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

우리말에 <외씨 같은 버선>이란 비유어가 있다. 볼이 조붓하고 갸름하여 펀펀한 발 모양새를 캄플라주함으로써 신으면 맵시가 나는 버선을 일컫는다.

버선, 버선본(버선을 만들기 위한 본)

예로부터 동양권에서는 여인의 미의 척도로서 몇 가지의 잣대가 이루어졌다. 눈썹은 반달같이 가늘고 동그스름하며 어깨는 좁은 채 아담해야 하듯 발 또한 작고 오동통해야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후부터 여인의 발을 작게 하기 위해 전족이 유행했었다. 여자아이가 네댓 살이 되면 발에다 긴 천을 친친 감아서 발의 발육을 억제한 것이다. 이에 비해서 버선을 고안하여 여자의 발을 걀쭉하고 통통하게 보이도록 도모했던 한국인들은 얼마나 슬기로운가.

버선은 발 모양을 어여쁘게 양식화한 버선본에 따라 무명, 광목을 재료로 하여 두 쪽의 천을 이어 붙여 만든다. 눈부시게 흰 옥양목으로 만든 버선발을 보노라면 한국 여인의 정서의 본향이 거기 있음을 발견한다. 새댁무렵의 어머니의 모성이 있는가 하면 여인의 관능이 숨쉰다.

버선은 그 모양만으로도 한껏 미감을 자아낸다. 버선목에서 뒤꿈치와 뒤축을 돌아서 앞부리에 이르는 선은 동그스름하여 평화와 풍만함을, 앞쪽 버선목에서 버선코로 휘어지는 곡선은 날렵하고 새침스런 느낌을 준다. 그 버선코는 어떤가. 그저 원만하고 대범스런 버선의 형태에 뾰족한 코를 만들어놓음으로써 전체적으로 다이내믹한 변화를 준다.

살짝 솟구쳐놓은 코. 이것이 한국인의 멋이다. 송편을 만들어도 소를 넣어 배가 볼록하게 드러나는 반달형을 지은 끝에 두 귀쪽을 뾰족하게 하여 살짝 휘감기게 한다. 기와집을 보면 용마루에서 사선을 이루며 내려 뻗다가는 처마끝에서 이 또한 날아갈 듯 치켜올렸다. 이승에 발붙여 살면서도 어딘가 피안의 세계를 꿈꾸며 지향하는 의지의 소산이겠다.

개화기까지만 해도 우리 겨레는 버선에다 짚신이나 미투리를 신었다. 삼 껍질로 여섯 날을 두어 삼은 미투리를 신으면 버선코가 끼인 채 삐져나왔다. 착용감이 가볍고 한산해서 걸음조차 조붓하고 얌전스러웠겠다.

하지만 양가의 부녀자 맵시만으로 버선을 이해하는건 무리이다. 모든 남정네도 광목버선과 짚신을 신고 돌자갈길과 진흙땅에 젖으면서 가파른 산야를 헤집고 다녔던 것이다. 물기에는 속수무책이고 바닥이 흙투성이가 되어 남루를 떨칠 길 없었으리라, 이런 습속이 외국인의 눈엔 기이하게 보였던지, 근세조선 후기에 이 땅으로 밀입국했던 카톨릭 선교사들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겨놓았다.

<그러나 당신은 적어도 버선은 신게 될 것입니다. 조선 사람은 누구나 극빈자가 아닌 한, 그리고 들일을 하지 않을 때는 버선을 신으니까요. 하지만 비단이나 양털, 면 같은 재료로 만든 탄성 있는 양말이라고는 생각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저 끝이 뾰족하게 되고 발 모양에 맞도록 거친 천 두조각을 꿰맨 것으로 신으면 거북한 것이나 어떻든 발을 가려줄 것인데, 이 것이 조선의 버선입니다.>

이처럼 황량한 세월을 살다가 일제때 흰고무신이 출현하여 드디어 버선은 광채를 띠기에 이르렀다. 여인의 흰고무신은 볼이 좁고 갸름한 버선발을 담기에 안성맞춤으로 만들어져 나왔다. 여름철엔 홑버선으로 산뜻하고 겨울이면 겨울대로 겹버선으로 푸근했다. 발이 시릴 정도면 솜버선, 누빈버선을 신을 수 있었고 명절 때 아이들은 꽃버선을 자랑했다.

버선 본집(왼쪽) / 버선 본집과 버선본(오른쪽)

버선은 두짝이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나 모든 사물을 음양과 내외로 분별할 줄 알았던 한국인들은 이것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버선목의 바느질 눈이 오른쪽으로 된 것은 오른발, 왼쪽으로 된 것은 왼발용으로 찾아신었다. 분별은 절도를 낳고 절도는 예의에 이른다.

우물에서 부엌으로, 안방에서 대청마루로 들락거렸던 저 옥양목 외씨 버선, 발소리를 내지 않고 사붓사붓 걸었던 여인의 걸음걸이엔 달무리 같은 정서가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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