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중칠우

여인의 바느질하는 모습은 다듬이질과 더불어 우리 겨레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되는 정경 중의 하나이다. 호롱불을 밝혀두고 긴 겨울밤을 그림처럼 조용한 자태로 앉아 깁고 살을 펴는 일에 몰두하는 광경이 장지문에 음영을 드리운 걸 상상해보라. 여인의 미덕인 다소곳함, 조심스럽고 조용한 동작, 부지런함, 땀땀이 아로새겨지는 솜씨가 바로 여기에 집약되어 있다 하겠다.

옷감의 길이를 재는 <자>는 쇠나 나무로 된 것도 있지만 절대다수가 대나무를 재료로 한 것이다. 한쪽으로 금을 넣어 치를 표시하고, 열 치에 한자 표시를 했다. 두 자 길이면 이즘의 도령형으로 60.6센티미터가 되니 사용하기에 알맞춤하다. 때로는 소용 외에, 자식을 훈도하거나 집안에 부리는 아이를 꾸중할 때 종아리 매질로 쓰기도 해서 대쪽이 갈라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바늘, 골무, 인두, 다리미, 실, 자, 가위

가위는 오늘날과 같은 스테인리스가 없던 시대에 무쇠 벼름질로 만든 것이어서 꺼멓고 투박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집에선 크고 작은 종류를 갖추어서 알맞춤하게 사용하나 대개는 한 개로 두루 썼다. 때문에 이가 쉬 무디어져 자주 숫돌에 날을 갈고는 했다.

바늘은 가장 미세한 것인 데다가 쓰임이 잦아 여인네의 총애를 많이 받으며 일상 몸 어디엔가 붙어다녔다. 저고리 고름에 꽂아놓기도 하고 더러는 뒷머리 쪽에 질러 꽂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바느질을 하다가 매끄럽지 못하다 싶으면 바늘끝을 머리카락에 몇차례 그어 머릿기름을 묻게 했던 동작도 낯익은 기억이다.

바늘이 사랑을 받았던 만큼 바늘을 꽂아 간수해두는 물건인 <바늘겨레>란 것도 생겨났다. 흔히 비단으로 만들어 수를 놓은 호사스런 것을 대할 수가 있는데, 그 속에 솜이나 머리카락을 넣어서 바늘이 꽂혀지도록 배려했다. 또 바늘 스물네 개를 납지로 싼 것을 <바늘쌈>이라 하는바 크기가 다른 바늘쌈을 몇낱 갖는 건 지복에 속하는 일이다.

<실>은 고치, 솜, 삼 따위를 가늘고 길게 자아내어선 꼰 것이다. 이것은 명주실, 무명실, 삼실별로 실감개에 감아서 반짇고리에 넣어두고 썼는데, 실감개는 <실패>란 말로 불린다. 바늘귀 구멍이 좁아서 실이 쉽게 꿰이지 않으면 할머니들이 실 끝에 침을 발라 손가락끝으로 문질러서 가까스로 꿰곤 했던 모습은 누구에게나 생생히 환기될 터이다.

골무는 바느질할 때 상하기 쉬운 손부리를 보호하고, 바늘을 눌러 밀기좋도록 손가락 끝에 끼는 물건이다. 가죽조각이나 헝겊을 여러 겹으로 배접하여 만들었다. 바느질할 때엔 금세 눈에 띄었다가는 찾을 땐 잘 나타나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일감을 많이 안긴 연유에서 <골무는 시어머니 죽은 넋이라>는 속담이 생겨났다. 빼놓은 골무는 자칫 눈 밖을 벗어나므로 일어서거나 일감을 쳐들어 보아야 나타난다는 뜻에서 비롯된 속담이다.

반짇고리

규방에 없어서는 안 될 반짇그릇, 자, 가위, 색실, 바늘겨레, 실패 등이 어여쁘게 담겨있다.

인두는 일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이 화로 재 속에 찔려 있었다. 동정을 달거나 깃이나 섶의 주름살을 펼 땐 인두의 좁은 면으로 다린다. 온도가 알맞은가를 가늠하기 위해 인두를 볼 가까이 대어보거나 손바닥에 슬쩍 문질러보는 동작은 거의 무의식적인 관행이었다.

다리미는 숯불을 담은 쇠그릇에 나무막대기를 단 재래식 다리미가 통용되었다. 숯불로 매끄러운 바닥이 달아올라서 이로써 힘주어 누르면서 밀면 무명의 억센 구김질이 가까스로 펴졌다.

근세조선 후기에 씌어져 수필문학의 정채를 띠게 한 '규중칠우쟁론기'를 인용해 보면.......

......척 부인(자)이 가늘고 가는 허리를 빨리 재면서 하는 말이 '내란 몸은 길며 짧으며 좁으며 넓으며 이런 것을 눈치있게 자세히 살피어서 그릇됨이 없게 하니 내 공이 으뜸이로다' 교두각시(가위) 청파(聽罷)에 성을 내어 긴 입을 일긋거리면서 '내 입이 가야 모양과 격식이 나나니, 그대의 일하여 염량(念量)한 공이 나로 말미암아 나타나나니 내 공이 으뜸......' 세요각시(바늘) 변색하여 이르되 '내 몸이 가야 무슨 일이든지 이뤄지나니, 그대들이 아무리 염량과 모양 제도를 한들 한가지나 이뤄낼쏘냐? 그러므로......' 청홍각시(실) 대소 왈 '속담에 이르기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하였으니 내 몸이 아니 가고야 허다한 일이 한 가지나 될쏘냐? 나보다 더한......' 감투할미(골무) 웃어 가로되 '대저 노소 없이 손가락 아픈 데를 눈치있게 가리어 무슨 일이든지 쉬 이뤄내게 하고 전장에 방패 앞서듯 하나니 이 늙은이 없고는......' 인화낭자(인두) 노기등등하여 '내 발이 한번 지나매 굽은 것이 반듯하여지고 비뚤어진 것이 바로 되어 너희 낯나는 일은 내가 다 펴주니, 내가 아니면......' 울낭자(다리미) 탄식 왈 '인화는 소임이 나와 같은지라, 우리 둘 곧 아니면 어찌 공을 일컬으리오......?'

이 글은 규중칠우가 모여 서로 생색을 내며 다투는 것에 빗대어 세상사람의 처세를 비꼰, 해학과 재치가 넘치는 규방문학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느질하는 모습에서의 근면과 정숙한 아름다움, 바늘쌈과 바늘겨레에서 애틋함과 자잘한 이쁨을 감지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조그마한 일로 앙앙불락하거나 공치사를 늘어놓는 한국 여인의 소졸(疏拙)한 성정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규중칠우는 저마다 모두 한국 여인의 초상을 나타내면서 쟁론기(爭論記)는 또한 그 마음의 소슬한 그림자를 각인하고 있다해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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