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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빗
빗은 머리카락을 빗는데 쓰는 도구이다. 옛 우리 풍속에서는 이발하는 관행이 없었고 서양에서처럼 가발이나 머리털을 볶아 장식하는 법도 없어서, 남녀를 막론하고 생머리카락을 가지고 그대로 꾸밀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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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 빗은 남자용과 여자용에 따라 크기가 달랐으며 빗살이 촘촘한 참빗과 얼레빗이 있었다. |
상투를 틀어올린 남정네나 트레머리를 한 여인네 또는 머리를 땋아 늘였던 처녀, 총각의 어떤 머리털도 풀어 감으면 긴 생머리카락이게 마련이었다. 그러자니 몸 치장에는 으레 각종 빗이 따랐고 그것이 즉 기초 화장용기구가 되기도 했다.
근세 조선의 탁월한 풍속화가였던 김홍도의 화첩 '빨래터'에는 개울에서 허벅지가 드러나도록 치마를 걷어붙이고 빨래를 하는 아낙네 곁에서 감은머리를 손질하는 여인의 모습을 배치하고 있다. 발치에는 예외없이 얼레빗과 참빗이 가지런히 놓였다. 그 장면을 바위뒤에서 점잖은 양반네가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훔쳐보고 있어 해학을 물씬 풍긴다.
단오를 앞두고는 모든 여인들이 창포물에 삼단같은 머리를 감아 곱상하게 가리마를 타서 빗어넘겼다. 물기가 가신 머리카락에 동백기름이라도 바를라치면 까만 윤기가 돌면서 단정함이 얼음장처럼 매서웠다. 그런 한편, 하얀 목덜미를 설핏 보이면서 머리 손질을 하고 있는 자태는 또 얼마나 관능적이며 고혹적이란 말인가. 단원의 그림에 나오는 양반도 결코 주책머리 없다고 눈흘김해선 안 될 성싶다.
시인 이규호는 그 살냄새가 아련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촉촉한 언어로 읊은 바 있다.
물 넘듯, 그대는/ 첫김 서린 목욕물 넘치듯/ 발가벗고 앉아서 머리를 빗는다./ 그대 머리숱은/ 잎 핀 수양버들의 물오른 가지로 치렁치렁 늘어서서/ 빗질하는 그대 손가락 마디의/ 주름살 길로 비켜 나와/ 물 넘듯, 그대는 해를 옮겨 얹힌다.
봄비 소곡(小曲)'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저 지난 시대의 농염한 기녀 황진이의 이미지가 와 닿는다. 머리 손질하는 여인이 실제로 나체가 아니어도 풀어헤친 머리카락은 여인에게서 개방과 방심을 환기시키므로 발가벗었다는 은유가 성립될만도 하겠다.
이처럼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가다듬으며 머리 손질을 할 때에 빗이 필요하다. 먼저 헝클어진 머리를 용이하게 풀기 위해 얼레빗(月梳)을 사용한다. 반월형으로 생긴, 빗살이 성긴 것을 말한다. 얼레빗으로 첫손질이 끝나면 그 다음 참빗으로 정성을 다해 말끔히 빗는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낱낱으로 빗기려니와 모발에 박힌 가루 같은 서캐도 씻은 듯이 훑어진다.
기름때가 올라 윤이 반지르르한 참빗이야말로 여인네의 숨결이 밴 제일의 애완용품이었다. 일명 진소라고도 하는데, 중앙에 가로 널찍한 대쪽이 앞뒤에 붙어 있고 양날은 대오리를 잘게 쪼개서 빗살이 아주 가늘고도 촘촘한 대빗이다. 크기도 한 손아귀로 쥐기에 안성맞춤이며 무게 또한 위에서 아래로 쉬 훑도록 가볍다.
빗,빗집,살쩍밀이 빗과빗을 보관하는 빗접이다. 살쩍밀이란 남자가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쓸 때 관자놀이와 귀사이에 난 머리털, 즉 살쩍이 흩어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망진속으로 밀어 넣을 때 쓰던 물건을 말한다. |
참빗질을 해서 머리를 땋거나 틀어올리면 끝매무새로 면빗을 써서 귀밑머리털을 수습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귀밑머리털이 아니라 뺨 위의 귀 앞에 난 잔 머리카락으로, 이를 <살쩍>이라 한다. 남자가 망건을 쓰고난 후 이 살쩍을 망건 속으로 밀어넣는 걸 <살쩍밀이>라고 한다. 살쩍을 손질하는 빗이 면빗이며 대개 반달형으로 된 아주 조그마한 빗을 가리킨다.
이외에도 오늘날의 빗처럼 기다랗게 만든 빗은 음양소(陰陽梳)라 했다. 빗은 대나무로 많이 만드나, 그밖에 쇠뿔, 대모(玳瑁 ), 박달나무, 밀감나무, 참죽나무, 배나무 따위 뿔과 목재가 재료로 이용되기도 했다. 모두 직사각형 또는 반원으로 모양을 만들어서 빗살을 용도에 맞게 굵고 잘게 에어내어 쓰임새 좋도록 만들었다.
우리 옛 여인들은 빗을 정조의 빗장쯤으로 생각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규수가 간직했던 빗이 외간남자의 손으로 넘어가면 정조를 잃은거나 진배없이 낙심했다. 처녀가 죽으면 생전에 쓰던 빗을 뭇사람이 다니는 길바닥에 버려둠으로써 남자의 밟힘이 되게 한 것도 신원(伸寃)의 한 방편이었음을 유의해볼 일이다.
할머니, 어머니가 쓰던 참빗에선 해묵은 모성이 느껴지지만 남의 집 참빗은 도리없이 에로틱한 정념을 일깨운다. 이런 자연적인 충동을 누군들 계면쩍어할 필요는 없으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