은 본성을 취해 얼굴에 비치는 거울처럼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하여 세상을 비추었던 것이다.>

어떤 연유로든 남녀에게 공히 요긴했을 거울은 세월을 거슬러 오를수록 귀했다. 아마도 문명시대 이전의 원시인들은 돌 한쪽 면을 갈아서 쓴 석경(石鏡)을 사용했을 터이다. 오늘날에도 거울을 두고 <색경>이라 발음하는 사연도 여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에서도 여느 지방과 다름없이 동경과 철경(鐵鏡)을 많이 남겼다. 사실, 구리를 재료로 한 푸르스름한 동경은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고려조와 근세조선기를 일관하며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던 거의 유일한 거울이었다. 그런 사이에도 중국으로부터 은거울, 수정거울, 후대에 와선 유리거울이 들어와서 상류계층에 호기심을 자아내며 귀애되었을 건 짐작키 어렵지 않다.

이처럼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을 초월해서 선호되었던 거울에의 갈증은 1880년대에 우리 나라에서도 판유리공장이 세워짐으로써 일시에 해소되기에 이르렀다. 유리 뒷면에 아말감을 올려서 빛이 반사됨으로 인해 모든 물체를 비추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주로 청동거울을 거울걸이(鏡架)에 걸어놓고 비추어 보았거나, 유족한 집안에선 경대함의 윗뚜껑을 젖혀 거울을 40도쯤 각도로 세우게 해서 몸을 숙인 채 바라본 경대가 있었다. 이 경대야말로 지난 시대의 여인의 숨결과 정서를 대변해주는 멋진 유산이다.

좌경

조선시대 후기에 거울이 보급되면서 제작되기 시작한 이래 그 사용이 널리 유행되었다. 뚜껑을 열면 뚜껑에 달린 경첩이 꺾어져 뚜껑 안쪽에 부착된 거울이 비스듬히 서도록 지탱해준다.

경대는 목재를 써서 직사각형의 함 모양을 이룬 화장용구였다. 흔히 윗뚜껑 내면에 동경이나 거울이 부착되어 있기도 하고 혹은 뚜껑을 반닫이로 접어 열고는 안쪽에 따로 거울판이 있어서 그 위에 40도 각도쯤 세워지게 구성된 것도 있다. 경대엔 대개 서랍이 달려 있어서, 한 개로 깊게 달린 것이거나 앝은 서랍이 세 낱 층층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서랍 속에 화장구라 할 빗, 빗치개, 비녀, 뒤꽂이, 족집게 따위가 옹기종기 포개져 있고, 또 다른칸에는 분접시와 분물통, 연지 반죽그릇 같은 화장품이 들어앉았다. 셋째 칸에는 머리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들이 알뜰히도 모아져 있기 십상이다. 머리카락은 신체의 일부여서 함부로 버리지 않고 이처럼 모았다가는 정월 초하룻밤에 한꺼번에 태우곤 했다.

경대는 생나뭇결에 옻칠을 한 것, 홍칠을 한 것 혹은 나전칠기를 한 것 또는 화각이나 대모(玳瑁)장식을 한 것 등으로 다양한데,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전아하기 짝이 없다. 나전무늬를 입혔거나 대모문양장식으로 수놓은 것은 그것대로 화려하고, 단단한 목질에 모서리와 필요한 곳마다 백동 또는 놋쇠장식을 단 것은 그런대로 엄전스러웠다.

규방의 아취나 법도는 이러한 유형의 물상, 아리따운 장식물에서도 영향받는 법이다. 단아한 경대를 앞에 두고서 머리손질에 한치의 흐트러짐이 있을 수 있겠으며, 차분하게 단장을 끝낸 자세에 부실함이 끼어들 틈바구니가 어디 있겠으랴. 여인의 하루는 경대 앞에서 빗질하는 걸로 아침을 맞고, 밤중엔 여기서 비녀를 푸는 것으로 마감된다.

어찌 여심이 경대에 다소곳이 스며들었지 않을까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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